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을 상회하면서 국내 물가가 안정되는 시기 또한 섣불리 예측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이 대두하고 있다.
올해 들어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세를 이끌었던 유가와 곡물가격의 하향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물가가 하향안정세로 빠르게 돌아서지 않음에 따라 정부 당국의 발걸음도 분주해지는 모습이다.
美 소비자물가 예상 밖 상승세에 증시 충격
미국 노동부가 현지시간으로 13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8.3%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월인 7월의 8.5% 상승에 비해 증가율은 소폭 하락했지만, 전문가 전망치인 8.0% 수준을 상회했다.
여기에 7월보다 물가가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0.1% 상승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물류 공급란으로 인해 치솟았던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이 3분기 말 들어 다소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물가 안정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지만, 오히려 이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서 시장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뉴욕 증시는 일제히 급락하며 직전 거래일보다 다우존스산업지수는 3.94% 하락한 3만1105.97, S&P500 지수는 4.32% 내린 3932.69, 나스닥지수는 5.16% 낮아진 1만1633.57에 각각 거래를 마감했다.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예상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넘어선 울트라스텝(기준금리 1.00%p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마저 제기됐다.
국내 시장도 일제히 여파…환율 13년여만에 1395원 넘어서기도
미국 소비자물가의 여파는 미국 뿐 아니라 국내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56% 내린 2411.42에, 코스닥은 1.74% 하락한 782.93에 각각 거래를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도 17.3원 급등한 1390.9원에 마감했다.
장초반에는 코스피가 2%, 코스닥은 3% 이상 하락했고, 환율은 장중 한 때 2009년 3월 이후 13년 5개월만에 1395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9~10월 하향안정" 기대했지만 불투명해진 전망…전문가 "추가 상승 압력 높아"
예상을 넘어서는 금융 충격에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르면 9월, 늦어도 10월경에는 물가가 하향 안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이같은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과 같이 국내도 국제 유가와 곡물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밥상물가'로 분류되는 품목들의 물가 상승세가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는 부분은 정부를 더욱 곤란하게 하고 있다.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가공식품이 8.4%, 농산물 10.4% 등 전체 상승률인 5.7%를 상회한 데다, 공공요금이 오르면서 전기·가스·수도는 15.7%나 치솟았다.
개인서비스는 6.1%로 1998년 4월 이후 24년여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고, 외식 가격 또한 8.8%나 상승했다.
라면업계가 추석연휴가 끝난 이번 주 라면가격을 10% 안팎으로 일제히 올리거나, 가격 인상을 고심하고 있는 점과 참치, 우유, 제과 등 가공식품 업계도 가격 인상에 나서는 점 또한 물가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이 사용할 만한 뾰족한 카드가 여전히 없다는 점이다.
최근 상황을 인지, 물가 관련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금리 인상 외에 뚜렷한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연말까지 있을 2차례의 금융통화위원회를 통해 0.25%p씩 기준금리를 올리는 대신 빅스텝(기준금리 0.50%p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새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빅스텝을 밟는다고 해도 자이언트스텝이나 울트라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미국과의 금리 역전을 막을 수 없는 데다, 이같은 수준의 인상으로는 물가를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중론을 형성하고 있다.
연세대 성태윤 경제학부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물가 상승 압력에 따라 미국의 기준금리 대폭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우리 통화당국은 금리 인상을 추가로 많이 하기 어렵다고 이미 선언했기 때문에 한미 금리역전에 대한 우려가 번져 있다"며 "무역수지 등의 개선이 크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인 데다, 우리나라 통화가치 하락이 크게 이뤄지고 있어 수입 물가 상승에 의한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현재 물가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요인이 여전히 대외요인이 대부분인 상황이어서 물가를 낮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물가가 언제쯤 고점을 지날지 시장상황을 면밀히 모니터하면서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서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