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변검''이 국가 2급 기밀로 통하는 이유

한국 최초의 변검술사 ''김우석''에게 변검을 묻다

검은 옷의 사내가 무대에 등장했다. 빠르고 높은 톤의 중국전통 음악이 현란하게 이어진다. 사내가 들고 있던 부채가 얼굴을 스치는 순간 원숭이 가면은 순식간에 관운장으로 바뀐다.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얼굴이 바뀔 때마다 탄성은 고조된다. 10분간의 공연 동안 이 사내는 얼굴을 열두번이나 바꿔버렸다. 15년간 해오던 마술을 돌연 접고, 변검술에 뛰어든 한국 최초의 변검술사 김우석씨를 문영기의 독(獨)한 인터뷰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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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어도 모른 채 무작정 배우러 떠난 변검

마술사였던 김우석에게 변검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90년대 중반 군에서 제대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매직 바에서 공연을 하던 김우석은 늘 새로운 분야에 목말랐다. 1년정도 마술공연을 해서 번 돈을 들고,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일이 몇 년 동안 반복됐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들렸던 중국에서 화려한 변검에 매료됐다.

''''온몸에 전율같은 것이 오면서, ''''저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현지에서 만난 마술사에게 얘기를 했더니, 변검왕이라고 불리는 분을 소개해 줬다. 중국말도 못하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분에게 무조건 알려달라고 졸라댔다.''''

운이 좋았다. 소개받은 사람은 현대 변검의 창시자이자 변검왕으로 불리우는 왕다오정이었다. 하지만, 폐쇄적인 변검술을 전수받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보기 좋게 퇴짜를 맞은 그는 몇 개월 뒤 다시 중국을 찾았다. 그리고 또 퇴짜. 갖고 간 돈이 떨어지면 한국으로 돌아와 마술로 번 돈을 들고 찾아가 빌기를 3년.

무쇠같던 왕다오정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할 줄 아느냐고 묻는거다. 그때 특기인 마술을 보여줬다. 너무 신기해하고 좋아하더라. 그러더니 동작을 한 번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왕다오정은 그에게 변검술이 아니라 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발차기를 배우는 데만 1년이 걸렸다. 한국에서 우슈 과외까지 받은 끝에, 3년이 다시 흘러서야 스승은 제자에게 변검의 비밀을 알려줬다.

''''자신의 옷을 직접 풀어헤치면서 가르쳐줬다. 수제자가 나를 포함해 3명뿐인데, 옷을 직접 풀어헤치며 가르친 제자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사부에게 무작정 매달린 지 6년만에 그는 비로소 가면을 쓸 수 있었다. 변검의 비밀을 배우고 난 뒤에는 오히려 쉬웠다.

''''스승이 알려준 변검의 비밀을 배우고 난 뒤에는 완전히 습득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6개월정도 밖에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변검의 비밀은 어떻게 보면 마술 중에서도 가장 손쉬운 마술이다.''''

그의 인생에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 변검은 국가 2급 기밀?

변검은 중국 쓰촨성에서만 계승되는 민간 예술이다. 베이징의 경극(京劇), 쑤저우 지역의 곤극(昆劇)과 더불어 중국 3대 전통 연희로 꼽히는 쓰촨성 천극(川劇 )공연의 한 부분이다. 특별한 기술과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쓰촨성 출신사람에게만 전승됐고, 그 가운데에서도 엄격한 심사를 거친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도 남자들에게만 이어지는 폐쇄적인 예술분야다.

하지만, 변검의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귀정루(歸正樓), 백사전(白蛇傳)등 오래된 레파토리가 있지만, 얼굴가면 3장을 바꾸는 삼변화신에 불과했다. 이것을 오늘날과 같은 변검으로 바꾼 사람이 김우식의 스승 왕다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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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끊임없는 연구 끝에 최초로 24장까지 얼굴을 바꾸는 기술을 만들어 냈고, 변검을 세계적인 예술 장르로 끌어올렸다. 왕다오정은 현재 중국의 1급 연원이다. 기술 유출을 우려해, 그는 당국의 허가없이 사천성을 마음대로 벗어날 수도 없다.

홍콩 인기배우 유덕화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공연에 매료된 유덕화가 엄청난 수업료를 제시하며, 변검술 사사를 요청했지만, 사천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유덕화는 결국 다른 변검술사에게 전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보수적인 성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같은 폐쇄성으로 한때 변검술은 중국의 2급 국가 기밀이라는 설이 그럴듯하게 퍼지기도 했다.

'''' 2급기밀이라는 것은 낭설이다. 폐쇄성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변검술사 간에도 입장이 다르다. 왕다오정 사부는 보수적인 편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개방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몇 년사이에 이같은 변검의 폐쇄성이 많이 완화되면서, 여자에게도 기술이 전수되고 있고, 외국인도 배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 공연마다 따르는 ''''숨쉬기 힘든 고통''''

변검은 화려한 기교와 간단한 복장 때문에 마술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변검은 변검일뿐''''이다. 변검은 여러 가지 예술형태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독자적인 종합예술이라는 것이다. 김우석은 변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관객과의 교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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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검은 단순히 가면을 벗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하는 것이다. 가면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말을 할 수 없는 공연이기 때문에 몸으로 그 동작을 표현해 내야 한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하는 지 공연중에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공연을 한다.''''

김우석은 지금도 하루에 한,두시간이상 수련을 계속하고 있다. 무술동작과 표현도 연습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흡법이다. 따라서 호흡법을 수련하는 시간이 가장 길다. 여러겹의 가면을 겹쳐 쓰기 때문에 정상적으로는 호흡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작은 숨으로 오랜 시간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마하고 있다.

''''변검 공연은 7분에서 10분 정도에 불과하지만, 준비하는 시간이 30분 이상 걸린다. 12겹이 넘는 가면을 쓰면 숨을 쉬기 어렵다. 단독으로 공연할 때는 그래도 시간 조절이 가능하지만, 늘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출연자들의 공연이 지연될 때는 상당히 고통스럽다.''''

아무리 수련을 한다고는 하지만, 가면을 10개이상 뒤집어 쓰고, 호흡이 힘든 상황에서 한,두시간 이상을 견디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요즘에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는 공연을 다니기 시작한 처음 1-2년동안은 공연을 마치고 나면, 호흡을 참아낸 고통 때문에 늘 구토를 하곤 했다.

◈ 상업화하기 시작한 변검술

최근에는 변검공연을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쓰촨성에서는 천극전용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외에도, 식당에서도 손님을 끌기 위해 변검공연이 빈번히 이뤄지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중국 전문식당이나, 유람선등에서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 변검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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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검이 보편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본고장인 쓰촨성에서도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그의 스승인 왕다오정은 아주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고유한 전통기예인 만큼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변검이 세계적인 공연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보급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고, 기술 전수에도 제한을 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우석은 변검이 많이 알려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변검공연에 대해서는 탐탁지 않은 눈치다. 변검 전수에 상당히 보수적인 그의 스승 탓도 있겠지만, 돈을 벌기위해 간단한 기술만 익힌 채 값싼 공연에 나서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변검술사가 많이 늘었다. 하지만, 체계적인 수업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에서 중국 마술사들이 파는 옷을 사다가 입고, 공연에 나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술사들이 옷을 가지고 조작을 하는데, 사실 복장도 다르고, 하는 방식도 완전히 다르다.''''

최근 많이 이뤄지고 있는 공연이 진정한 변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변검을 들고 에딘버러로 간다

김우석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 아니다. 그리고 ''''돈''''이 되는 공연은 아직까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꽤 비싼 개런티를 부른다. 8순에 가까운 노모를 모시고 살면서, 편히 모시지 못하는 것이 여전히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의 변검에 대한 자존심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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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검은 수준높은 예술이다.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 있다. 공연장소나 이런 것에 제한을 두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아무 곳에서나 공연을 하지는 않는다.''''

그는 내년에 세계적인 공연축제인 에딘버러 축제에 참가할 생각이다. 한국무대를 벗어나 세계무대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에딘버러를 통해 국제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난타''''와 ''''점프''''의 예를 들었다. 한국정서를 반영한 변검도 만들 생각이다.

제자를 키울 생각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만큼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기 힘들다. 국내의 유명가수가 수천만원의 수업료를 제시하며 변검 전수를 요청했지만, 그는 그의 스승이 유덕화에게 그랬던 것처럼 단호히 거절했다. 변검을 재미로 배우겠다는 사람에게 전수할 생각은 없다.

''''수업료 받을 생각 없다. 변검을 배우겠다는 열정만 있으면 된다. 한 달에 한두명은 꼭 찾아오는데, 일단 거절한다. 그런데 내가 거절을 하면 두 번 다시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나같은 정신 나간 사람이 있을 거다. 내가 배운 것 같은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나도 스승님 처럼 제자의 옷을 직접 제작해줄 생각이다.''''

변검을 택한 그에게 변검 같이 변화무쌍한 인생이 펼쳐질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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