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정진석호' 비상대책위원회가 13일 위원 인선을 마치고 공식 출항에 나섰다. 당초 '통합형' 비대위를 구성하겠다는 일성과 달리 '친윤' 색채의 인사들이 대거 합류하고, 비대위원 인선 발표 1시간 30분 만에 주기환 전 비대위원이 사의를 표하는 촌극까지 빚어지면서 향후 정치적 동력에 일찌감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다음 날 예정된 가처분 심문 등 향후 법원의 판단이 새 비대위의 존립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13일 상임전국위원회 의결을 통해 원내 김상훈(3선)‧정점식(재선)‧전주혜(초선) 의원과 원외 김병민 전 비대위원, 김종혁 혁신위 대변인,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을 비대위원으로 공식 임명했다. 상당수는 '윤심' 또는 '반(反)이준석'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다. 향후 원내대표 선출과 국정감사 등 주요 정치 이벤트를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만, 비대위 활동마다 용산 대통령실의 그림자가 겹쳐 보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전주혜 의원과 김병민 전 비대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선거 캠프에서 대변인으로 일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 시절부터 연을 맺어온 정점식 의원은 최근 권성동 원내대표에 힘을 싣고 이준석 전 대표를 비판하는 재선 의원들의 성명을 이끌었다. 김종혁 혁신위 대변인 역시 CBS라디오에서 "정치의 문제를 자꾸 법으로 끌고 가는 것 자체가 정치 후진성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등 이 전 대표에 각을 세우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새 비대위의 수장인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일찌감치 당내 친윤계 의원의 맏형 격으로 꼽혀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 위원장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론 대통령의 사람이나 이 전 대표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소신을 가진 사람들로 인사가 좁혀졌다. 통합형, 탕평 인사란 주장에 공감하기 어렵다(초선 의원)"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비대위의 향후 활동도 윤핵관과 용산의 윤허를 받고 한다는 소리가 계속 나올 것(당 관계자)"이란 지적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기에 비대위원과 함께 임명된 노용호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이나 박정하 수석대변인 등 주요 당직자들이 강원 지역 출신이란 점은, 새 지도부가 윤핵관 중 한명으로 꼽히는 권성동 의원의 자장에서도 자유롭지 않다는 평가에 힘을 싣고 있다. 당내 한 관계자는 "권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강원 출신 인사들이 선거 캠프 때부터 뚜렷하게 약진해온 게 사실인데, 결국 정 위원장이 말한 '지역 안배'에서도 호남보다는 친윤계 영향력이 두드러진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당 안팎의 지적을 인식한 듯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 때부터 20년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진 주기환 전 비대위원의 경우 인선이 번복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주 전 위원은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 체제에 이어 이번 비대위에도 승선하는 것으로 발표됐지만, 이후 다시 정 위원장에게 "간곡한 사의"를 표하면서 전주혜 위원으로 교체됐다. 한 수도권 원외 당협위원장은 "주 전 위원이 본인 혼자 새 비대위에서도 다시 기용되는 걸 위원 발표 후에 알고, 윤심이라며 이목이 집중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항한 정진석 비대위가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암초는 이준석 전 대표가 신청한 가처분에 대한 법적 대응이다. 당장 다음 날인 14일 전국위의 당헌개정 의결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이 전 대표가 신청한 가처분 심리가 예정돼 있다. 28일에는 정진석 비대위원장 직무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심리가 열린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당 윤리위원회가 회의를 열고 이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여부를 논의하기로 한 날이다. 정 비대위원장이 "법원은 정당 안에서 자체적·자율적으로 내린 결정에 대해 과도한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법자제의 원칙'을 강조했지만 법원 결정에 따라 비대위가 다시 좌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