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취임 5달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윤심'을 업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화려하게 원내대표에 선출됐지만,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 국면 속 윤석열 대통령과의 문자를 유출하는 등 실수를 연발하고 수습에 실패하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장하게 됐다.
권성동 "당내 갈등 혼란 조기 수습 못해…책임 통감"
권 원내대표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 원내대표 사퇴 의사를 밝힌다. 당은 신임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재임 중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는 "당내 갈등과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지 못한 것"을 꼽으며 "제가 책임을 통감하는 부분"이라고 사과했다.
특히, 권 원내대표는 '내부총질 당대표'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문자가 노출된 것에 대해서도 "경위가 어떻든 간에 저의 부주의로 문자가 노출된 점은 제 잘못이라고 인정한다"면서도 "그렇지만 문자를 망원경으로 당겨서 취재하는 것, 의원들끼리 귓속말하는 이야기를 증폭시켜서 기사화하는 것은 금도를 넘어선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권 원내대표는 그러나 "현재 당의 리더십 위기는 전임 당 대표의 성상납 의혹을 무마하려는 시도가 윤리위의 징계를 받으면서 촉발됐다"고 이준석 전 대표에게 화살을 돌렸다. '윤핵관'이라는 꼬리표에 대해서도 "조롱하거나 분열시키는 차원에서 이준석 전 대표가 만든 용어"라며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고 당의 정권교체에 앞장섰던 많은 분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저는 지금 지난 대선 때부터 오늘까지 쉼 없이 달려 왔다"며 "당분간 쉬면서 당과 나라를 위해 정치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천천히 생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압도적 기대 속 출발했지만, 연이은 실수에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권 원내대표는 지난 4월 8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소속 의원 102명 중 81명의 몰표를 받아 당선됐다. 경쟁자였던 조해진 의원은 21표에 그쳤다. 80표 차이는 국민의힘 및 전신인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시기에 열렸던 원내대표 선거를 종합해봐도 역대 최다다.
그만큼 소속 의원들 사이에 권 원내대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취임 2주 만에 성급하게 '검수완박' 중재안을 수용했다가 이를 뒤집는 무리수를 뒀음에도 권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당내 신뢰는 굳건해졌다. 실제로, 권 원내대표는 '아빠찬스' 논란에 휩싸인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당내 중지를 모아 전달하며 자진사퇴를 이끌어냈고, 특별감찰관 임명이나 검찰 편중 인사 문제 등을 공개 지적하는 모습을 보여 의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권 원내대표의 지난 5개월은 명보다 암이 많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내에서는 이준석 전 대표의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 이후, 직접 나서 현 상황을 '당대표 사고' 상태로 규정한 것부터 꼬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새벽에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가 결정됐는데, 아침에 자신이 당대표 직무대행임을 선언했는데, 미리 준비하고 있던 것 같은 느낌을 줬다"며 "이 전 대표의 복귀 시나리오를 상정하지 않고 있었다면,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체계를 점검하는 등 과정을 거쳤어야 지금처럼 혼선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대표 직무대행 체제도 오래가지 못했다. 징계 이후 이 전 대표는 예상과 달리 전국을 돌며 잠행했는데, 권 원내대표가 시인한 것처럼 윤 대통령과의 '내부총질 당대표' 문자가 유출되며 사태는 겉잡을 수 없게 됐다. 이후, 초선의원 절반 가량이 비대위 전환을 촉구하는 연판장에 서명하는 등 무력 시위에 나서자, 정치적 해법은 실종됐고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다.
하지만 비대위 마저 법원의 결정으로 존속할 수 없게 됐고, 수습되지 않는 내홍에 대한 책임론은 권 원내대표를 향하게 됐다. 권 원내대표 스스로도 "돌이켜보면 비대위로의 전환을 결정하기 전에, 당헌·당규를 확실하게 개정했어야 한다"고 반성한 지점이다. 결국, 권 원내대표는 정진석 국회부의장을 새 비대위원장으로 추인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당내에서는 높은 기대치에도 불구하고 명보다 암이 많았던 지난 5개월이 아쉽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 초선의원은 "권 원내대표가 잘한 것보다 각종 실수 등이 더 부각됐고, 현 체제로 더 이상 해법을 찾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권 원내대표만큼 수평적인 당정관계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새 원내대표 하마평…윤심 향배 촉각
권 원내대표의 사퇴로 관심은 누가 새로운 원내 사령탑에 오를지에 쏠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오는 19일 의원총회에서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를 치를 계획이다.
현재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4선의 김학용(경기 안성) 윤상현(인천 동·미추홀을), 영남권에 지역구를 둔 3선의 김태호(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윤재옥(대구 달서을), 조해진 의원(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충청권의 4선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예산) 등이 하마평에 올라 있다. 또 지난 2020년 국민의힘의 초대 원내대표를 지내고, 직전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5선의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갑)이 나서 윤석열 정부 첫 정기국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재선의원은 "현재 하마평에 오른 인사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깊은 신뢰 관계가 형성됐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직을 맡으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분들"이라며 "계파색이 옅은 인물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고, 윤핵관의 세력 분화 등 변수가 많아 결과를 장담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