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명절은 꿈도 못 꾼다"…추석 빼앗긴 수해 상인과 이재민

폭우로 가게와 창고가 전부 잠겨버린 강남구 영동전통시장의 한 식료품 가게.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복구 작업중이다. 임민정 기자

"한 달 내내 복구 작업을 했지만, 턱도 없어요. 추석에도 나와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지치네요"

지난 7일 강남구 영동전통시장의 한 식료품 가게. 이곳은 지난달 초 내린 폭우로 가게 내부와 창고가 완전히 잠기는 피해를 봤다. 물난리를 겪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게 앞엔 빗물과 오물에 젖은 고추장, 고무장갑, 철 수세미 등이 널려있었다.

이 가게 업주인 60대 조모씨는 "추석이라고 쉴 겨를이 어디 있나요. 가게 빨리 복구해야죠"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여름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겪은 서울 남부 상인들과 이재민들은 한가위를 목적에 두고도 상흔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같은 골목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최모(61)씨는 "개업 3개월 만에 가게가 물에 잠겼다"며 "추석에는 못 내려간다고 가족들에게 미리 말해뒀다. 폭우로 2주가량을 쉬었는데 연휴에 가게를 열고, 한 푼이라도 복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최씨의 가게는 겉으로는 문제없이 영업을 하는 듯 보였지만, 곳곳엔 수해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빗물 탓에 주방 식기 세척기는 고장이었고, 나무 식탁은 습기에 젖은 뒤 말라서 뒤틀려 버렸다.

최씨는 "수해 지원금은 200만원인데 식기세척기 교체 비용만 해도 그 가격이다. 인테리어 비용도 수천만원이 들 텐데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비 피해를 겪었던 서울 강남 등 서남부 지역의 시장 상인들은 추석 대목은 커녕 수마의 흔적으로 근심이 짙은 모습이었다. 다행히 힌남노의 피해를 피해갔지만, 그렇다고 대목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동작구 성대시장의 과일가게 업주 윤혁(58)씨는 "추석 대목을 보려고 지하실에 물건을 쌓아둔 한 마트는 (물건을) 폐기 처분해 20억 정도 재산 피해를 봤다"며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은데 또 태풍이 와서 가슴을 졸이게 하고 지방에서 막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더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윤씨는 "지원금이 나오는 것은 감사하지만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피해가 극심한 곳엔 추가 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수해 상인들은 "비가 온다고 하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며칠 전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윤씨는 "깜짝 놀라서 (상인들끼리) 비상 연락망도 (준비)하고 모래주머니도 가져다 뒀다"고 했다. 또 다른 상인은 "우리 가게가 또 물에 잠길까 잠 한숨 못 자고 새벽까지 가게를 지키고 서 있었다"고 말했다.

수도권을 덮친 폭우로 돌아갈 집이 없는 이재민들은 여전히 체육관, 임시숙소 등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재민 20여명이 머무는 동작구 사당종합체육관엔 서른 개의 텐트가 정렬해있었고 주변으로 수건, 상비약, 담요, 옷가지 등 생활용품이 놓여있었다.

동작구 사당종합체육관엔 여전히 이재민 2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양형욱 수습기자

이곳 이재민들은 추석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고 했다. 한 이재민은 "일주일 내로 복구하겠다고 했는데 늦어진다. 생활이 불편하다"며 기약 없는 체육관 생활에 답답해했다.

동작구청은 관계자는 '이재민들이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정해진 것이 없다. 최대한 빨리 복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할 뿐이었다.

수마가 할퀸 동작구, 관악구의 반지하 일대 주민들 역시 "명절은 꿈도 못 꾼다"며 한숨을 내쉬는 형국이다.

관악구 동작구 일대의 반지하엔 여전히 수마의 흔적이 있다. 양형욱 수습기자

동작구 주민 임해숙(62)씨는 "그날은 무슨 아이스크림통도 막 떠내려가고, 세 사는 사람들이 다들 갈 곳이 없어서 그냥 회관에 가서 지내기도 했다"며 "(이런 생활이) 회복도 안 된 상태에서 명절이 돌아오고 물가는 물가대로 치솟아 (물건 살)엄두가 안 난다"고 토로했다.

호우 피해가 심각했던 관악구 신림동 골목엔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가전제품과 뜯어진 장판, 가재도구 등이 여전히 골목길을 차지하고 있었다.

폭우 피해가 심각했던 관악구 일대엔 아직 정리되지 못한 가전제품 등이 남아있다. 양형욱 수습 기자

폭우 당일의 기억으로 힘들어하는 주민도 있었다. 김아영(18)씨는 "그날은 물이 배까지 차고 집에도 못들어갔다. 진짜 죽을 뻔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시민들은 이번 추석을 계기로 폭우 상흔에서 조금이나마 회복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세탁소 업주 70대 방춘일씨는 기계와 손님들이 맡긴 옷이 폭우에 젖어 손해가 막심하다며,  "올 추석엔 간소한 차례라도 지내지 못하고 지나갈 것  같다. 명절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방씨는 "수해를 입은 사람이 많아 서로 나누지는 못해도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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