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 풍년이 위기인 쌀값, 어디까지 떨어질까? ② 분노하는 농심(農心), 누가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나? (계속) |
지난달 중순 강원도 철원을 비롯해 경기도 이천, 안성 등 전국 곳곳에서는 올해 첫 벼수확이 시작됐다.
추석을 앞두고 햅쌀을 공급해 조금이나마 수익을 남기기 위해 올 봄 일찍이 조생종 벼를 심은 결과다
그러나 황금빛으로 물든 논을 바라보며 수확하는 농민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올해들어 국제적인 요인 등으로 비료(40%), 면세유(103%), 인건비(10%) 등 농자재와 원자재 비용은 오를 대로 올랐지만 햅쌀 가격이 지난해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수확하는 조생벼는 40kg 기준으로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평균 5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평균 7만원 선과 비교해 20% 이상 폭락했다.
햅쌀뿐만 아니라 지난해 생산된 구곡 쌀값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쌀 가격은 산지 80kg의 경우 평균 16만 9천935원이다. 지난해 평균 21만 9천551원에서 22.6%나 떨어졌다.
이에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농민들은 결국 거리로 몰려 도심 집회와 삭발 시위까지 강행하는 등 폭락한 쌀값에 분노했다.
1만여명의 농민들은 지난달 29일 서울역 앞 한강대로에서 총궐기 대회를 갖고 정부를 강하게 성토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모든 물가가 폭등하는데 정부의 늦장 대응과 미온적 대처로 쌀값만 폭락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농업을 홀대하고 멸시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정부의 쌀값 대책 마련,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 농업예산 확충, 농산물 수입 즉각 중단 등을 요구했다.
또한 햅쌀 출하에 앞서 창고에 쌓여 있는 구곡을 즉각 시장 격리해야 한다며 정부의 추가적인 시장격리도 촉구했다.
성난 농심은 이날 국회 앞 아스팔트 도로에 그동안 정성과 피땀으로 키운 나락을 쏟아내며 울분을 표출하기도 했다.
앞서 전북 김제, 전남 영암 등 각 지역에서도 정부의 쌀값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일부지역에서는 농민들이 정부가 쌀값 폭락을 외면하고 있다며 수확을 앞둔 논을 갈아엎기까지 하는 등 농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특히 올해는 대출 원금은 물론 이자부담까지 커지면서 결국 연말에는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을 판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근혁 전국농민회 정책위원장은 "벼 농사를 지으면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대부분의 농가에서 마이너스가 예상된다. 연말에 대출 원금과 이자도 내야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해 하는 농가가 많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농협 RPC(미곡종합처리장)도 올해 큰 손실을 보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곡창지가운데 한 곳인 강원도 철원지역의 경우 모든 RPC들이 창고를 이미 비웠다. 햅쌀을 받기 위해 지난날 중순 구곡을 모두 처분했기 때문이다.
싼 가격에 내 놓을 수 밖에 없어 철원지역 전체적으로 1백억원 이상의 손실이 난 것으로 전해졌다.
철원지역의 한 RPC 관계자는 "적자를 많이 봤지만 어렵게 쌀 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위해서라도 햅쌀을 받아야 해 어쩔 수 없이 구곡을 다 팔았다. 현재 철원지역에 구곡은 없고 대신 100억 원의 손실을 봤다"고 토로했다.
농민단체들은 다시 대정부 투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지역별 투쟁식과 논 갈아엎기를 진행하고 오는 11월16일 대규모 집회를 통해 정부의 쌀값 정책을 규탄하고 대책을 촉구한다는 일정이다.
이근혁 전국농민회 정책위원장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에 농민들의 분노가 크다"며 "급하게는 정부가 올해 중, 만생종 벼 수확 전에 지난해 구곡에 대한 시장 격리를 발표하고, 올해도 햅쌀 생산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전적 시장격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