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수많은 고비와 난관이 줄을 이었고 그때마다 최선의 노력 뒤에 따라오는 하늘의 뜻을 기다리곤 했었다"며 "앞으로도 그와 같은 자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수성은 1946년 1월 02일 (음력) 경주시 월성군 강동면 오금리에서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는 병을 달고 살았을 만큼 약골이었는데, 양동초등학교(44회)를 들어갈 무렵부터 건강체질로 바뀌어 갔다.
1961년 경주중학교(22회)를 거쳐 1964년 경북고등학교(45회)를 졸업한 그는 1966년에 육군보병학교에서 갑종 202기의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군문의 첫 임무는 수색중대 소대장. 젊은 혈기는 그를 월남전으로 가게 했고 1967년 10월, 백마부대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그는 두 다리에 한 발씩 총탄을 맞고도 전투 지휘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지금도 왼쪽다리의 총탄은 제거하지 못한 채 갖고 산다.
4성 장군시의 일들을 중심으로 나열하면, 국방부 특별진상조사단 단장으로 주요 현안을 명확하게 처리했다는 언론의 평을 받았다. 그 밖에 러시아 극동군관구사령부를 방문해 한.러 군사교류협력을 증진했던 것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그를 아는 사람들은 ''''솔직담백하고 선이 굵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야전지휘관''이라고 하고 ''''철저한 자기관리 및 솔선수범, 치밀하면서도 합리적인 성품 견지''''라고도 한다. 또 ''''야전교범으로 불리우릴 만큼 야전에서 대부분의 군생활을 마친 군인의 표상''''이라고 한다.
가족으로는 처 이복구(李福九,61) 씨와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 정연수(38-현 삼성생명 부지점장) 씨와 둘째 정성우(36-현 육군소령 복무) 씨가 든든한 그의 자산.
그는 "남은 생애를 고향 경주와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는 기쁨,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생과 사를 넘나들었던 야전군인으로서 40년, 그리고 다시 맞은 정치인의 삶은 얻고자 하는 욕심도 없고 잃을까 두려워할 그 무엇도 없는 채로 출발선에 선 느낌"이라며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 가슴에 훈장과 별을 달 수 있는 훌륭한 정치인으로서 남은 생을 멋지게 헌신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