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은 진작에 쇼핑 목록에서 뺐고, 과일도 개수를 확 줄였다. 손바닥만한 흰 종이에 사야 할 제수용품이 한가득이었지만 선뜻 카트에는 담지 못했다. 추석 명절을 앞둔 지난 7일 남편과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온 정모(67)씨는 "작년보다 40% 정도 물가가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물가가 엄청 많이 올랐어요. 고기도 올랐지만 야채는 정말 너무 많이 올라서 쓸 수가 없네."
마트에서 시금치가 한 단에 8천원, 재래시장에서는 6500원이었다. 잡채와 나물 반찬에 꼭 필요한 식재료지만 가족 수 만큼 넉넉히 사지는 못 하고 최소한의 양만 골라담았다. 과일도 올해 차례상에는 한 개씩만 올리기로 했다.
정씨는 "너무 비싼 건 빼고 차례 지내기로 해서 곶감은 뺐고, 과일도 사과는 5개씩 올렸는데 이번엔 한 개만 올리기로 했다"며 "그래도 돈은 똑같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물가 속에 추석 연휴를 맞는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고 있다. 물가 상승세가 여전한데다 올 여름 폭염에 이어 초강력 태풍까지 지나가면서 제수용품 가격도 지난해에 비해 크게 올랐다.
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 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배추 10kg짜리 도매 가격은 3만6040원으로 한 달 전에 비해 81.5%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했을 땐 무려 169.9% 상승했다.
시금치 역시 4kg 기준 6만6040원으로 한 달 전보다 58.1% 가격이 뛰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조사한 올해 추석 차례상 차림 비용은 4인 가족 기준 평균 32만3268원으로, 지난해보다 8.5%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4개 품목 중 20개 품목의 가격이 작년 대비 평균 16%가량 올랐고 품목별로는 시금치(86.0%), 참조기(32.8%), 대추(31.0%) 등의 가격 상승률이 눈에 띄었다. 시금치는 재배 면적 변동과 기상 악화 등으로 가격이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전통시장에서 구매할 때의 비용이 25만2656원으로, 대형마트(31만7692원)보다 6만원 가량 더 저렴했다. 실제로 7일 서울의 한 재래시장에는 명절 제수용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 시장 상인은 "고사리 팔려고 시금치 마진 거의 안 붙이고 가져다 놨는데 고사리는 안 사가고 시금치만 사 간다"며 "채소 가격이 너무 올라 100원이라도 싸면 금방 사간다"고 전했다.
손님 최모(70)씨는 "올해 배추가 장마통에 태풍오고 그래서 현지에서 다 썩었다"며 "지금 배추 한 통에 8천원, 9천원인데 김장철에는 얼마나 더 오를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명절 대목을 앞두고 위축된 소비 심리를 살리기 위해 유통가는 거리두기 해제 후 첫 명절을 맞아 가성비에 집중한 먹거리 할인행사를 진행중이다.
롯데마트는 8일부터 오는 14일까지 전점에서 제수용품 막판 할인행사를 연다. 외관에 흠이 있는 B+급 사과, 배를 '상생 사과', '상생 배'라는 이름으로 일반 상품 대비 30%가량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또 제수용 정육 상품들도 엘포인트(L.POINT) 회원 대상 최대 50% 저렴하게 판매한다.
고물가에 장보기가 부담인 소비자들을 겨냥한 간편식과 밀키트도 할인에 들어간다.
SSG닷컴은 간단히 조리해 명절 식탁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간편식과 밀키트를 최대 30% 할인 판매한다. '피코크X한일관 소불고기 밀키트', '99's fresh 밀푀유 전골' 등이 인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폭염에 태풍으로 고물가에 장보기가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을 위해 유통가가 특가 상품 물량을 늘리는 추세"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