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안돼." 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의 입에서도, 댓글에서도 자주 나오는 이 말은 사실일까?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그렇다. 태양이 너무 뜨거울까 싶으면 때맞춰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다. 산맥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은 농작물이 시원할 만큼만 살랑인다. 이런 나라에서 태양과 바람의 힘으로 온국민이 쓰는 전력의 일정량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완전한 답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해상풍력이다. 태양광이 산지와 논을 뒤덮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는 발전량을 빌딩 크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는 만들 수 있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산을 넘어 오는 것보다 세고 안정적이다.
지난달 24일 해상풍력발전기를 보러 전북 부안군 격포항을 찾았다. 서울에서 격포항까지 4시간, 다시 배를 타고 20분 정도를 나가니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현재 실증단지에는 1기당 3MW짜리 풍력발전기가 20기가 자리 잡고 있다. 90m 높이의 기둥과 65m 길이의 날개(블레이드)를 포함하면 키가 157m에 달해 위압감이 크다. 국내 해상풍력에서 주력 모델로 쓰이게 될 8MW 풍력발전기의 키는 232.5m에 달해 63빌딩과 맞먹는다.
지역에서 오는 전력을 날름 이용할 뿐인 서울사람에겐 바다 위 거대한 바람개비가 어쩌다 구경하는 신기한 풍경 정도지만, 어망을 당겨야 하는 주민들에겐 그렇지 않다. 벌써 나타난 피해는 물론이고 드러나지 않은 영향들까지 찬찬히 따져 발전기를 받아들이는 결정을 해야 할텐데 그런 여유는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전체 에너지믹스에서 20.9%를 채워야 한다. 지난해 기준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7.5%에 그친다.
태양광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국내 최대 규모 태양광 발전단지가 있는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선 96MW급 설비를 위해 약 27만평이 쓰였다. 해상풍력실증단지는 풍력발전기 20대로 총 60MW를 발전한다. 발전기들 사이 간격을 유지하며 세우기 위해 필요한 면적도 만만치 않지만, 실증단지에선 풍력발전기 반경 100미터 밖으로는 어선 통항이 가능하도록 조율했다. 대부분의 태양광 패널 아래 땅이 사실상 버려지는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관건은 역시 주민수용성이다. 기존 어장이나 생활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지, 어디까지 보상의 대상이 될 것인지 등 첨예한 사안 투성이다. 통상 어민들은 사업 시작 전에 미리 피해규모를 따져 보상부터 한 후 사업에 착수하라 하고, 사업자 측은 추후에 실제 피해액을 확인한 후 사후보상 할 수 있다고 대립한다.
서남해 실증단지의 경우 풍력발전 사업구역 내에 있는 어업권은 사전에 보상하고 그 외의 경우 피해정도와 규모 등을 조사해 감정평가하고 준공 전에 보상하는 방식을 택했다. 사업 초기에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는 등 부침이 있긴 했지만 결국은 합의점을 찾은 셈이다. 그러나 다른 해상풍력 사업에서도 사업자와 주민간의 이해관계가 이처럼 적당히 맞아떨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력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업자인 한국해상풍력은 한국전력과 발전자회사들이 출자해 만든 회사이다 보니 민간기업보다는 주민들의 이해에 우호적이었을 것"이라며 "부안 역시 원전보다는 풍력이 낫지 않겠냐는 불안함이 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부안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전남 영광 한빛원전은 대규모 공극(구멍) 문제로 몇 년 째 논란이 되고 있는데다, 2003년엔 부안군 위도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유치 문제로 군민들이 반으로 갈라져 폭력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다. 앞으로 고준위 방폐물 처리장 입지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상황에서 주민들이 '원전 관련 시설보다는 풍력'을 택할 유인이 있었던 셈이다.
어려운 점은 앞으로 이런 협의를 거쳐야 할 어촌계와 민간 사업자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유충열 수협중앙회 해상풍력대응지원반장의 말에 따르면 "(풍력발전기가 다 들어서서) 빈 바다가 없을 정도"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라 전국 136개소에서 해상풍력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현재 운영 중인 곳이 6개소(132.5MW)이고 사업 인허가를 취득한 곳이 65개소(18.7GW)다. 사업비 규모만 약 107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땅만 좁은 줄 알았지, 바다 삼면도 이렇게 좁은 줄은 해상풍력발전 계획지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수심이 깊어지는 일부 동해안을 제외하고는 모두 풍력사업자들이 발전기를 세우겠다고 '찜'을 해놓은 상황이다.
건설 시 안정성이나 비용, 육지로부터의 계통 연결 문제 등을 따졌을 때 해상풍력발전기가 들어서기 좋은 입지는 작은 어선들이 물고기를 잡기 좋은 황금어장과 겹친다. 인허가를 취득한 65개 해상풍력 발전사업 중 61개가 어업활동 보호구역 안에 들어가 있다.
서남해 실증단지도 처음엔 풍력발전기 20개가 들어선 바다 구역 전체를 조업 금지했다가 '발전기 반경 100미터 이내'로 조율했지만, 실제 어업에 영향이 없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또 '어업에 얼마나 큰 피해가 생길 것'이라고 미리 계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유충열 반장은 "결국 힘의 논리로 돈이 더 많은 사업자라면 (어업이나 환경피해와 상관 없이) 사업이 강행될 것"이라며 "전 세계가 다 하고 있는 계획입지제도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획입지는 정부 주도로 어업과 환경 영향 등을 고려해 적합 입지를 선정한 후 사업자 입찰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수심이 적당하고 바람 잘 부는 곳이면 사업자들이 풍향계부터 꽂고 인허가를 추진하고 있어 마찰이 더 큰 상황이다.
사업자 측은 그 나름대로 정부의 불분명한 규제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최덕환 한국풍력산업협회 팀장은 "정부가 인허가를 내준 후에도 규제가 계속 바뀌고 일방적으로 통보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지침에 따르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불명확·불확실성으로 사업이 또 흔들릴 수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한 비용 상승이 치명적이다. 진보·보수 어느 정권인지와 상관없이 계속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상풍력발전 인허가를 위해서는 해양수산부·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국방부·해경·문화재청·지자체 등에서 각각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부처별 입장이 조율되지 않아 각 절차들 사이 충돌이 생기면 당연히 안정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고, 사업자가 주민에 대해 확실한 보상과 이익공유를 약속하기도 힘들어진다.
결국 '탄소중립'이 그렇듯 그 과정 중 하나인 해상풍력발전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도 규제기관-사업자-주민 간 '공조'가 필수인 셈이다. 그 예고편은 '풍력발전 보급 촉진 특별법'(일명 원스톱샵 법)의 논의 과정을 통해 볼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 10개 부처·29개 법령의 적용을 받는 해상풍력발전 인허가 절차를 한 데 모으는 방안과 어업인 등 이해관계자의 참여 근거와 방식 등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