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심장' 대구서 '심판론' 꺼내며 공천 겨냥…이준석의 도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4일 오후 대구 중구 김광석 거리에서 당원들과 만나 발언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 방식으로 지역 당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당 대표가 4일 기자회견에서 전달한 메시지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 지역 의원들을 콕 집어 '도망쳐 있는 12척의 배'에 비유하며 공개 저격했다는 점이다. 그는 비상대책위원회로의 지도부 체제 전환에 저항하며 법적 공방을 벌이는 한편 핵심 지역 당원들에게 '공천'의 주인은 당 지도부가 아닌 민심이라고 호소하는 등 당의 급소를 계속 노리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대구 김광석거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께서 아무리 서문시장에 오셔서 대구에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도, 실제 일을 해야 할 대구 정치인들이 바뀌지 않으면 대구 정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지금 대구의 정치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위가 아니라 아래를 보는 정치, 누군가에게 공천받기를 기대하는 모습보다는 민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로 탈바꿈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 특성상, 지역구 의원들이 '공천'만 바라보며 충성경쟁을 하고 있다는 취지로 "당심의 심판"을 거론했다. 대구를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 12명을 겨냥해 "지금 대구의 12척 배는 싸움이 벌어져도 매번 바다 밖 뒤에 가서 도망쳐있다. 당심의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 위에 떠 있는 일개 국회의원 정도는 당심의 분노가 뒤엎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셔야 한다"며 "공천 한번 받아보기 위해 불의에 귀부한다면 그 권력자가 아니라 대구 시민이 그들을 심판할 수 있다는 걸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이 전 대표의 발언은 국민의힘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를 '영남당'의 한계에서 찾았던 지난 문제 의식들과 통하는 측면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 등지에서 상당수 의석을 내주면서 당내 다수 의원이 특정 지역의 민심과 지도부의 의중에 크게 의존하는 결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대구는 국민의힘 전통 지지 기반일 뿐 아니라 상당한 당원 수를 가진 곳이다. 그동안 당내에서 공개적으로 나오기 어려웠던 주장을 이 전 대표가 이날 회견의 주요 화두로 들고 나올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최근 이 지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상황이 꼽힌다. 이 전 대표가 보수 진영의 정치인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 전통 지지층을 설득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이 전 대표가 "'근정훈장'을 받은 공무원 출신이 대구 정치를 대표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을 두고도 "현장감, 민심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차원에서 이들 의원을 비판하고 민심 전환을 꾀한 것(국민의힘 관계자)"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 전 대표는 "대구 시민은 항상 보수정당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다"며 '죽비'를 들 주체로서 대구 시민의 자긍심을 북돋워 주기도 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대구 중구 김광석 거리를 찾은 지난 4일 오후 당원ㆍ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 방식으로 지역 당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연합뉴스

정면 공격을 받은 대구 지역구 의원들은 이에 반발했다. 이 전 대표가 자신을 '누군가의 전위대'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이 전 대표가 하루가 다르게 우리 당에 대한 비판을 쏟아놓는 통에 지역 사무실을 통한 항의 전화나 방문이 계속되고 있다. 지역구 의원으로서 이런 당심과 의원총회의 결론을 존중하는 행보를 하는 게 맞지 않냐(당내 초선)"거나, "보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등에서 나타나듯, 절대다수가 이 전 대표의 행보를 비판하고 있는 게 대구의 현실이다. 이 전 대표는 대구 의원들의 '비겁함'을 죽비로 때려달라고 말했지만, 애초에 타깃 자체가 잘못됐다(또 다른 초선)"고 반박한 것이다.

다만 일부 "이 전 대표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의견도 있지만, 당 지도부가 서둘러 이 전 대표의 퇴진을 추진하느라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당내 초선)"거나 "이 전 대표를 더 확실하게 쫓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강성 당원들도 있지만, 당이 이래서 되겠냐는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도 만만찮다. 큰 목소리로 나는 의견들이 전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또 다른 초선)"는 다소 냉정한 분석도 있었다.

한편 국민의힘은 지난 2일 상임전국위원회에서 새 비대위 출범을 위한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5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ARS 투표를 통해 당헌 개정안 의결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오는 8일에는 비대위를 출범시키는 등 추석 밥상에 '새로운 비대위'를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이 전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 인용으로 비대위 직무를 정지당한 주호영 의원이 새 비대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다만 '도로 주호영'이라는 비판 우려를 감안해 외부 인사를 영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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