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포의 주유소 삼거리…이틀 연속 새벽 사망사고 왜?

이틀 연속, 차에 치여 사망…장소부터 발생 시간까지 유사
고령자, 시·공간적 특성, 내리막길…다양한 원인
사라진 과속 단속 카메라…'예산 부족'으로 공백
경찰 "카메라 설치, 재발 막기 위해 각종 안전 조치"

지난 7월 7, 8일 서울 강서구 한 주유소 앞 삼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던 60대 여성과 80대 여성이 이틀 연속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발생한 주유소 앞 삼거리 횡단보도 모습. 황진환 기자

서울 강서구의 한 주유소 근처 삼거리에서 이틀 연속 유사한 교통사망사고가 발생해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무단횡단과 과속, 전방주시 태만 등이 표면적인 원인으로 분석되지만 사안을 좀 더 면밀히 따져보면 입체적인 요인이 드러나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고에 쉽게 노출되는 고령자 특성부터 과속 단속 카메라 문제까지. 전문가들은 해당 사건을 계기로 안전 장치 예산 확보, 도로 체질 개선 등 재발 방지를 위한 다각도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틀 연속, 차에 치여 사망…장소부터 발생시간까지 '유사'

지난달 7일 오전 4시 43분쯤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한 주유소 앞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을 하던 A(68)씨가 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를 낸 운전자 B(60)씨는 충돌 당시 시속 116km로 달리고 있었다. 해당 도로의 제한속도인 시속 50㎞를 두 배 이상 넘긴 과속이었다.

다음날인 8일 오전 4시 50분쯤에는 같은 횡단보도를 무단횡단하던 C(81)씨가 차량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사고를 낸 운전자 D(60)씨는 시속 50~60km으로 운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교롭게도 이틀 연속 같은 장소, 비슷한 시각에서 교통사망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사고가 발생한 형태도 유사하다. 편도 5차로에서 4차로로 운행하던 B씨는 진행방향 좌측에서 우측으로 무단횡단하는 A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충돌했다. 차량 사이드미러 부분으로 부딪혔으나 과속으로 인해 충돌 강도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D씨의 경우 5차로를 따라 가는 중 역시 진행방향 좌측에서 우측으로 무단횡단하는 C씨를 피하지 못했다. D씨는 과속은 아니었으나 차량 전면 부분으로 C씨와 충돌했기에 끝내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B씨와 D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각각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차량 블랙박스 등을 통해 수사를 했다"며 "과속의 경우 일반적으로 검찰 구형 단계에서 형이 더 추가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달 7일과 8일,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한 주유소 앞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비슷한 새벽 시각에 교통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왼쪽은 7일 사고 재연, 오른쪽은 8일 사고 재연이다.

고령자, 시·공간적 특성, 내리막길…다양한 원인

연이은 사고는 단순한 우연일까. 무단횡단과 과속, 전방주시 태만 등 다양한 요인으로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런데 사고를 면밀히 따져보면 좀 더 다각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우선 전문가들은 숨진 2명이 68세와 81세로 고령자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이들 가운데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 이상일 정도로 높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간 발생한 무단횡단 사고 사망자 2144명 중 노인은 1353명으로 63.1%에 달한다. 작년 사망자 중 노인 비율은 무려 70.8%를 차지했다.

노인 사망 비율이 높은 이유는 사고에 취약하다는 점 뿐만 아니라 인지적·신체적 특성이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길을 건너선 안 되는 경우에도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실험에 따르면, 노인들은 젊은 층에 비해 더 위험한 상황에서도 횡단보도를 건너려 시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60세 미만은 횡단보도로부터 76.7m의 거리에 차량이 있을 때 길을 건너길 포기하는 반면, 60세 이상은 차량이 64.7m의 거리까지 왔을 때 비로소 길을 건너길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에 부딪힐 가능성이 더 큰 상황에서도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인의 신체적 특성 또한 사고 위험을 키운다. 노인들은 젊은 층에 비해 신체가 경직돼 있어 시야가 제한된 탓에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노인들은 사물을 또렷이 보는 범위를 일컫는 '중심시'를 민첩하게 옮기는 능력이 젊은 층에 비해 현저히 낮아, 주변 사물의 움직임을 정확히 포착하기 어렵다. 하승우 한국교통안전공단 안전관리처장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자신의 중심시 바깥에 있는 차량이 다가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리가 아파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기 어렵거나, 빠르게 오는 차량에 대해 대처가 늦는다는 점 등도 노인 보행사고 요인으로 보인다. 무단횡단은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기에 계도와 단속이 필요하지만 근본적 사고 예방을 위해선 구조적 원인을 짚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지난 7월 7, 8일 서울 강서구 한 주유소 앞 삼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던 60대 여성과 80대 여성이 이틀 연속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발생한 주유소 앞 삼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의 모습. 황진환 기자

현장의 시·공간적 특성도 연이은 사고의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두 사고가 발생한 시각은 오전 4시경으로 주변이 깜깜해 시야가 제한되는 시간대다. 하승우 처장은 "새벽에는 시야의 폭이 평소보다 6분의 1 가량으로 줄어들고, 전방을 인식할 수 있는 인지거리 또한 절반으로 줄어든다"며 "전조등에만 의존한 채 주행하는 운전자들은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사고 지점으로부터 약 2.4km 떨어진 곳에서부터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2차례 반복되며, 사고가 난 횡단보도는 내리막길에 위치해 있었다. 내리막길의 사고 위험이 평지에 있는 도로보다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사고 현장 인근에는 대형마트, 시장, 공원, 먹자골목 등이 위치해 있다. 삼거리로 형성된 도로에 보행자들이 수시로 다니면서 무단횡단에 쉽게 노출되는 조건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두 사건보다 앞서 지난 2월 16일 오전 6시 29분쯤 사고 지점에서 불과 1.4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무단횡단을 하던 80대 노인이 시외버스에 치여 숨지기도 했다.

사라진 과속 단속 카메라…'예산 부족' 안전 공백


단속 카메라. 연합뉴스

해당 사고는 최근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에서 주최한 교통 관련 회의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사고 현장에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나기도 했다. '과속 단속 카메라'가 없었던 것이다. 단속 카메라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사고 이후 한 달 이상이 흐른 지난달 19일에서야 급히 카메라가 설치됐다.

현장에 단속 카메라가 없었던 이유는 예산 때문이다. 사고 현장엔 과거 단속 카메라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설치한 지 10년이 지나는 등 사용 연한을 넘긴 데다가 고장이 나 지난 2020년 10월 25일 철거됐다. 이후 재설치까지 2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서울청에 따르면 단속 카메라 설치 및 재설치가 필요한 곳은 1년에 100곳 이상인데, 1년 예산으로는 30~40대 정도 밖에 설치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단속 카메라 관련 올해 예산은 약 8억원 정도로 40여 대를 설치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친다.

그러다 보니 경찰은 우선순위를 매겨 사고 위험이 더 큰 곳부터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교통사고위험도지수(ARI)를 산출해 사고 위험이 높은 곳을 가려내고, 단속 카메라 설치장소선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뒤 설치 및 재설치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 사고 현장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ARI 산출 대상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무인 단속 카메라 유지를 위해 충분한 예산을 요구해도 실제 필요한 예산의 절반 가량만 편성된다"며 "그러다 보니 카메라를 달고 싶어도 못 하는 곳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시·도경찰청장, 경찰서장 또는 시장 등'은 무인 단속 카메라를 비롯한 교통단속용 장비를 설치하고 관리할 수 있다. 현재 단속 카메라 설치는 경찰이 설치 필요성에 따라 지자체를 통해 예산을 확보하고 시행한다. 지난해 7월 자치경찰제 시행 이후에는 단속 카메라와 관련한 국비 지원은 사라지고, 각 지자체 예산으로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게끔 했다. 지자체 예산 격차에 따라 단속 카메라 설치 차이 문제도 생길 수 있는 셈이다.

지난 7월 7, 8일 서울 강서구 한 주유소 앞 삼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던 60대 여성과 80대 여성이 이틀 연속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발생한 주유소 앞 삼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의 모습. 황진환 기자

전문가들은 단속 카메라 예산 확보와 도로 체질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하승우 처장은 "무인 단속 카메라를 비롯한 교통 안전 장비 및 시설 확충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동시에 교통법규 준수를 유도하는 계도와 단속도 강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다르게 운전자들이 운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일 수 있게 도로 포장이나 도로 선형, 도로 폭을 설계한다"며 "우리나라도 사후적으로라도 도로 포장, 선형, 폭을 좀 조정해야 한다. 본질적으로는 일단 도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강서구 교통사고와 관련 현장에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하는 한편, 중앙선에 바닥 경광등을 배치하는 등 사고 재발 방지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현장에 단속 카메라를 비롯해 야광 신호등, 볼록거울, 안전바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며 "바닥신호등 설치를 위해 2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고, 장수의자 설치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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