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외교부 장관이 광주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만나 장관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문제를 조속히 풀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대법원이 일본 전범 기업들의 국내 자산 매각 여부를 최종 심리 중인 상황에서 외교부에 대법원이 낸 의견서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2일 오후 광주를 찾아 이춘식(98) 할아버지와 양금덕(91)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 2명을 만났다.
박 장관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박 장관은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 할아버지 집(광주 광산구 우산동)을 찾아 "문제가 잘 풀리고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저희가 방안을 잘 마련하겠다"며 "일제 치하에서 강제 징용의 고초를 겪은 어르신을 직접 찾아뵙고 경청하기 위해 왔다. 정부는 문제를 최대한 조속히 진정성을 갖고 풀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박 장관에게 "보상을 못 받아서 재판했다. 살아있을 때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0월 일본제철이 이춘식 할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각기 배상금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일본 기업이 배상을 거부하면서 해당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를 위한 절차를 거치고 있다.
이후 박 장관은 서구 양동으로 이동해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의 집도 방문했다. 이날 양금덕 할머니는 박 장관에게 "나는 일본에게 사죄 받기 전에는 죽어도 죽지 못한다. 대법원에서 승소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도 기뻤습니다. 우리 정부는 무슨 말 한 마디 못하고 있나요"라는 내용이 포함된 편지를 직접 전달했다.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됐던 양 할머니는 미쓰비시를 상대로 국내 자산 현금화(강제 매각) 명령을 내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미쓰비시 측의 재항고로 대법원이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박 장관은 외교부가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피해자분들은 의견서가 판결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법원 판결 선고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구속력도 없다"라고 설명했다.
또 "의견서는 그동안 외교부가 민관협의회를 통해서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을 했던 것과 한일 간의 교섭 동안에 진행해 온 외교 활동을 참고하라는 뜻에서 법원에 보낸 것"이라며 "과거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의견서 제출은 전범기업의 손을 들어준 꼴"이라며 "의견서 제출이 위법하다는 지적이 아니다. 아무 구속력이 없는 참고 자료를 대법원에 왜 보냈느냐. 박 장관은 이날 최소한 의견서 제출에 대한 언급을 했어야 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의견서 제출로 마지막 수단마저 빼앗긴 셈"이라며 "한 마디 사과 없이 피해자들의 손을 잡은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앞서 외교부는 대법원에 '한일 양국이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