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청년도 노인도 불행한 '인구 디스토피아' ②놀이터엔 노인들만…"애 한 명도 안 태어난 마을도" (계속) |
"옛날에 대면 젊은 세대가 많이 줄었죠. 전부 대구다 어디다 다 시내로 나가잖아요. 요새는 아이들이 귀하니까…조그마한 아들 봐도 예쁜 짓하고 이라면 웃음 나고 좋은데 아이들이 없잖아요. 아기들 돌아다니는 걸 봐야 우리도 즐거운데…"
경북 의성군 안계면 마을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놀이터에서 만난 주민 김모(75)씨의 말이다. "아이가 귀하다"는 김씨의 말처럼 이곳 놀이터에서는 다른 놀이터들과 달리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놀이터 가장자리에 위치한 정자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할머니들의 목소리만 이따금 들려올 뿐이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지난달 23~24일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인 의성군 내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주민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
인구소멸 고위험지역이란? |
소멸위험지수는 한 지역의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으로 이 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이 지수가 0.2 미만인 지역을 소멸 고위험 지역이라고 한다. 의성군은 2022년 7월 소멸위험지수가 전국 지자체 중 두 번째로 낮은 0.11이다. |
낡은 건물, 글씨 색이 바랜 간판, 손님 없는 식당…지난달 24일 점심 무렵 찾은 의성군 안계 전통시장 골목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풍경이다. 안계면은 의성군 내에서는 그나마 활동 인구가 가장 많은 마을이지만 이곳에서 생업의 활기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가게 간판은 걸려있어도 꽤 오랫동안 장사를 하지 않는 듯 셔터 밑동에 먼지가 수북한 가게도 있었다. 1시간 넘도록 손님 한 명이 찾지 않는 한 식당 가림막 뒤에는 70·80대로 보이는 노인들만 여럿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가끔 오가는 주민 중 겉보기에 30대 이하는 10명 중 1명도 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이곳 주민들은 안계면 마을이 이처럼 활기를 잃은 것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계면에서 태어나 시장에서 장사해 온 최모(67)씨는 특히 최근 20년 동안 급속도로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이 빠르게 주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30년 전까지도 안 갔죠. 20년 전만 해도 시장에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요. 장사꾼도 많았지만 장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고…젊은 사람들, 특히 우리는 배부른 사람들, 아이 가진 사람들을 '사장님'이라 했거든요. '오늘 사장님이 많네'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어쩌다가 외국에서 시집오는 사람들만 조금씩 있고 젊은 사람들이 없어졌어요".
같은 날 방문한 읍내 역시 인구가 줄어든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읍 중심에 있어 한때 주민들이 애용했다는 한 목욕탕은 갈수록 찾는 사람이 사라져 이제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읍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도로를 따라 사람이 살지 않아 '폐가'가 된 빈집들도 중간중간 보였다.
현장에서 체험한 인구 감소는 통계로 명확히 드러난다. 2008년까지 6만명대 인구를 유지했던 의성군은 14년 연속 매년 1천명 내외 인구가 사라지고 있다. 이 추세면 2022년에는 4만명대로 인구가 내려앉을 가능성이 높다. 6만명대에서 5만명대로 내려온 지 14년 만이다. 이러한 추세를 두고 이 지역 인구정책을 담당하는 박현주 의성군 인구정책계장은 "두렵다"는 표현을 썼다.
"몇십 년 뒤에는 의성군 내 18개 면에서 살아남는 면이 몇 개 안 남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줄고 있어요. 아이를 한번 구경 못해본 동네도 많고요. 이쪽에서 일하다 보면 되게 심한 게 막 느껴지거든요. 밖에서 뉴스로만 보면 체감을 못 해요. 그런데 매달 인구 분석을 하고 줄어드는 걸 수치상으로 가만히 보고 있다 보면 두렵다니까요".
이러한 급격한 인구 감소의 주원인은 저출생 그리고 젊은 인구의 유출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의성군 출생아 수는 506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후 전국적인 저출생과 함께 지속적으로 숫자가 감소해 2011년부터는 200명대로 떨어졌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지난해에는 178명으로 처음으로 100명대까지 내려왔다. 의성군의 작은 마을인 신평면에서는 지난해 한 명의 아이도 태어나지 않았다.
20~30대 인구 유출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11년 1만73명으로 전체 연령 대비 17% 수준이었던 해당 연령대 인구는 2021년에는 절반 수준인 5784명, 전체 연령 대비 11%까지 떨어졌다.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청년은 떠나며 의성군은 빠르게 늙고 있다. 의성군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을 뜻하는 고령화율이 43%로 전국 1위다. 10명 중 4명은 노인이라는 뜻이다.
저출생 그리고 청년층 이탈로 시작된 인구 감소는 노인이 대다수인 이곳 주민들의 삶을 하나둘 위협하고 있다. 주민들이 가장 먼저 체감하는 불편함은 교통편의 축소다. 인구, 특히 이동량이 많은 청년층이 줄어들며 의성군 내 마을끼리, 혹은 의성군과 외부 대도시를 연결되는 버스 운행도 따라 줄었다. 이는 고스란히 이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안계면 주민 이순자(71)씨는 "교통편이 정말 많이 줄었다. 서울 가던 게 그래도 하루에 일곱, 여덟 편은 됐는데 이제 4편 밖에 없다. 마을버스도 마찬가지"라며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다 자가용을 가지고 타지만 노인들은 나이가 있어서 운전을 못 한다. 버스가 다녀도 오래 기다리느라 불편해서 못 탄다"고 토로했다.
의성군의 주력산업인 농업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농촌 일손 부족이 당장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의성군은 경상북도 면적의 6.2%를 차지할 정도로 크고 이중 논과 밭이 18%에 이른다. 이처럼 넓은 논과 밭을 가꾸려면 체력이 좋은 청년들이 필요한데 최근 계속된 청년층 이탈로 농삿일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의성군 다인읍에서 15년 넘게 이장을 지낸 김봉수 밀성권역도농교류 센터장은 "농촌 일손이 굉장히 부족하다. 경작 규모를 확대해야 이곳도 먹고 살고 아이들 공부도 시키고 하는데 인구가 주니 자꾸 이러한 문제가 더 심화된다"며 "결국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밖에 없는데 우리와는 아무래도 정서가 다르니 애로사항도 많다"고 했다.
"친구 부를 정도로 좋은 곳인데…애 낳고 키울 생각하니 걱정"
인구감소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 만큼 의성군도 청년층 유치를 위해 전력을 쏟고는 있다. '도시 청년 한 달 살아보기' 등 여러 체험 활동부터 청년농업인 스마트팜 창업, 청년창업 지역정착 등 갖가지 지원사업을 펼친 끝에 지난 2018년부터 올해까지 4년 동안 140명의 청년이 수도권 등에서 의성군으로 유입됐다. 이런 노력에 2020년 전국 인구소멸 위험 1위였던 의성군은 2위로 내려온 상태다.
이 청년들 대다수는 도시의 번잡함보다 시골에 매력을 느껴 의성군에 왔기에 삶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곳에 오랫동안 정착해 살아가는 건 '다른 문제'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의료시설의 부족 문제가 이들이 의성군에서의 정착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다. 청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더 많은 청년들이 의성군에 와 정착하고 결혼하고, 더 나아가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릴 생각을 할 것이라고 했다.
비건 베이커리 '오밀조밀'을 운영하는 이서연 대표(31)는 "여자로서 산부인과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의성에서 태어난 친구들 대부분도 물어보면 10명 중 9명은 인근 안동에서 태어났다고 한다"며 "만약에 출생 관련이든 여성 질환이든 문제가 있으면 안동 또는 대구로 가야 된다. 병원 인프라 문제는 의성에서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성군에 산부인과는 한 곳 뿐이며 연계시설인 산후조리원은 현재 없는 상황이다.
주민 대상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준비 중인 백보영 하람예술센터 대표는 "이곳에 와서 같이 일하자고 친구들에게 말할 정도로 의성군이 좋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하니 이대로면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며 "너무 먼 이야기지만 '만약에 아이가 아프면?' '차를 오래 타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프면?' '가까운 곳에 가야 하는데 새벽에 응급실도 가야 하고 한다면? 병원은 먼데?' 이런 점이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오랜 기간 의성군에서 살아 온 주민들 또한, 청년들의 정착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로 아플 때 맘 놓고 찾을 수 있는 병원이 부족한 점을 꼽았다. 30년 넘게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한 신선희 안계하나어린이집 원장(60)은 "이곳 부모님들이 아이가 아프면 안동, 상주, 대구 등 거의 외지로 나간다"며 "의성군에 소아도 진찰하고 청소년도 진찰하고 이렇게 다 할 수 있는 의료시설이 있다면, 여성 병원이 한 곳이라도 제대로 있다면 (청년들이) '이 곳에서 살 만하다'고 생각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새롭게 청년을 유입시키려는 노력만큼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년을 안착시키는데 더욱 신경 써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연고가 있는 데다 도시 청년들에게는 낯선 농촌 환경도 이미 익숙한 만큼 작은 경제적 지원만 있어도 손쉽게 정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봉수 센터장은 "여기서 나고 자란 청년은 의지할 곳과 기반이 있어서 작은 지원만 있어도 잘 정착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도시에서 오는 청년들은 맞춤형 교육을 받아서 후계자 선정 기준을 딱 맞추지만 오히려 지역 친구들은 그런데 밝지 않아 대부분 탈락한다"며 "군 입장에서는 명확한 기준대로 해야 원성이 안 나오니 이해는 하지만 기존 청년들 몫도 남겨준다면 쉽게 떠나지 않고 정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