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이락'으로 '표적감사' 논란 자초하는 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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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고 감사원도 바뀌었다. 그전 문재인 정부에서 다소 의문이 남았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어민 북송 사건은 물론, 'K-방역'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코로나19 대응까지 전방위 감사가 진행되거나 진행될 예정이다.

정권교체는 전 정부가 실정을 저질렀다고 비판하면서 이뤄지는 만큼, 현 정부 입장에서는 전 정부의 인사나 사업들이 달가울 리 없다. 완전무결한 정부나 정책은 없는 만큼, 감사를 통해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는 여론이나 생각도 있을 터다.

문제는 방식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이 있듯, 감사원의 행보를 보면 표적 감사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려워서다.

전 정부서 주목받던 사안들 줄줄이 감사…권익위와 방통위는 '사퇴 압박' 중

2019년 북한 어민 강제북송 사건, 2020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2021년 코로나19 백신 수급 지연, 2022년 3월 대선 '소쿠리 투표' 논란. 이들의 공통점은 전 정부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던 일들이고, 동시에 감사원이 현재 감사를 하고 있는 일들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전 정부에서 임명됐던 기관장들에 대해 여권에서 '사퇴' 압력이 나오고 있는 몇몇 기관들에 대한 감사도 추가됐다. 대표적인 예로 국민권익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있으며 이밖에도 앞서 언급된 사건들을 감사하기 위해 국가안보실, 국방부, 해양수산부, 통일부, 외교부, 국가정보원, 합동참모본부, 해양경찰청, 해군본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감사 대상에 올랐다.

물론 이 가운데는 보통 3~4년에 한 번씩 진행되는 정기감사도 있고, 공직기강 점검을 맡고 있는 특별조사국이 제보나 첩보를 받아 착수하는 감사도 있다. 권익위가 대표적인 예인데, 권익위원장이 오후에 세종으로 '지각 출근'하는 일이 잦다는 첩보에서 이번 감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일어날 당시에는 권력의 힘에 의해 은폐됐을 수 있는 비위나 미비점을 밝혀내 고쳐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현재까지 감사원의 행보를 보면 그러한 의심을 지우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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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희 권익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로, 여권으로부터 '정부 기조와 맞지 않는다'며 사퇴 압력을 받고 있지만 임기가 보장돼 있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이 사퇴를 거부하자 감사가 시작됐다. 방통위는 정기감사이기라도 하지만, 권익위는 특별감사다.

전 위원장은 8월 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지난해 권익위가 감사를 마쳤는데 사실상 정기 감사와 똑같은 감사를 또 하는 일은 이례적이다"며 "근무 태도 관련 감사라고 하는데, 장관들은 서울과 지방 그리고 세종이 사실상 근무지로 오전에 서울에서 근무하고 오후에 세종 사무실로 가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사혁신처에 장관들의 세종 출근율을 점검하는 내용이 있는데 권익위는 항상 상위권이다"며 "오전에 업무하고 오후에 세종에 근무하러 출근하는 장관에게 상습 지각이라는 잣대를 씌우려면 세종에 안 가는 장관들은 상습 결근 아니냐"며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

한상혁 방통위원장도 7월 2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기감사를 두고 "개인적으로는 정기 감사의 업무 범위를 넘어선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현희·한상혁 위원장은 국무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서면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감사원법엔 "직무에 관하여 독립 지위"…'표적감사' 논란 불러일으킨 감사원장 발언

최재해 감사원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헌법 97조는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고 정하고 있다. 감사원법 2조는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항을 법에 굳이 적시한 이유는 감사원이 공무원들의 '저승사자'라고도 불리는 만큼, 정치적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이 있듯, 감사원의 행보를 보면 그러한 논란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대표적으론 수장인 최재해 감사원장이 있다. 그는 7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냐"라고 묻자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직후 조 의원은 "제가 약간 충격이 왔다"며 "감사원은 대나무처럼 꼿꼿해야 하는데 갈대처럼 흔들흔들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무줄처럼 더 흔들흔들한다"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감사원이 국정 지지율을 올리는 기관은 아닌가. 설마 거기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고,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국정운영을 지원하느냐"고 재차 물었고, 최 원장은 "감사를 통해 정부가 잘되고, 그 정부가 잘됨으로써 국가가 잘되고 국민이 잘살게 되는 역할을 하는 게 감사라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법사위원장도 최 원장을 향해 "저도 귀를 의심케 한다"라며 "지금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도 되어 있지 않은 발언을 했길래 저도 한번 확인을 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이날 밤 9시쯤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법제사법위원이 예, 아니오로 답변할 것을 전제로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입니까, 아닙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최재해 감사원장의 발언은 그 취지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감사원이 직무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히 해야 하는 것은 불변의 과제이지만, 독립성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도 정부가 일을 잘하도록 하려는 감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쉽게 말해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에 답을 하긴 해야 하니 그렇게 답했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 백신 수급은 왜? 전문가 "지금은 감사 아닌 지원할 때"

사진공동취재단

오비이락을 떠나 타당성 자체가 의심을 받고 있는 감사도 있다. 코로나19 대응, 특히 백신 수급 관련 문제다.

한국은 세계 주요국 중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뒤늦게 시작한 편에 속한다.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영국은 2020년 말에서 2021년 초 사이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한국은 2021년 2월에야 코로나19 의료진과 요양병원·시설의 종사자·입소자 접종을 시작했다. 일반 대상 접종은 그해 4월 65세 이상 고령층부터 시작해 대상 연령대를 차츰 낮췄다.

이 시기 백신 도입이 늦어지면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졌고 그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단, 2020년까지 하루 신규 확진자 최다치가 1240명을 기록했고 그 때문에 백신의 안정성을 잘 따져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크게 제기됐었다. 백신 접종을 빨리 시작한 나라들은 코로나19가 하루 수천~수만 단위 확진자가 나올 정도로 유행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한국 백신 접종률은 2020년 12월 80%를 넘었고 현재도 다른 나라들보다 접종율이 상당히 높다. 방역은 국가 정책인 만큼 각 부처의 의견과 상황을 종합해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인이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여실히 반영하는 사례다.

한림대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8월 26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유행은 계속 지속되고 있고, 계속 방역 대응을 하고 있고, 질병관리청과 보건복지부가 방역 전환을 위해 논의를 많이 해야 하는데 감사가 시작되면 업무를 거의 하지 못한다"며 "지금은 행정적인 부분이나 여러 측면에 있어서 질병관리청이나 보건복지부가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지원하는 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한 시기"라고 비판했다.

더군다나 현 정부가 강조하는 '과학방역'의 경우, 자신들이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의 '정치방역'과 무엇이 다른지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감사 자체가 모순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감사원은 "백신 수급과 관련한 감사사항은 일각에서 오해하는 바와 같이 지난 백신 수급 상황에 대한 관련자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다"며 "백신 수급 당시의 실태와 문제점, 원인 등을 살펴보고 투명하고 개선된 백신 수급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올바른 처방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실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긴 했다.

거의 매일 '보도참고자료' 내는 감사원…'적극행정 면책'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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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을 비롯한 윤석열 정부와 감사원은 언론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참고자료'를 내며 '표적 감사'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이 권력을 비판하고 검사들이 수사를 하듯 감사원도 공무원들을 감사하는 일이 업무"라며 "문재인 정부 시절 감사를 제대로 못 하게 해서 억눌려 왔는데, 감사원은 실력을 발휘해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감사원은 지난 8월 23일 하반기 감사계획을 공개하며 "적극행정 면책 활성화를 위해 공직자의 '사소한 실수'는 현장에서 과감히 면책하고 면책개념 재설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지난 정부의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일하다 접시를 깨는 일은 인정할 수 있어도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재갑 교수도 언급했듯 감사가 시작되면 현장 공무원들의 업무가 위축된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다. 특히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형사고발을 진행할 수 있는데다, 실제로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이 이미 압수수색을 받은 상태다.

감사원의 '적극행정 면책'이 자가모순이자 오비이락이라는 비판을 낳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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