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정부 예산안 편성 방향이 긴축 재정을 통한 재정 건전성 강화로 잡혔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등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이 더 나빠져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급격한 정부 지출 축소로 자칫 재정 지원이 절실한 분야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경기 회복에도 실기하는 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지난 30일 발표한 '2023년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는 639조 원이다.
본예산 기준으로 올해 607조 7천억 원보다는 31조 원 이상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지만, 전년 대비 증가 폭은 올해 49조 7천억 원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내년 총수입이 625조 9천억 원으로 올해보다 72조 4천억 원이나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지출 증가 폭 축소가 더욱 도드라진다.
감소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산업·중소기업으로 올해 31조 3천억 원이던 것을 18.0% 줄이면서 25조 7천억 원만 편성했다.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 코로나19 대응 한시 지원 사업의 종료가 가장 원인으로 꼽히지만, 최근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고 있어 추가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정 긴축 시 삭감 1순위로 꼽히는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예산도 10.1% 감소했다.
일자리 창출과 취약계층 보호 관련 예산이 포함되는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의 증가 폭 둔화도 눈에 띈다.
이 분야의 지출 규모는 226조 6천억 원으로 올해 217억 7천억 원보다 4.1% 증가했다.
지난해 대비 올해 증가율이 9%였던 점을 고려하면 내년 보건·복지·고용 분야 지출 증가율은 그야말로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정부는 재정 건전성 강화가 최우선이라는 단호한 입장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가 재정 건전성 우려가 굉장히 커지고 있다. 재정 건전성은 우리 경제 최후의 보루이고 안전판"이라며 "재정을 운용함에 있어 허리띠를 졸라매는 구조는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 등 이른바 '3고 현상'에 세계적인 경기 둔화 우려까지 겹치는 등 갈피를 잡기 힘든 복합 경제 상황에서 재정마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천조 원을 넘어선 국가 채무와 코로나 위기 대응 속에 매년 100조 원 안팎의 적자를 보인 관리재정수지 등 공공부문은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적자를 기록 중인 무역수지 등 민간부문도 부진을 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마저 악화할 경우 경기 회복 동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추경호 부총리는 "재정 여력이 많았으면 정부도 내년 지출을 더 늘렸을 것"이라며 전 정권에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추 부총리는 "윤석열 정부와 제가 물려받은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와, 지난 5년 사이 재정 적자가 엄청나게 늘고 국가 부채가 1100조 원에 육박하는 장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정부의 긴축 재정 전환에 대해 고물가와 불확실성을 모두 고려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확실하게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진입하지는 않았더라도 최근 경기는 부진한데 물가는 높은 상황은 분명한 만큼 재정 지출을 줄여 물가 상승 압력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는 "고물가 속에서 대규모 재정 지출이 이뤄지면 물가 상승세를 더욱 가속해 더 큰 어려움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급격하게 재정 운용 기조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아울러 코로나 재유행으로 사회·경제적 취약계층과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새로운 위기가 닥치고 있는 상황에서 복지 예산 증가율을 지나치게 위축시키는 소극적인 예산을 편성하면 사회적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KDI 관계자는 "급격한 지출 축소는 새로운 변수를 만들 우려가 있다"며 "일단 긴축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접근보다는 지출 효율화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교수도 "상대적으로 순위가 떨어지는 부분에 대한 조정은 필요하지만 취약계층 지원과 관련된 쪽은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