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언 "아버지의 사랑 제주, 그 풍경 음악에 담았다" [한판승부]

다니엘 린데만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된 사연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내 어깨를 밀어주는 힘
수백만 번 들어서 싫었던 아버지 고향 이야기, 제주 방문하고 비로소 이해
<파친코>, 너무나 좋은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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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박재홍>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보셨을 멜로디죠. 프론티어 2002년 아시안게임 공식 주제가였던 곡입니다. 오늘 한판 인터뷰에서는 그 공식 주제가의 프론티어 작곡가이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음악감독을 맡으셨던 세계적인 음악가, 뉴에이지 크로스오버 음악의 거장 양방언 씨를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 양방언>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 박재홍> 진 작가님? 
 
◆ 진중권> 격하게 환영합니다. 
 
◆ 양방언> 떨리는데요. 
 
◆ 김성회> 저도 막 양방언 선생님이랑 같은 스튜디오 안에 와서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게 지금 약간 놀랍습니다. 
 
◆ 양방언> 정말요? 저는 지금 들어오기 전에 방송 보면서 이 프로그램에 제가 출연할 수 있을까. 내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 박재홍> 이제 정치 다 빼고요. 
 
◆ 김성회> 어느 당을 지지하십니까… 
 
◆ 양방언> 너무 반갑습니다. 
 
◇ 박재홍> 저도 방송국 음악으로만 뵙다가 스튜디오에 뵈니까 너무 영광이고요. 얼마 전에 정동극장에서 <비밀의 정원_양방언의 신비로운 음감회>를 이틀 동안 진행하셨죠?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고요. 
 
◆ 양방언> 우선 잘했고 약간 특별한 공연이었습니다. 연주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약간 영상이나 미디어아트 이런 것하고 조합을 컬래버를 해서 음악과의 결합으로서 전체 공연을 구성했고요. 우리들한테도 연주자들한테도 너무 신선한 그런 경험이 됐습니다. 
 
◇ 박재홍> 코로나 블루 때문에 힘들었던 분들이 굉장히 힐링되는 치유가 되는 그런 시간이었겠네요. 
 
◆ 양방언> 저한테 힐링. 
 
◇ 박재홍> 그러셨어요. 오랜만에 한국 관객분들을 직접 만났으니까? 
 
◆ 양방언> 역시 제가 좀 평소에는 한 달에 두세 번, 많을 때는 두세 번 정도 한국에 왔다갔다 하면서 왕래를 하면서 있었는데, 갑자기 코로나로 이렇게 되고 격리도 많이 했고 백신도 많이 맞았고. 격리 저 엄청 많이 했어요. 저 전문가 수준입니다. 
 
◆ 진중권> 격리 전문가. 
 
◇ 박재홍> 방역 전문가 수준. 
 
◆ 양방언> 7번 했어요. 여기 들어와서 14일, 일본 들어가서 14일. 한 번 왕래하는 데 28일. 
 
◇ 박재홍> 큰마음 먹고 하셨어야 되겠네요. 
 
◆ 양방언> 정말… 
 
◆ 김성회> 격리하는 공간은 반드시 피아노와 여러 가지 악기들이 준비되어 있고. 
 
◆ 양방언> 없으면 미치죠. 악기가 없으면 정말 미치고 악기가 있어도 역시 초기에는 정말 사람이 이상해지더라고요. 혼잣말도 많아지고. 
 
◆ 김성회> 격리 분노를 담은 곡을 하나 쓰셨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 양방언> 그런데 너무 어두워서. 
 
◇ 박재홍> 정동극장과는 선생님이 인연이 많으시죠? 
 
◆ 양방언> 저는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게 1999년입니다. 그래서 활동 초기 2005년에 정동극장에서 이틀간 비슷한 공연을 했었고. 
 
◇ 박재홍> 신진 아티스트로 처음 소개된 1번이 우리 선생님이었어요. 
 
◆ 양방언> 그래요? 처음 들었는데. 
 
◇ 박재홍> 첫 번째 아티스트 우리 선생님이었고. 
 
◆ 양방언> 그러니까 17년 만에 같은 공간에서 그 당시 뵌 분들도 와주시거나 그리고 코로나도 있었고 오랜만에 정말 감회가 새롭고 저한테 너무 힐링되는 오히려 힘이 되는 그런 공연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 진중권> 이번에 다니엘 린데만하고. 다니엘 린데만도 피아노 잘 치고 작곡도 하고 그러는데 어땠습니까? 
 
◆ 양방언> 다니엘이 SNS로 저한테 어느 날 문자 줬어요. 그래서 다니엘이 원래 저 음악을 좀 들었다, 그리고 다니엘이 젊었을 때 독일에서 CD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 박재홍> 선생님의? 
 
◆ 양방언> 'Dream Railroad'라고 하는 곡이 있는데, 그 곡을 들으면서 아우토반 드라이브 하고 있었다고. 
 
◇ 박재홍> 아우토반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 인연이 있어서 그래서 한번 연락을 주신 후에 메시지를 주고받았더니 너무 좋은 친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몇 년 전에 출연한 영화 시사회에도 거기 와주거나. 서로 이번에 처음으로 음악을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당연히 그 다니엘이 음악을 판매도 하고 피아노를 치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한번 같이 하면 어떨까 될까? 저는 그런 게 좀 그런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서 이분하고 같이 하면 어떤 음악이 될까. 그렇게 생각을 했을 때 다니엘도 너무 재미있다고. 그래서 저는 일본에 있지 않습니까? 거주는 일본이고 다니엘은 한국에 있고 다니엘은 여름휴가 유럽 가버리고 그럴 때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정보도. 그리고 다니엘이 영상을, 피아노를 친 본인 영상을 저한테 보내줍니다. 내가 악보를 보내거나 주고받고 하면서. 

◇ 박재홍> 두 분 소통은 한국말로 하시는 거예요? 
 
◆ 양방언> 그렇죠. 신기하죠. 저도 맨 처음에 너무 신기했었어요. 이 친구하고… 저도 서툴지 않습니까? 다니엘은 저보다 우리말 훨씬 잘하거든요. 그래서 이 친구 잘한다. 
 
◇ 박재홍> 굉장히 좋은 시간 가지셨군요. 그래서 이제 요즘 관심사는 어떤 분야를 우리 선생님께서 관심 갖고. 요즘 음악적인 관심사? 
 
◆ 양방언> 저는 특별한 것보다는 그 순간순간에 제안을 주시는. 예를 들면 영상 작품이나 행사나 그런 의뢰를 주셔서 그 음악을 제가. 스스로 자기가 하고 싶다, 이것은 솔로음악입니다. 양방언의 개인음악. 제가 생각하는 동시대의 그런 모습이 거기에 나타나고. 
 
◇ 박재홍> 동시대. 
 
◆ 양방언> 제 발음이 괜찮았습니까? 
 
◇ 박재홍> 명확합니다. 퍼펙트 합니다. 
 
◆ 양방언> 그래서 그것들과는 반대로 반대편에 있는 것은 어느 영상작품이나 행사나 테마가 명백히 있는 이것에 대한 음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은 약간 아주 규모가 큰 해외 영화음악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 박재홍> 영화음악. 어떤 영화인지는 스포일러가 되니까 공개하면 안 되시는 거죠? 
 
◆ 양방언> 지금 말씀드리가 약간 곤란해서. 
 
◇ 박재홍> 블록버스터인가요? 
 
◆ 양방언> 블록버스터는, 어느 지역에서는는 완전 블록버스터. 
 
◆ 김성회> 그게 궁금한 게 그러니까 영상 일부라도 보여주고 의뢰가 들어오나요, 아니면 아예 그냥 콘셉트만 혹은 대본만 보고 하시는 건가요? 
 
◆ 양방언> 이것은 약간 인연이 있어서 제가 원래 성룡이라고 하는 홍콩… 영화음악을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 박재홍> 젝키찬. 
 
◆ 양방언> 그리고 그당시에 제가 홍콩에서 어느 TV드라마에… 홍콩이라고 지금 이야기해 버렸잖아요. 
 
◇ 박재홍> 괜찮습니다. 
 
◆ 양방언> 생방이지 않습니까? 
 
◆ 진중권> 삭제가 됩니다. 
 
◆ 양방언> 그래서 그당시에 제가 어느 TV 드라마의 주제곡을 쓰고 제작을 했습니다. 그 TV 드라마가 대히트를 해서 그분이 데뷔작이었는데 데뷔를 한 후에 정말 대스타, 엄청 스타가 됐어요. 그래서 그분이 몇 달 전에 SNS로도 직접 저한테 연락이 와서 기억하냐고. 당연히 기억하죠. 그런데 다음에 약간 규모가 큰 영화를 하는데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시작을. 지금 이 시대에 역시. 
 
◆ 김성회> SNS 그런 메시지를 다 직접 확인하시나 봐요? 보통 기획사 통해서 얘기가 들어올 것 같은데. 
 
◆ 양방언> 그런데 그분은 엄청 팬 수, 팔로워가 250만 명이에요. 그분도 계속 혼자 자기도 하고. 저한테 직접 보내고 기획사 안 통하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부담스럽더라고요. 
 
◇ 박재홍> 완전 부담스럽네요. 
 
◆ 진중권> 내 SNS는 왜 그래. 
 
◆ 양방언> 정말 의외로 그렇습니다. 
 
◇ 박재홍> 주로 하셨던 작품은 저희들이 기억하는 건 2002년 아시안게임 또 2013년 대통령 취임식에도 우리 선생님 작품이 연주가 됐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도 음악감독을 하시기로 했는데 주로 정말로 공식적인 국가 행사도 많이 맡으시잖아요. 그런 작품 의뢰가 오면 어떻게 작곡의 영감을 받으세요? 
 
◆ 양방언> 영감은… 특히 그런 아주 큰 행사에서는 영감을 얻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죠. 그것을 완벽하게 당연히 부담은 크고 어깨는 무겁고 하는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아마 거의 없습니다, 저는. 그러기보다는 여기에 적절한 음악, 그런 테마, 그런 필이랄까. 그런 울림. 이것이 어떨까를 계속 생각을 해야 되고 그것이 자기만의 생각이 아닌 역시 제작진 전체, 예를 들면 올림픽도 그렇고 취임식도 그런 전체 스태프들이 원하는 방향하고 일치되는지. 계속 그것을 생각하는 것뿐인 것 같습니다. 
 
◆ 김성회> 그러면 만약 노래를 이렇게 하겠다라고 보냈는데 주최 측에서 이렇게 수정해 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도 있나요, 아니면 무조건 그렇게 받아들이나요? 
 
◆ 양방언> 항상 있죠, 수정이. 
 
◆ 김성회> 수정 요구를 받아주십니까? 
 
◇ 박재홍> 수정해 주세요? 
 
◆ 양방언> 수정하죠. 수정을 안 하면 그것은 자기 것이지 않습니까, 자기 생각이고. 그런데 수정을 안 하고 싶을 때도 많아요. 
 
◆ 김성회>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 더 웅장하게 만들어달라든지 이런 이상한 요구를 많이 할 것 같은데. 
 
◆ 양방언> 지금 여기서 저는 '예'라고 못해요. 
 
◆ 김성회> 저 혼자 망상으로. 
 
◇ 박재홍> '이상하다'는 김성회 소장님 입장이고요. 
 
◆ 양방언> 역시 지시를 하시는 분들이 원하시는 방향이랄까. 그런 비전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하고 저의 음악에 그것하고 결합을 시켜야 되고 그것이 잘 안 맞을 때도 가끔은 있기는 해요. 그것은 어쨌든 제가 가끔 인터뷰로서 '양 선생님은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받으세요', 그런 질문을 주시는데, 저한테 있어서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은 마감입니다. 
 
◇ 박재홍> 마감. 몇 월 몇 시까지 해야 된다. 
 
◆ 양방언> 그렇죠. 
 
◆ 진중권> 문학과 음악의 공통성을 봅니다. 
 
◇ 박재홍> 우리 진 작가님도 마감에 임박해서. 
 
◆ 양방언> 가장 무서운 말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 박재홍> 오프닝을 방송 시작 10분 전에 마감하세요. 
 
◆ 김성회> 입금되면 시작 그다음 마감되면 영감 이렇군요. 
 
◇ 박재홍> 그렇군요. 우리 양방언 선생님이 원래는 의대를 졸업한 의사선생님이셨잖아요. 
 
◆ 양방언> 아주 옛날. 
 
◇ 박재홍> 원래 아버님도 의사셨죠? 
 
◆ 양방언> 네, 형제들도 의사, 약사. 저는 다섯 중 막내였습니다. 막내 전까지는 좋았는데 제가 와서 음악을 선택을 하고 가출을 하고. 
 
◆ 김성회> 그러면 아버님이 의사로서의 길을 가기를 바랐지, 음악을 한다, 이런 걸 잘 이해하지 못하셨군요. 
 
◆ 양방언> 맞습니다. 
 
◆ 김성회> 결과적으로는 형들보다 훨씬 더 유명해지신. 
 
◆ 양방언> 그것은 그런데 제가 아주 오래전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제가 음악을 한 약간 초기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실 것 같고. 그게 약간 저한테는 약간 좀 더 잘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어깨를, 등을 밀어주는 힘이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박재홍> 재일교포 2세로서 일본에서 생활을 하셨고 지금은 한국국적을 얻으신 거죠? 
 
◆ 양방언> 네, 저는 원래 아버님 고향은 제주도이십니다. 어머님 고향은 신의주. 그런데 우리 가족은 너무 복잡해서. 그런데 아버님 국적은… 
 
◇ 박재홍> 북한 쪽. 
 
◆ 양방언> 그리고 조선적이었고. 
 
◆ 김성회> 조선적이라고 하면 남한과 북한이 갈라지기 전에 그당시에 일하러 돈 벌러 일본에 가서 그때 머물렀던 분들은 한국사람도 아니고 북한사람도 아니고 조선적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던 그 말씀 하시는 거죠? 
 
◆ 양방언> 우리 아버님의 아버님. 할아버님들 세대는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아버님들 세대는 그때 북한 쪽을, 그쪽을 선택을 하셨어요. 선택을 하셨고. 그리고 어머님은 북한에서 태어나셨는데 사정상 한국의 국적을 갖고 계셨어요. 그 둘이 도쿄에서 만나서 우리를 낳았고. 
 
◆ 진중권> 음악을 하실 때 한편으로 하신 음악은 사실상 서양음악인데 또 한편으로는 한국음악적 전통도 있고 일본을 접한 일본의 전통음악 전통도 있을 것 같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요. 그런 영향 같은 것들이 궁금합니다. 
 
◆ 양방언> 저는 역시 한국을 방문하기 전 그때까지는 완전 서양음악이었고 그리고 저는 록도 좋아하고 서양 클래식도 좋아하고 재즈도 좋아하고 그랬었는데 99년에 내한을 한 이후 우리나라 전통음악이나 사물놀이나 이런 것들을 들었을 때 저는 많은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자기 것을 몰랐구나. 그리고 음악가로서 우리나라의 음악적인 요소들하고 같이 음악을 공존하는 음악을 만들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성회> 99년에 오셨을 때 일부러 그런 한국음악들을 공연 같은 것도 찾아가시고 보시고 그러셨나요? 
 
◆ 양방언> 그렇죠. 
 
◆ 김성회> 일부러 한번 느껴보고 싶어서? 
 
◆ 양방언> 네. 그리고 관광지에서도 사물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듣고 이게 사물놀이야. 이것이 실제 듣는 것이 라이브로 듣는 것은 역시 그 순간이 처음이었고. 역시 대단하고 약간 가장 중요시했던 부분이 지금까지 해 왔던 것하고 아주 다른 부분, 차이점이 어디인지. 아주 다르다. 그런데 이것은 DNA로서 자기가 갖고 있는 부분. 이것을 제가 표현을 꼭 해야 된다는. 
 
◇ 박재홍> 한국인의 DNA를. 
 
◆ 양방언> 네, 맞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우리 선생님이 의사 생활을 한 1년 하시다가 아까 가출이라는 표현을 하셨잖아요. 
 
◆ 진중권> 의사가 가출. 
 
◇ 박재홍> 의사가 가출을 했어요. 마취과 선생님하셨대요. 1년 하시다가 가출하시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아버지 만나셨다면서요? 
 
◆ 양방언> 가출하는 순간에. 새벽에 우리는 남몰래 숨어서 갈까 했더니. 
 
◇ 박재홍> 야반도주 중이었는데. 
 
◆ 양방언> 그때 구급차가 와버렸어요. 
 
◇ 박재홍> 아버님 병원이셨으니까. 
 
◆ 양방언> 우리 병원은 그 병원이어서 그때 구급차가 와버려서 구급차가 엘리베이터 열었을 때 눈앞에 아버님 계셨어요. 
 
◆ 김성회> 혹시 가방을 메고 계셨나요? 
 
◆ 양방언> 짐이 다 있었어요. 
 
◆ 김성회> 짐이 다 있는데? 뭐라고 하셨나요? 
 
◆ 양방언>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계속 저의 얼굴을 딱 쳐다보시고. 저도 아무 말 못했고. 
 
◇ 박재홍> 말하지 않으면서 알았군요. 
 
◆ 양방언> 그렇겠죠. 그러시겠죠. 그냥 가셨고. 저도 그 순간에 역시 울었어요. 운명이 나뉘는 길이었구나. 
 
◆ 진중권> 아버님과 화해는 하셨나요? 
 
◆ 양방언> 못했습니다. 저는 그게 가장 저의 인생 속에서의 아쉬움이랄까. 아쉬움을 역시 힘으로 바꿔야 된다는 생각도 들고. 계속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그 에너지가 또 지금까지 서양음악들 접하신 에너지가 되겠는데 재일교포 2세로서 일본땅에서 사시는 애환이랄까요. 어려움도 있으실 것 같아요. 
 
◆ 양방언> 저는 그 부분은 아주 생각이 긍정적입니다. 당연히 있겠죠. 당연히 있기도 하고 그러나 저는 어느 면에서는 같은 환경에 있는 재일교포들을 보면서 약간 어려움이나 그런 문제가 눈앞에 있을 때 이유, 그 이유를 자기가 재일교포니까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그게 약간 아니라고 봤고. 누구한테도 약간 차별이라는 말을 제가 좀 의도적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쓰지만, 그것은 일본 사람들 안에서도 있고 우리하고 재일교포들 안에서도 있고 우리 안에서도 있고. 저는 그것을 일본 대학에 들어갔을 때 이것은 긍정적으로 생각을 안 하면 이게 정말 큰일 난다. 자기 인생이 부정적으로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갖기 시작했어요. 
 
◆ 김성회> 대학 다닐 때도 친구들은 다 한국 사람인 줄 알고. 
 
◆ 양방언> 알죠. 저는 양방언이라는 한자. 한자로서 계속. 일본 이름을, 성을 가지는 분도 계시지만 그게 좋다, 안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저의 경우는 그 성을 아버님 계속 제주양씨의. 
 
◆ 김성회> 제주에 양씨가 많죠. 
 
◆ 진중권> 양씨, 고씨, 부씨. 
 
◆ 양방언> 맞습니다. 이걸 계속 쓰니 다 알지 않습니까? 이 친구는 한국 사람 아니면 중국 사람이다. 이런 것을 알고. 그리고 같이 배우면서 그럴 때는 오히려 그게 저는 좋더라고요. 
 
◇ 박재홍> 얼마 전에 재일동포들의 삶을 다룬 <파친코>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게 또 영상으로 제작이 돼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우리 선생님께서는 그 드라마 보셨습니까? 
 
◆ 양방언> 저는 <파친코> 원작도 그리고 영상도 봤습니다. 너무 좋고. 그런 화제랄까, 테마 자체가 화제가 된다라는 것이 우리한테 너무 좋고. 실은 일본에서도 <박치기>라고 하는 영화가 있었어요. 이것은 어떤 영화냐면 일본에 있는 조총련 학교 학생들이 항상 일본 학교의 학생들하고 싸워요. 그게 박치기인 거예요. 
 
◆ 김성회> 우리 학교라고 불리는 옷부터 딱 티가 나니까 학생들하고 다툼이 있겠네요. 
 
◆ 양방언> 항상 싸워요. 우리 시대도, 제가 학생 시절에도 맨날 싸워요. 그래서 그것이 일본에서 영화가 됐고 그게 대히트까지는 안 가도 많은 일본 사람들이 보는 히트가 됐어요. 저는 시대가 바뀌는구나, 움직이고 있구나. 그래서 이번에 <파친코>라는 작품이 나왔을 때 정말 시간은 걸리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옳다는 결론은 없지 않습니까, 결론은. 그러나 사람들이 정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긍정적으로. 그리고 제가 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 일본, 미국 그리고 <파친코>라는 것은 역시 그 당시 재일교포들이 어려운 분들이 가장 처음 손을 대는 직업이었어요.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성공을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럴 때 저는 약간 멀리서 보면서 좋은 시대가 되어 있고 이것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정말 긍정적으로 그걸. 
 
◆ 김성회> 저도 미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건데, 일본하고 말씀을 하시니까 미국에서 귀화하는 것은 시민권을 딴다. 무슨 자격증 따는 것처럼 미국 사람이 되는 것을 되게 쉽게 말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귀화를 한다라고 표현을 해서 뭔가 좀 더 완전히 바뀌는 것처럼 표현을 하는 것이 어차피 똑같이 국적을 바꾸는 것인데 나라마다 관습이 다르더라고요. 
 
◆ 양방언> 저도 실은 그랬었어요. 제가 한국 국적을 따기 전에 저는 북한 쪽이었습니다, 33살까지. 그 당시는 너무 불편해요. 해외 나가는 것도 불편하고 일본 정부한테 나가서 들어오는 것을 항상 허락을 받아야 되거든요. 재입국허락서, 여권이 없거든요. 너무 불편해서 나는 그당시부터 성룡 영화나 하고 있어서 그때부터 엄청 혼자만, 그때 나는 남들하고 다르다는 것을 그때 너무 많이 느꼈어요. 다른 친구들은 너무 자유롭게 해외 왔다 갔다 하는데 저만 기다리면서 재입국 허락을 받아야 되고. 그래서 저는 그런 면에서 그렇다면 제가 혹시 일본 국적을 가지면 이 부분이 쉬워지면 그것은 그걸로 좋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당시는 지금은 아닌 것 같은데, 그당시는 성을 일본 성으로 바꿔야 돼요. 
 
◇ 박재홍> 일본 국적을 위해서는. 
 
◆ 양방언> 제가 제주 양씨의 '양'을 버려야 된다는 이야기. 
 
◇ 박재홍> 그걸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 양방언> 말도 안 된다. 그래요. 
 
◇ 박재홍> 그래서 제주양씨를 지키셨고 우리 양방언 선생님께서 '프린스 오브 제주'라는 곡을 쓰셨습니다. '프린스 오브 제주'를 어떻게 쓰셨나 질문했을 때 본인은 천재가 아닌데 어느 순간 갑자기 확 왔다고 말씀하신 인터뷰를 봤어요. 갑자기 확 왔군요, 음악에 대한 영감이?
 
◆ 양방언> 그때는 정말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제가 처음 내한했을 때 1999년에 본토로 들어오기 전에 역시 아버님 고향 가야겠다, 제주에, 처음 가서. 그때 저는 어린 시절에 아버님한테서 정말 몇백만 번 같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 진중권> 무슨 얘기셨나요?
 
◆ 양방언> 술 드시면서 제주 바다가 너무 좋고 음식이 좋고 맛있고. 어린 시절에 그것을 몇백만 번 들으니 이제 싫죠. 
 
◆ 진중권> 맨날 들으니까. 
 
◆ 양방언> 맨날 듣고 하니까. 그런데 39살 때 처음 갔을 때 드디어 여기구나. 여기 말씀을 하셨었구나. 
 
◇ 박재홍> 그 '프린스 오브 제주'를 들어보겠습니다.
 
◆ 김성회> 그 프린스는 아버지인가요? 
 
◆ 양방언>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 박재홍> 일단은 시간이 다 돼서 '프린스 오브 제주'를 선생님 연주를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프린스 오브 제주'. 우리 양방언 선생님의 아버지의 고향, 제주를 처음 찾은 1998년에 만드신 곡이고요. 아버지에게 들은 고향 이상향을 그린 '프린스 오브 제주'를 듣겠습니다.
 
◇ 박재홍> 대단합니다. 세상에, 어떻게 하면 좋죠? 
 
◆ 김성회> 아마 전 세계 양방언 선생님의 연주를 이렇게 가까이서 들은 사람이. 
 
◆ 진중권> 바로 앞에서. 저는 몰래 사진도 찍었습니다. 동영상으로 찍고 싶었습니다. 허락을 못 받아서 제가. 
 
◇ 박재홍> 30분 동안 저의 쓸데없는 인터뷰가 죄송하게. 너무 좋았습니다. 
 
◆ 양방언> 감사합니다. 
 
◆ 진중권> 가락이라고 그러나요? 장단이 가끔 한국 게 탁탁 들어가고. 
 
◆ 양방언> 역시 정말 한국을 방문했던 게 저한테 너무 큰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 박재홍> 박인숙 님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파도가 휘몰아쳐오는 것 같았어요라고 말씀을 주셨어요. 
 
◆ 진중권> 제주나 묻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 이런 느낌. 풍경이 시선으로 지나갔어요. 
 
◆ 양방언> 바람이. 
 
◇ 박재홍> 바로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음악에도 풍경이 있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음악 안에 정말 뭔가 제주의 풍경이 상상이 되는 그런 너무나 훌륭한 음악이었어요. 그런데 너무나 아쉽게도 우리 양방언 선생님을 보내드려야 되는데 다선발이님 너무 좋았습니다. 이런 날에 차가 막혀서 라디오를 오래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GSJ님 정말 팬입니다. 많은 분들이 위트 있는 인터뷰 너무 재미있었다고 연주도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 한국팬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전해 주시고 오늘 방송 마무리할게요. 
 
◆ 양방언> 저는 정말 한국에서 이렇게 음악활동을 지금도 계속 할 수 있는 게 정말 저는 한없이 행복한 음악가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시 공연장이나 어디서나 음악을 통해서 여러분과 다시 항상 함께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박재홍> 너무나 고맙습니다. 저희가 스트레스 받는 정치 얘기만 하다가 갑자기 세계적인. 
 
◆ 진중권> 귀가 정화되는 느낌. 
 
◇ 박재홍> 세계적인 음악의 거장의 이 생방송 연주를 들으니까 저의 마음도 정화된 것 같아요. 오늘 너무나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활동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다음에 한국에 오시면 또 모셔도 될까요,선생님? 
 
◆ 양방언> 언제든 불러주세요. 
 
◇ 박재홍> 약속하셨어요. 
 
◆ 진중권> 1시간 통으로 터서. 
 
◇ 박재홍> 다 통으로 트고. 함께해 주신 분 세계적인 크로스오버 음악의 거장 피아니스트 양방언 선생님이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양방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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