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9호 피해, 국가가 배상해야"…7년만에 판례 변경

대법, 긴급조치 9호 피해 '국가배상' 인정
"조치 따른 일련의 국가작용 전체 위법"
7년만의 판례 변경…"기본권 침해 구제"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박정희 정부 시절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0일 긴급조치 9호 피해자와 가족 7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7년 만의 판례 변경이다.

이날 대법원 전합은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9호 발령에 따른 강제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 등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현실화됐다"며 "이같은 긴급조치 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위법하다고 평가되고,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긴급조치 9호는 박정희 집권기인 1975년 5월에 시행됐다.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해 1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는 내용이 담겼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3년 긴급조치 9호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같은해 대법원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긴급조치 9호를 위헌·무효로 판단했다. 법원의 형사보상결정에 따라 형사보상금도 지급됐다.

다만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의 민사상 손해배상은 진척이 없었다.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라고 하더라도 국가는 국민에게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건 아니다'며 국가의 민사상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2015년 3월 대법원 판례가 발목을 잡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30일 박정희 정권 시절 발령한 '긴급조치 9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과거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한 가운데 긴급조치 피해자 모임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 유영표 대표가 이날 재판 후 취재진 앞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황진환 기자

기존 2015년 3월 대법원 판례에 따라 1·2심에서 내리 패소한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은 2018년 2월 결국 대법원에 상고했고, 이날 7년5개월 만에 승소 취지의 판결을 받아냈다. 1심을 제기한 2013년 9월부터는 약 9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법원 전합은 "이번 판결로 판례를 변경함으로써 과거에 행해진 국가 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사법적으로 구제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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