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내정'(內定)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공개채용에는 '내정'이 없다.
선거가 끝나면 보통 당선인 주변 인물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A기관 사장에는 ○○○이 유력하다거나, B기관 대표에는 ◇◇◇이 올 거라는 둥.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 예측은 대부분 들어맞는다. 비록 '공모'라는 채용 방식을 띄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결정돼 있었단 얘기다.
그런 사례들은 이른바 '공정'을 내걸었던 이재명 전임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쉽게 찾아진다.
유동규 경기관광공사 사장이 대표적이다. 1기 신도시 리모델링 연합회장과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도시개발쪽 일만 해온 그는 관광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마찬가지로 이헌욱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은 변호사 출신이었며, 이우종 경기아트센터 사장은 여론전문가였다. 모두 해당 기관의 업무 특성과는 1도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잠시 '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긴 했지만, 그들은 예상대로 임명됐다. 법이 공공기관장의 임면권을 자치단체장의 권한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논공행상'과 '자리 나눠먹기'라 하더라도 규정상 문제는 없다. 정치권력의 카르텔과 기득권이 더욱 공고해지는 과정이다.
"자리는 보이는 데, 사람이 안 보인다?"
김동연 지사 취임 두 달, 김 지사의 인사 스타일을 두고 모두가 '갸우뚱' 한다. '뭐지? 뭐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의문의 핵심은 '자리는 보이는데, 사람이 안 보인다'는 것.
이미 11개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선 작업은 시작됐고, 김 지사 주변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될 법 한데, '없다'. 실제로 경기도 한 고위 간부는 "(공공기관장에) 내정은 물론 거론되는 사람조차 없다"며 "민선 8기의 인사 스타일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실마리는 김 지사가 취임 이후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람을 정해놓고 자리를 주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는 답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특정인을 내정해 놓고 형식적인 공모절차를 밟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앞서 경기도의회 국민의힘측에서 협치 조건으로 공공기관장 자리 절반을 요구했을 때 했던 김 지사의 발언들도 이해가 가능하다.
"(공공기관에) 일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고 싶습니다. 거기에 여(與)가 어디 있고, 야(野)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리는 나눠 먹기식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여든 야든, 누구에게든 추천은 받되, '추천인'이 아닌 '일을 잘 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선발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를 두고 당시 경기도 정치권에서는 이런 말들이 흘러 나왔다. "협치하겠다면서 (자리를) 나눠주는 것도 없이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정말 (정치) 초보인거야? 욕심이 많은 거야?"
그동안의 정치권에서 협치 혹은 연정의 방식이 이처럼 '자리 나눔' 형태로 이뤄졌기에 그들의 의구심은 오히려 타당하게 들렸다. 여기에 더해 협치를 논할 때마다 김 지사는 낮은 단계에서의 정책적 협치만을 고집스럽게 말해왔던 터라 자리를 나누지 않으려는 개인적 욕심으로 오해받기 충분했다.
하지만, 애초에 김 지사의 머릿속에 '나눌 자리' 자체가 없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임명권이 있는 김 지사 자신도 자기 사람을 심을 생각이 없는데, 어느 누구에게 그런 막강한 권한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인수위 시절 "경기도지사로의 기득권을 먼저 내려놓겠다"고 했던 김 지사의 문법과 오랜 시간 기득권에 길들여져 온 기존 정치권의 문법이 달랐을 수 있단 말이다.
기회 넘치는 '기득권 깨기' 시작됐나
물론 오랜 관행만큼이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김 지사의 선언을 선언적 의미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대부분 공공기관들은 순수한 의미의 공개모집에 여전히 반신반의한 의견이 지배적이다.
C 공공기관의 한 고위 간부는 "언론보도를 통해 몇 차례 완전 공개채용한다는 워딩을 봤지만 지금까지 지사님들이 모두 똑같은 말씀을 하셨으니까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며 "완전 백지 상태에서 순수한 의미의 공개채용을 하겠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고 말했다.
이들의 불신에는 임원 선발 방식의 구조적 한계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경기도 출자·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기본조례'에 따르면 기관의 임원은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의 추천을 받아 도지사가 임명한다. 여기서 임추위는 도지사 추천 인사 3명, 도의회 추천 인사 2명, 해당 기관 추천 인사 2명으로 구성된다. 기관이 도의 지휘감독을 받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도지사의 입김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또 혹시라도 도지사 마음에 들지 않은 인사가 추천되더라도 거부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 한 기관 관계자의 지나가는 푸념처럼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는 권력이 도지사에 있다.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김 지사가 내려놓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누구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과정만큼이나 결과도 중요하다. 작은 흠이 방죽을 무너뜨릴 수 있다.
또 그 길을 간다면,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 기득권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어떤 제도적 변화를 줄지도 궁금하다.
그는 "기득권의 반대말이 기회"라고 했다. 공정한 기회를 위한 '기득권 깨기'가 시작된 것인지 그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