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너무 좋아요. 가을이 훌쩍 다가온 것 같은데 가을 하면 추수의 계절이잖아요. 오늘 주제가 또 마침 '쌀 값' 이라고 해서 계절 얘기를 해봤는데요. 농민들이 쌀 값 때문에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얘기인가요?
◆ 선정수 > 다른 건 다 오르는 데 오르지 않는 것이 뭘까요? 월급쟁이 월급 말고도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쌀 값인데요. 농민들은 정부가 쌀값 폭락을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 조태임 > 지금 사실 물가 때문에 난리잖아요. 물가가 너무 올라서 '요즘 강제 다이어트 한다'는 말도 있던데, 쌀 값은 예외인가 보네요
◆ 선정수 > 지난달부터 많은 언론이 쌀 값 폭락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통계청의 '산지쌀값조사' 통계로 확인한 결과 지난 5일 기준 쌀(정곡) 20kg 가격은 4만3,093원으로 2018년 5월(4만3,066원)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을 기록했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로 검색한 쌀 소매 가격(20kg 상품 기준)도 8월 4만 9640원으로 2018년 9월(4만 9465원) 이후 가장 낮았습니다.
◇ 조태임 > 2018년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이라고요?
◆ 선정수 > 2018년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98.979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2020년 물가를 100으로 놓고 비교하는 방식인데요. 2022년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74입니다. 이 기간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10% 가까이 높아졌는데, 같은 기간 쌀 값은 0.06% 오르는데 그쳤죠. 다른 물가는 다 오르고 있는데 쌀 값은 지난해 여름 한창 시세가 좋을 때보다 20%나 내린 겁니다.
◇ 조태임 > 소비자 물가 10%상승할 때 쌀 값은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하면 실제로는 쌀 값이 내린 게 맞네요. 그런데 정부 대책이 뭐길래 농민들이 화가 난 거에요?
◆ 선정수 > 글쎄요. 대책이라고 할게 딱히 없습니다. 정부는 올해 두 차례 '시장격리'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세번째 조치도 발표를 했구요. 쉽게 얘기하면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사들여 가격을 관리'하는 건데요. 이 조치가 너무 늦게 발동돼 가격 하락을 막지 못했다는 게 농민들의 주장입니다. 대책이 늦게 시행되면서 지난해 생산 과잉 상태가 해소되지 않아 좀 있으면 출하 될 햅쌀 가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 조태임 > 지금 쌀이 너무 많이 남아돌아서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인데다 가을에 곧 햅쌀이 나오는데 그 햅쌀의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는 말인거죠. 연쇄적으로…
그런데, 최근에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행보를 굉장히 활발히 하면서. 물가 얘기도 많이 하고 있고, 또 쌀 값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잖아요.
◆ 선정수 > 윤 대통령은 쌀 값과 관련해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쌀 가공식품을 개발하고 판매가 돼야 쌀 값도 좀 안정되지… 국수도 만들고 빵도 좀 만들고…" 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쌀 값 안정 대책으로 '쌀 가공식품 생산 및 소비 확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 농촌에선 다음 달 햅쌀 본격 출하를 앞두고 쌀 값이 하락해 애를 태우고 있는데, 이게 장기적인 해법은 될지 몰라도 올해 햅쌀 출하 가격에는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정책이죠.
◇ 조태임 > 그렇네요. 좀 너무 먼 얘기 같고요. 그런데 결국에는 지금 쌀이 남아돌아서 가격이 떨어진다는 건데 왜 쌀이 남아돌죠?
◆ 선정수 > 2020년 쌀 생산량(백미, 9분도 기준)은 350만 6578톤으로 1968년(319만 5335톤) 이후 가장 적었습니다. 긴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최악의 흉년을 맞은 거죠. 이 때는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쌀값은 상당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2021년 햅쌀이 출하되면서부터 하락세가 시작됐습니다. 2021년 쌀 생산량이 388만톤으로 늘어나면서 수요와 공급의 괴리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농민단체들은 쌀값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습니다. 2021년 10월 정점을 찍은 쌀값은 매월 내렸고 이달까지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조태임 > 생산은 늘었는데, 소비는 줄었다 이런 얘기죠. 쌀 소비량은 도대체 얼마나 줄어든 걸까요?
◆ 선정수 > 통계청 통계를 보면 2021년 국민 1인당 연간 쌀소비량은 56.9kg입니다. 1970년에는 136.4kg이었습니다. 절반도 넘게 소비량이 줄어든 거죠.
◇ 조태임 > 어머,,,굉장히 많이 줄어들었네요. 하긴 요새 빵도 많이 먹고, 대체식도 많다보니 그럴 것 같아요. 장기 전망은 어떤가요?
◆ 선정수 >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내놓은 장기 전망을 보면 생산량 감소보다 소비량 감소폭이 더 커서 공급과잉이 우려된다고 합니다. 쌀 소비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 조태임 >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쌀로 빵과 국수를 많이 만들고 많이 소비하면 쌀 값이 안정될 수도 있겠다. 괜찮은 대책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선정수 >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6월8일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놨습니다.
가공성이 좋은 쌀가루로 만들 수 있는 신품종 벼의 보급을 늘려 2026년까지 밀가루 수요의 10%를 대체할 계획입니다. 정부는 이를 통해 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쌀 수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 조태임 > 쌀 가공산업 활성화는 쌀로 빵 국수 만들고 막걸리 만들고 과자 만들고 이런 내용인 것 같은데요. 분질미는 뭔가요?
◆ 선정수 > 분질미란 쌀알 전체에서 전분 알갱이가 성글게 배열돼 가공성이 좋은 신품종 쌀을 가리킵니다. 일반 멥쌀은 전분 알갱이가 빽빽하게 들어있어 가공성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멥쌀은 물에 불려서 분쇄 해야 하기 때문에 각종 비용이 늘어납니다.
정부는 밥용으로 쓰이는 쌀 20만톤 규모를 가공용 쌀로 대체하면 쌀 수급을 안정시켜 가격 급등락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봅니다. 2021년도 쌀 생산량은 388만톤이고, 추정 수요량은 361만톤 정도니까요.
쌀 생산량 20만톤을 밥쌀용이 아닌 가공용으로 전환하면 수요와 공급의 괴리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밀가루를 대체해 식량 자급율도 높이고, 밀가루 수입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일석3조죠.
◇ 조태임 > 쌀 가공산업이 '신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야심작'이다 이런 말도 있던데요.
◆ 선정수 > 윤석열정부 초대 농식품부 장관으로 임명된 정황근 장관의 '야심작' 맞습니다. 쌀가루 활용 정책은 정황근 장관이 2016년 농촌진흥청장 시절부터 주창했는데요. 과거 농촌진흥청장 시절 경험을 토대로 농식품부 장관이 되면서 윤석열정부 주요 농업정책이 된 거죠. 쌀가루 정책이 정부의 그림대로 실현된다면 만성적인 쌀 공급 과잉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제는 정부가 바라는대로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는 건데요. 그러자면 쌀로 만든 빵과 국수가 소비자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전에 식품 기업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고요
◇ 조태임 > 쌀로 만든 빵과 국수, 이미 나와 있긴 하잖아요 ?
◆ 선정수 > 그렇습니다. 그러나 쌀로 만든 빵과 국수가 시장의 판도를 변화 시킬 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가격 경쟁력과 가공성인데요. 쌀로 빵을 만들려면 쌀을 불려서 가루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공정(습식제분)이 쌀가루의 가격을 높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가루미2 등 가공용 쌀 품종이 해법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품종은 물에 불리는 과정이 없는 건식 제분이 가능해 쌀가루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여전히 밀가루에 비해 2~3배 높은 가격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우리 쌀과 수입 밀의 가격차가 크기 때문입니다.
◇ 조태임 > 결국 성공하려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고, 관건은 밀가루로 만든 것과 큰 차이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선정수 > 농식품부는 "식품업계에서는 케이크, 카스텔라, 제과·과자류 등 비발효빵류, 밀가루 함량이 낮은 어묵, 소시지 등은 분질 쌀가루 전용 품목으로서 가능성이 있고, 소면,우동면 등 면류, 식빵 등 발효빵류, 튀김가루 등 분말류, 만두피 등은 분질 쌀가루와 밀가루를 혼합하여 제조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밀가루 빵에 익숙한 소비자의 입맛을 가로챌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농촌진흥청은 제과제빵 업체들과 함께 가공용 신품종인 가루미2를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밀가루 빵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생소하다는 평을 내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쌀가루 전용 품목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 '쌀 카스텔라'를 먹어 본 소비자들은 "건조하고 뻑뻑하게 느껴진다"고 답변했습니다. 대체적으로 퍽퍽하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 조태임 >국수는 어때요?
◆ 선정수 > 현재도 국수는 샘표 등 식품기업에서 '쌀 소면' 등의 제품을 시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극소수를 제외하면 이들이 사용하는 원료는 수입쌀입니다. 가격 차이 때문인데요.
우리쌀로 만든 국수는 밀가루 소면과 비교해 조리법도 다르고 식감도 다릅니다. 우리쌀을 많이 먹어야겠다고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소비자를 제외하면 쌀로 만든 소면, 낯설게 느낄 수밖에 없죠
◇ 조태임 > 일단 정부는 국정과제로 '쌀 가공산업 활성화'를 채택했고요. 대통령이 "쌀로 빵과 국수를 많이 만들고 많이 소비하라"고 사실상 지시를 한 건데요. 잘 될까요?
◆ 선정수 > 시장이 선택하지 않으면 허사겠죠. 정부는 가공용쌀과 쌀가루 1톤을 식품, 제분업체에 제공해 제분 특성과 품목별 가공 특성을 평가해달라고 요구했는데요. 한 업체 관계자는 "가공용 쌀을 받기는 했는데 워낙 적은 물량이라 기초적인 연구부터 시작할 계획"이라며 "당장 제품화를 이야기하기는 너무나 변수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이 물량을 100톤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2026년까지 가공용쌀 생산 규모를 20만톤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2022년(475톤 예상)의 421배에 이르는 막대한 양인데요. 4년 만에 421배 생산량이 늘어날텐데, 식품기업들은 아직 어디에 써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인 겁니다.
네 여기까지 <모아모아 팩트체크> 뉴스톱 선정수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