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전기' 모조리 해외에? 신재생에너지 안보는 어쩌나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정학적 위협에 따른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불거졌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세계적 '기후 대응'에 발맞춰 비단 화석연료의 안보 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의 안보도 중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업체별 홍보자료 등을 종합하면 국내 전기차 배터리업계의 국내 생산 비중 합산치는 10%대에 그친다. 지난해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외에 연간 155GWh의 생산설비를 갖췄는데, 충북 오창(18GWh/년) 말고는 모든 공장이 해외에 있다. 국내 생산비중이 11% 정도다.

국내외에 연간 39.2GWh 생산설비를 구축한 SK온 역시 국내 공장은 충남 서산(4.7GWh/년) 한 곳뿐으로, 국내 비중은 12%에 못미친다. 삼성SDI의 경우는 총 41GWh/년 생산량 중 국내는 울산(9GWh/년) 뿐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각기 천문학적 비용을 투자해 미국 등 해외에 공장을 더 늘릴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특히 현지 완성차 업체들과의 합작공장도 대거 신설된다. 국내 증설도 일부 계획돼 있으나 상대적으로 소규모여서, 앞으로 국내 생산비중이 더 작아지게 된다.

대기업 중 유일하게 태양광 발전패널을 생산하는 한화큐셀은 지난해 기준 국내 생산비중이 셀(4.5GW) 45%, 모듈(4.5GW) 36%로 절반에 못미친다. 국내 생산능력을 7.6GW까지 늘릴 계획이지만, 미국 공장(1.7GW)도 9GW까지 대폭 신장시키는 안을 검토 중이어서 국내 비중이 더 축소될 전망이다.

풍력발전의 경우 풍력터빈 제조를 주도하는 두산에너빌리티는 100% 국내 생산으로 연간 112MW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또다른 핵심 설비인 풍력타워 부문에서는 핵심 기술력을 보유한 CS윈드의 생산라인은 모두 해외에 있다.

LG에너지솔루션 GM 합작법인1공장. 연합뉴스

전기차 배터리는 에너지 저장매체로, 태양광·풍력 발전은 에너지 생산수단으로서 각각 화석연료를 대체한다. 전세계가 기후위기에 맞서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할 차세대 에너지원이다.

특히 현 정부 국정과제로 '2035년 무공해차 전환' 목표 설정이 제시된 만큼, 석유차의 전기차 전환은 불가항력이다. 지난해말 현재 국내 등록 차량대수는 2491만대이고, 이 가운데 전기차(하이브리드 포함)는 114만대다. 약 2500만대를 전기차로 완전 대체하려면 차량뿐 아니라 배터리도 지금보다 20배 더 필요하다.

유럽·미국의 탄소국경세 등 '기후 빌미' 무역장벽이나, 다국적기업들의 RE100 압박에 대응하려면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확장도 불가피하다. 당장 지난해 연간 태양광·풍력 발전량 21.5TWh은 삼성전자(27.0TWh)나 SK하이닉스(23.5TWh)의 연간 사용량도 충당 못하는 수준이어서다.

핵심 에너지 생산설비가 국외로 내몰린 이유는 그렇게 하는 쪽이 사업에 유리해서다. 원료 조달이 용이한 중국이나, 시장이 크게 형성된 미국·유럽에 공장을 짓는 게 효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대중 봉쇄에 매진하는 미국이 우리 업계에 현지공장 건설을 종용해, 국내 배터리·태양광 업체들의 대미 투자 선언이 이어졌다. 특히 미국이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확보될 재원 중 80%가 넘는 3690억달러 상당을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 사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우리 업계의 미국 투자가 더 늘고 상대적으로 국내 투자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핵심 에너지 생산설비 국내 확보는 에너지 안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정학적 위기가 닥쳤을 때 핵심 설비의 국내 확보는 필수적이다. 유럽연합의 경우 올해 러시아가 촉발한 에너지 위기에 맞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45%까지 끌어올린다는 'REPower EU'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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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산 의존의 취약성은 앞서 2016년 중국의 '사드 보복' 때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 공장들이 제 기능을 못했거나 일부 철수한 사례에서 드러난다. 외국 사례로 보면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초기 미국이 제3국으로 수출돼야 할 마스크를 대량 압수한 일도 있었다.

에너지전환포럼 임재민 사무처장은 "전세계가 기후위기 대응이나 에너지 전환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확충에 몰두하고 있다. 향후 재생에너지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급증하면 공급망 확보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 사무처장은 "미국 등 주요국이 에너지전환 기업을 적극 유치해 자국 내 에너지 공급망을 구축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다, 기술과 시장 선점을 꾀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도 핵발전에만 천착할 게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에 심기일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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