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자폐인 흉내는 금기"…'우영우' 박은빈의 정공법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인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 나무엑터스 제공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정체성은 바로 배우 박은빈이었다. 자폐인 캐릭터 우영우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이 '우영우' 신드롬을 이끌었다. 배우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 앞에서 박은빈은 돌아가지 않고 정공법을 택했다. 한 마디로 박은빈이라 '가능했다'.

아역부터 27년 간 다져 온 박은빈의 연기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우영우'는 다른 문제였다. '스토브리그' 프로야구단 유일한 여성 운영팀장도, '연모' 조선의 남장여자 왕도, 박은빈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었기에 그걸 증명하기만 하면 됐다. 처음 '우영우'가 되길 망설였던 이유는 그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은빈은 쉬운 길 대신 떳떳한 길을 통해 자폐인 우영우와 마주했다. 자폐인들의 모습을 도구적 장치로 이용하지 않기 위해 영상 레퍼런스를 피하고 자문과 서적으로 캐릭터를 연구했다. 우영우를 구체화 하는 작업 하나 하나가 박은빈에겐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았다. 그의 진심은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닿아 '우영우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우영우' 이후에도 박은빈의 연기는 계속된다. 그는 흔들림 없이 또 다른 한계를 넘고, 넘어 답을 찾아 갈 것이다. 그의 말처럼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모든 캐릭터는 익숙해 보이지만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완성된다. 잘하는 것도, 힘든 것도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마음. 박은빈의 가장 큰 힘은 어쩌면 스스로를 외면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다음은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가진 박은빈과의 '우영우' 종영 라운드 인터뷰 일문일답.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인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 나무엑터스 제공
Q 고사 끝에 '우영우'에 합류했다. 깊게 고민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이렇게 신드롬급 인기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A 2회부터 저희 예측을 두배씩 뛰어넘어서 많이 놀랐었다. '우영우 신드롬'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일이 났긴 났구나 싶었다. 고사했던 건 저를 믿어주시는데 그만큼 잘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이 없어서 그랬다. '연모'에서 '여자가 조선시대 왕이 가능해?'라고 불신 하셨다면 저는 자신이 있었다. 반대로 '우영우'는 대본을 보면서 함부로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대하면 안될 캐릭터라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냥 까만 빈칸만 보이고 접근이 어려워서 망설였다. 하지만 저는 제 가능성을 믿는, '자기 효능감'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막상 이 역할을 마주하기로 마음 먹으면 제대로 해내야겠단 결심이 지금의 '우영우'를 있게 한 거 같다. 7개월 동안 내·외부적인 부침을 딛고 완성해낸 제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Q 법정이나 고래 이야기 등 상당히 대사 분량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워낙 발음에 대한 칭찬이 많았다

A 정보 전달 측면에서 걸리는 거 없이 속사포로 내뱉어야 하는 큰 미션이 있어서 발음을 신경 쓰긴 했다. 정확한 발음은 익숙해서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지만 법정 장면은 최소 30~40번은 같은 대사를 읊어야 했다. 영우가 법과 고래 이야기를 하는 게 일상생활에서 억압된 에너지를 분출하고 치유하는 방식이라고 자문 교수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박은빈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영우에게 법정은 즐거운 현장이었을 거다. (웃음) 많은 대사를 읽다 보면 게슈탈트 붕괴(의미 포화) 현상처럼 머리가 새하얗게 될 때도 있었다. 고래 설정도 8회 이후에 추가가 됐는데, 법조문 외우기도 바쁜 상황이라서 처음엔 '이게 뭐지?' 했다. (웃음) 촬영 당시에는 새로운 고래들이 나올 때마다 압도됐었다. 그래도 무사히 끝내서 다행이다.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인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 나무엑터스 제공
Q '우영우'를 관통하는 명대사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청자 반응도 궁금하다


A 영우가 아버지에게 '오롯이 좌절하고 싶다'고 한 대사를 꼽고 싶다. 자기한테 낯설고 불편한 상황일지라도 언제나 '내가 해보겠다'고 결심하는 영우의 모습을 통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영우는 비장애인의 보호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혼자만의 힘으로 어려움을 딛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폐인 분들과 함께 생활하시는 관계자의 손편지가 기억에 남는다. '자폐인에 대해 미디어 매체에서 왜곡하거나 어두운 부분만 강조했는데 실상 우리들만 아는 자폐인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좋게 표현을 해줘서 고맙다'는 취지의 편지였다. 그 분이 모두를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진심으로 감사했다. 제가 생각한 방향이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Q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부문에서 장기간 1위를 하는 등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우영우' 속 대사들이 상당히 영어로 해석되기 어려운 관용적 표현이 많은데 어떻게 이런 공감을 받게 됐을까

A 재미나 웃음은 문화적 코드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문화적 코드를 뛰어넘는 시청자 감수성이 있는 거 같다. 한국 드라마에서 자폐인 여성을 관찰자가 아닌 직접 세상과 소통하는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그런 인물이 로펌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어떻게 스며들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지, 어떤 어려움 속에서 성장을 이뤄내는지 그 과정을 목격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제가 맡은 우영우가 자폐인 대표는 아니지만 개성 강한 인물이 새로운 세계와 맞닥뜨리면서 발전해 나가는 게 핵심 내용이라 이 부분을 호기심 있게 지켜봐 주신 게 아닌가 싶다.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인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 나무엑터스 제공
Q 기존에 자폐인을 연기한 콘텐츠를 참고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캐릭터 구축에 있어 특별히 이런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A 우영우를 모델링하면서 자문 교수님이 이런 캐릭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셨었다. 미디어 매체를 통해 구현된 적이 있는 캐릭터는 그 작품 속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모델링 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자폐를 대표할 수 없다는 특징을 염두에 두고 그러면 우리 드라마의 메시지는 어떤 인물을 통해 전달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다. 실제 자폐인 분들을 따라하는 건 절대 금기시 해야 된다는 배우로서의 윤리적 책임을 느꼈다. 배우마다 방법론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실제 자폐인 분들을 관찰하고 그분들의 모습을 도구적인 장치로 이용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우영우를 통해 해야 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독자적인 캐릭터를 구축해서 고유성을 찾아보자고 생각을 했다. 감독님, 작가님이 구축한 세계관을 믿고, 자문 교수님 강의를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자폐 스펙트럼 진단 기준을 찾아서 참고했고, 참고 서적으로 공부를 하는 게 우영우의 특징을 세분화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Q 자폐인, 공정 담론, 이밖에 사회적 약자 등 '우영우'를 통해 수많은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기도 했다. 그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보여준 작품인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궁금하다

A 영향력이 큰 것은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도 보람찬 일인 거 같다. 아무래도 부담감은 많았다. 당연히 배우로서의 영향력은 인지하고 있지만, 사실 제가 인식 개선, 현실 타파 이런 거창한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이런 드라마를 할 때, 제가 신중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 기대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는 것이 정말 도의적 책임이 느껴지는 일인 거 같다. 이왕 이렇게 사회적 관심을 환기 시키고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면 부디 작품이 종영된 시점부터 '우영우 신드롬'이란 이름만큼 좋은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갔으면 좋겠다.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인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 나무엑터스 제공
Q 현장에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도시락을 따로 먹는 등 굉장히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고 들었다. 실제로도 책임감이 투철한 성격인지

A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이 강했다. 제가 해야 할 몫을 정확히 알고 있던 편이었다. '우영우' 현장에서는 제가 없으면 다른 대체 분량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촬영 중단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래서 코로나19 내내 유효했던 도시락 투쟁을 계속했다. (웃음) 다만 제가 모든 것을 차단하고 연기만을 위해 구도자의 길을 걷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까지 저를 옥죄면서 살고 있지는 않고, 에너지를 포함해 내적인 균형감을 잘 맞춰가면서 재밌게 살고 있다. 나름 숨구멍이 있다. 캐릭터와 제 자신을 구별할 줄 알게 되면서 건강한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또 희귀 혈액형이라고 해서 모든 걸 조심하는 사람이란 이야기도 사실무근이다. 제가 연기에 대한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그 이상으로 마치 '성인'처럼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한다. (웃음)
 
Q 상당히 도전적인 역할을 많이 한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 중 하나다. 특별히 그런 역할에 매료되는 이유가 있을까

A 인간 박은빈은 안정을 추구하는데 배우로서는 새로운 걸 시도해보는 것이 경험이 된다. 성취감을 주는 작업이다. 실패가 제 인생의 전부는 아닐 거라고 믿는 확신이 있다. 두려운 마음 중에 도전을 해보게 되는 그런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물론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고 실패할 만한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저는 시행착오이자 좋은 기회 그리고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다음 단계를 통과하면서 꾸준히 살다 보니 오늘처럼 '우영우'로 사랑 받는 날이 온 것 같다. 슬럼프도 지나고 보면 저를 더 단단하게 해준 시간들이다. 지금의 저는 건강한 상태다. (웃음)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인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 나무엑터스 제공
Q 7개월의 촬영 기간 동안, '우영우'를 통해 성장한 측면이 있다면


A 행복했다. B팀 없이 A팀으로만 구성돼서 똘똘 뭉친 '어벤져스' 팀이었다. 믿음이 가는 선장, 유인식 감독님과 애정하는 한바다팀 식구들과 좋은 동료애를 나눴다. 그렇지만 저 개인 내적으로는 부침이 심했다. 주위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었고 결국 제가 해내야 되는 것들이라 솔직히 고독할 때가 많았다. 7개월 내내 캐릭터로 살다 보니 '번아웃'이 이렇게 오는 걸까 싶었다. 제 한계를 시험해 보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는 굉장히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속 시원한 성취감 보다는 안도감과 고독함이 느껴졌다. 언제나 당연한 것은 없었고, 영우를 끝까지 잘 마쳐내는 것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Q 2024년 목표로 시즌2가 제작된다는 소식이 있었다. 박은빈 없는 '우영우'는 성립되기 어려운데 어떤 생각인지, 또 마지막으로 '우영우'를 사랑해준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저도 기사를 통해 접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그 기대에 부응하려면 이번 '우영우'에 투입될 때보다 더 큰 결심이 필요한 작업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보물상자 안에 잘 넣었는데 그걸 다시 열어야 된다면 아름다운 결정체가 훼손될까 걱정되는 마음이 든다. 먼 미래의 일이라 지금 당장 속 시원한 답변을 드릴 순 없지만 배우로서는 어렵게 고민할 부분이다.

세상의 외뿔고래들에게 (이 작품을) 바치고 싶다. 너무 큰 사랑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우영우'라는 사람과 세계를 함께 탐험해주셔서 감사하다. 배우 박은빈에게도 많은 성원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한 나날을 보냈다. 저도 '우영우'를 봐주신 분들의 나날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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