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불편한 아버지의 꿈, 이뤄 드려야죠" 韓 당구 차세대의 당찬 도전

한국 당구 3쿠션 차세대 김한누리가 22일 '2022 서울 세계3쿠션당구월드컵' 1라운드 예선에서 샷을 구사하고 있다. 대한당구연맹

'2022 서울 세계3쿠션당구월드컵'이 개막한 22일 서울 태릉선수촌 승리관. 4년 만에 서울에서 열리는 3쿠션 국제 대회로 세계 톱 랭커들이 총출동해 28일까지 일주일 동안 열전을 펼친다.  

이날은 시드 배정을 받지 못한 선수들이 예선 1라운드 경기를 치렀다. 랭킹은 낮지만 월드컵 본선 32강에 들기 위한 치열한 대결이 펼쳐졌다.

한국 3쿠션 차세대로 꼽히는 김한누리(19·한체대)도 이날 1라운드를 통과했다. 첫 경기에서 이태희(서울당구연맹)에 20 대 30으로 졌지만 2차전에서 이정희(시흥연맹)를 30 대 14로 완파했다. 이 대회 국내 선수 최연소 원재윤(18·봉일천고)는 아쉽게 탈락했다.

이날 김한누리는 첫 경기 뒤 "전반 라운드 앞서다 연속 7점을 맞아서 졌다"면서 "그러나 2차전은 이길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더니 정말로 대한당구연맹(KBF) 랭킹 11위의 만만치 않은 상대 이정희를 눌렀다. 경기 초반 하이런 9점을 몰아치며 먼저 브레이크 타임에 이른 뒤 후반에도 연속 5점으로 쐐기를 박았다.

김한누리는 3쿠션 차세대 선두 그룹으로 꼽힌다. 지난해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우승자 조화우(군 복무)와 정예성(서울) 등 1살 위인 형들과 함께다. 아직 김한누리는 이들에 살짝 뒤진다는 평가를 받고 본인도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잠재력으로만 보면 김한누리의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고 평가하는 관계자들이 적잖다. 다른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선수를 시작해 빠른 시간에 실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김한누리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전문 선수의 길을 택했다. 보통 초등학교부터 시작하는 다른 유망주들에 비해 구력에서 조금 뒤진다.

김한누리는 그러나 어릴 적부터 당구를 익숙하게 접한 경험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당구장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영향이었다. 당초 김한누리는 축구를 좋아해 선수의 꿈을 꿨지만 당구 선수로 활약했던 아버지(김상현)의 적극적인 권유로 중학교 때 결심을 하게 됐다.

한국 당구 3쿠션 차세대 김한누리가 22일 '2022 서울 세계3쿠션당구월드컵' 1라운드 예선에서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대한당구연맹


이에 대해 김한누리는 "사실 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하시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부상을 당하기 쉬운 과격한 종목을 원치 않으셨다"고 돌아봤다. 이어 "아버지께서 피가 나면 멎지 않는 혈우병을 앓고 계셔 걷는 데 불편함을 느끼신다"면서 "장애인 대회에서는 다수 입상하셨지만 일반인 대회에서는 아무래도 장시간 경기 등에서 힘에 부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작은 다소 늦었지만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김한누리는 중학교 졸업 뒤 고교에 진학하지 않으려고 했다. 학교에 다니면 수업 때문에 훈련할 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더 높은 선수를 쫓아가려면 배 이상으로 훈련해야 한다"면서 "당구에 인생을 걸었다"는 김한누리다.

다만 고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방송통신고(수성고부설)에 진학했고, 원하는 훈련과 수업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김한누리는 "방통고는 온라인 원격 등으로 수업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훈련을 하면서 학업도 병행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 결과 김한누리는 한체대 당구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한체대 당구부는 한국에 몇 개 되지 않는 엘리트 대학 선수부로 경쟁률이 보통 10 대 1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그만큼 입상 경력을 쌓은 덕분이다. 김한누리는 2019년 연맹회장배와 지난해 전국종별선수권 등에서 우승했고,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도 16강에 올랐다.

2022 경남고성군수배 전국당구대회에서 3쿠션 복식 우승을 차지한 조명우(왼쪽). 연맹


김한누리의 롤 모델은 조명우(24·서울연맹)이다. 조명우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를 3번 제패하고 '2019 LG U+ 3쿠션 마스터스'에서는 '당구 황제' 토브욘 브롬달(스웨덴)과 '당구 천재' 김행직(전남연맹) 등 세계 최고수들을 누르고 정상에 올라 '당구 신동'으로 떠올랐다. 지난 2월 군 제대해 20일 '2022 경남고성군수배 전국당구대회' 복식에서 우승하며 재기에 시동을 걸었다.

조명우에 대해 김한누리는 "시원시원하게 상대를 압살(?)하는 명우 형의 스타일을 좋아한다"면서 "형처럼 세계주니어선수권을 제패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주니어선수권은 김행직도 4번 우승을 차지했던 만큼 톱 랭커를 향한 관문이다.김한누리는 "세계주니어선수권 16강 상대가 명우 형이었다"면서 "당시는 졌지만 최근 클럽에서 진행된 연습 경기에서는 이겼다"고 귀띔했다.

성인 무대도 세계 정상이 목표다. 김한누리는 "주니어 대회는 물론 월드컵에서도 우승하고 싶다"면서 "아직 부족한 만큼 이번 대회는 본선 진출이 목표"라고 말했다. "섬세한 감각으로 난구를 풀어내는 게 강점"이라는 김한누리는 "그러나 반대로 안 풀리면 감각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약점을 극복해야 세계 정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아버지의 못 다한 꿈을 이뤄주고 싶은 아들이다. 김한누리는 "선수로서 아버지께서 빛을 보지 못하셨다"면서 "아버지의 뒤를 대신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다짐했다. 이어 "한번에 뛰어올랐다가 정체되기보다는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장기적인 바람도 드러냈다. 구력은 짧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한국 3쿠션의 차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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