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벼랑 끝 '수원 세 모녀'…"빚쟁이 피해 차에서 잠도"

지난 21일 A(60대)씨 등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수원의 한 다세대주택. 정성욱 기자

"온 가족이 다요? 아이고야… 이게 뭔 일이야."

22일 오후 경기 화성의 한 마을. 전날 수원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A(60대)씨 등 세 모녀의 주소지가 등록된 곳이다. 화성 집주인 B씨는 자신의 집주소를 A씨 주소지로 등록하게 해준 유일한 '이웃'이다.

A씨의 딱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는 부고 소식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B씨는 "A씨가 젊었을 적 마을 꼭대기 집에 살아서 누군지 알고 있다"며 "워낙 형편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지만 정말 다같이 그렇게 된 거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B씨에 따르면 A씨는 빚 독촉을 피해 거주지를 자주 옮겼다고 한다. 남편은 일찍이 사업 부도 후 집을 나갔고, A씨 혼자 자녀들을 보살폈다. A씨가 수원에서 지내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도 빚 독촉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B씨는 "남편은 집을 나갔는데 빚은 쌓이고, 결국 A씨가 가족들을 챙긴 것으로 안다"며 "지낼 곳이 없어서 차량에서 지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A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B씨 가족들은 주소지만이라도 자신의 집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내어줄 공간은 없지만, 빚쟁이들로부터 보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의 자녀들은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특히 가장 역할을 해야 할 A씨마저 몸을 쓰는 일을 하기 어려웠고, 결국 일가족이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B씨는 "A씨가 팔목을 다쳐서 주방일도 못한다고 들었는데 결국 그렇게 된 거냐"라며 "어떻게든 살고 싶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정방문으로도 찾지 못한…수원 세 모녀의 '행적'

스마트이미지 제공

이런 가운데 관할 지자체인 화성시는 A씨의 주소지를 가정방문하고도 행방을 찾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사망한 가정은 1년여 전부터 건강보험료 체납 등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었음에도 뒤늦게 복지 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화성시 등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11일자로 각 동에 지역 내 건강보험료 체납 가정들의 목록을 취합해 전달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하려는 취지였다.

이 명단에 A씨의 화성 집주소도 포함됐다. A씨는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0만 원 안팎의 수원 집에 살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동 행정복지센터(옛 주민센터)는 A씨 등의 기존 연락처와 우편 등을 통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거나 회신을 받는 데 실패했다.

이에 센터 복지팀 관계자들은 이달 3일 등록 주소지를 기준으로 가정방문에 나섰다. 이들이 수원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기 보름쯤 전이었다.

화성시 제공

그러나 집주인 확인 결과 이곳에는 A씨와 일가족이 거주했던 적이 없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결국 시는 이들의 실제 거주지를 찾지 못한 채 복지지원 관련 '비대상자'로 분류해 종결 처리했다. 수사권 등이 있지 않는 한, 특정인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이 기존 복지대상이 아니었던 데다, 타지역에 살던 남편이 기초연금 수급 대상자이기는 했으나 그마저도 2년여 전 사망해 행적을 추적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짐작된다.

애초 국가의 보호망 작동이 너무 늦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A씨의 건보료 체납기간은 16개월인 것으로 조사됐다. 보험료가 밀리기 시작한 지 1년 넘도록 무방비 상태였던 셈이다.

이에 대해 시는 전체 체납액이 27만 원가량으로 매달 밀린 금액이 비교적 큰 금액이 아니어서 복지관리 대상 선정이 다소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연체 금액 등의 규모에 따라 선택적으로 복지지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화성시청 관계자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분들을 어떻게든 찾아 도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다만 (복지) 대상자로 추출하기에는 금액이 상대적으로 작았고 발굴 이후에도 수사권이 없어 실거주지를 찾을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전날 오후 2시 50분쯤 수원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이웃집에서 악취가 난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방 안에서 일가족으로 추정되는 A씨 등 여성 3명의 시신을 발견해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숨진 A씨 가족은 모두 투병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암 진단을 받았으며, 두 딸도 희귀 난치병 등을 앓고 있어 일상마저 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 가족은 채무 문제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살던 수원의 다세대 주택은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40여만원 선인 것으로 파악됐다. A씨 등은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하지만 A씨 가족은 수원시에 기초생활수급 등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주소지 자체가 화성시로 등록돼 있다 보니 절차상 신청이 불가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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