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배우 이정재가 첫 연출작 '헌트' 위해 고민한 것들

영화 '헌트' 이정재 감독 <상>
'헌트' 통해 감독 데뷔한 사연에 관하여

영화 '헌트' 이정재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 '동림'을 색출하기 위한 안기부 내부의 수사 과정과 사냥감이 아닌 사냥꾼이 되기 위한 두 요원의 심리전, 1980년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 숨 쉴 틈 없이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액션. 이 모든 것이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에 담겼다.
 
안기부 요원인 박평호와 김정도의 심리전을 다루면서도 첩보 액션 드라마가 지닌 장르적 쾌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정재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부터 연출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덕분에 이모개 촬영 감독이 시나리오를 읽은 순간 바로 장면이 그려졌다고 밝혔을 정도로 텍스트부터 생생함이 드러났고, 영화가 공개된 이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헌트'의 주역인 이정재 감독은 차기작을 묻자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감독을 이토록 힘들게 한 '헌트'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관객들과 만나게 됐는지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나 직접 들어봤다.

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헌트'에 녹여내다


▷ '헌트' 언론배급시사회 이후 좋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첫 번째로는 우성씨와 같이 출연한 거에 대한 반가움이 많으신 거 같다. 그게 제일 기쁘다. 사실 '태양은 없다' 이후 둘이 언제 또 영화할 거냐, 한 번 찍으면 좋겠다고 말씀들을 많이 하셨다. 우리 둘이 뭔가 한다는 거에 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응원해주시는 것을 많이 느끼다 보니 너무 감사하다.
 
▷ 연출뿐 아니라 '헌트'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원래 제작하고 싶어서 판권을 구매하게 됐다. 초고를 보고 주제를 고치고 싶었고, 주제를 고치다 보니 상당 부분 이야기를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제와 이야기를 잘 고쳐줄 감독님들을 찾았고 많은 분을 만났지만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그런 과정에서 이런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시작한 글 작업이 시나리오가 됐다. 주제가 바뀌면서 인물 구성과 관계도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 이야기 전체가 바뀌면서 지금의 영화가 나왔다.


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처음 쓰는 시나리오 작업이라 부담도 많이 있었을 것 같다.
 
사실 내가 이런 주제와 이런 이야기를 내 손으로 쓴다는 게 감히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더 훌륭한 글을 쓰고 연출할 감독을 찾았던 게 사실이다. 중간에 너무 어려워서 여러 차례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료를 조금씩 찾고, 자료를 더블 체크, 트리플 체크하고, 좀 더 많은 자료를 찾으면서 기댈 곳을 찾았다. 실제로 1980년대 당시 남산이나 일본 지부에서 활동했던 안기부 직원을 만나 인터뷰도 했다.
 
▷ 기본적으로 '의심'이라는 코드가 녹아있는 영화다. 김정도가 박평호에게 "난 네가 '반드시' 동림이라고 생각해"라는 대사 속 '반드시'라는 부사처럼 단어, 말, 행동, 표정 등에서 미묘하게 무언가 어긋나고 이상하다고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그런 것들이 결말에 가서야 선명해진다. 이런 미묘한 요소를 세세하게 넣어두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다.
 
매 대사에서 느껴질 수 있는 의미와 뉘앙스를 복합적으로 만드는 게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거다. 연기하면서 한 신에서 감정이 단선적으로만 보일 수 있는 걸 복합적으로 보이도록 표현하는 연기를 많이 시도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내가 연기하면서 해왔던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내 방식이다. 그런 것들이 작업하는데도 투영됐다. 한 신에서 요구하는 정보와 볼거리와 감정을 좀 더 다양하게 섞이길 바랐고, 시나리오 작업부터 쭉 이어졌다.

영화 '헌트' 이정재 감독.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끝없는 고민과 반복적인 회의를 통해 완성된 1980년대와 액션 신

 
▷ 로케이션은 물론 미술, 의상, 소품 등 다양한 부분을 통해 1980년대를 재현하고 시대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공들인 게 보였다.
 
지금 1980년도 배경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상당 부분을 새로 지어야만 했고, 미술적으로 다 세팅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초기 프리프로덕션에서 미술적으로 혹은 카메라 앵글을 어느 정도 화각을 높여서 촬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를 굉장히 많이 했다.
 
액션적인 부분을 한정된 실내 공간에서만 한다면 답답하게 보일 수 있으니 장소도 고민을 많이 했다. 두 번째 액션은 초반보다 임팩트 강하게 보이면 좋겠고, 그다음은 아이디어적으로, 그다음은 스케일 있게 보이면 좋겠다고 구분했다. 이를 초기 시나리오부터 잘 구축해야 스태프들이 보고 준비할 수 있는 건 준비하고, 가능하지 않은 건 빨리 말해서 시나리오를 수정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굉장히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영화 '헌트' 비하인드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영화의 배경이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태국을 오간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 해외 로케이션이 불가능했을 텐데, 어떤 식으로 구현한 건지 궁금하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일본과 태국 부분은 국내 촬영을 목적으로 썼다. 일본은 북한 인사가 뒷문으로 망명을 시도한다고 하면 도로 폭이 넓지 않은 곳에서 촬영하면 되지 않을까, 빠른 시간 안에 전개해서 몇 개 거리 안에서 상황이 종료될 수 있는 총격신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태국의 경우는 리조트나 골프장 같은 환경에서 촬영한다면 태국에 가지 않고도 촬영할 수 있겠다고 봤다. 미국은 원래 가려고 해외 프로덕션까지 정했는데, 코로나로 나가기 힘들게 되면서 한국에서 촬영했다.

▷ 액션이 아무래도 요원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현실적이면서도 또 사건이 사건인 만큼 규모감도 있었다. 액션을 설계하며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나는 사실적인 액션을 선호한다. 격투든 총격 액션이든 길게 싸우는 것보다는 상황이 펼쳐지면 단번에 제압해야 하는 게 사실적인 액션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 계통(국가정보원 등)에서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화에서처럼 화려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길게 상황을 이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무술감독님께도 임팩트 있게 상황을 종료하는 방식을 취하자고 말씀드렸고, 무술감독님도 동의한다고 하셔서 그런 방식으로 함께 액션을 디자인했다.

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액션 장면이 임팩트 있고 스펙터클하게 잘 담겼다. 이모개 촬영감독과 함께 작업했는데, 어떻게 함께 작업하게 된 건가?
 
신인 감독이, 그것도 연기자가 연출한다고 하면 누가 관심을 가져 주겠나. 그런데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님과 이모개 촬영감독님이 워낙 친분이 두텁다. 이모개 촬영감독님께 시나리오를 전달했을 때 잘 봐주시고 승낙하셔서 시작됐다. 큰 도움을 받았던 건 사실이다. 경험치가 워낙에 높고 다양한 감독님과 워낙 많은 작품을 하셨다. 그 노하우는 어마어마한 거다.
 
▷ 데뷔작부터 칸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신인 감독으로서 자신감도 얻었을 거 같고 또 그만큼 차기작에 대한 부담도 생겼을 거 같다.
 
차기작은 연기할 거라서…. 연출은 못 하겠다. 힘들어서 못 하겠다.(웃음)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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