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53·27기·전남 보성)을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하면서 100일 넘게 이어진 검찰의 직무대리 체제가 막을 내렸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예상됐던 인사"라는 평과 함께 사정 정국이 본격화 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 안팎에서는 "무난하고 적절한 인사"라는 호평이 적지 않지만 선배 기수인 고검장급 후보들의 거취 문제에 따른 조직 불안정과 검찰 독립성 확립 등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한동훈 법무부장관과의 원활한 소통 여부도 관건이다.
기수파괴? "선배 검사들, 무조건 떠나지 않을 것"
이 후보자가 넘어야 할 첫번째 산은 기수 역전에 대한 부담이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는 지난 16일 이 후보와 함께 여환섭 법무연수원장(54·사법연수원 24기), 김후곤 서울고검장(57·25기), 이두봉 대전고검장(58·25기)을 최종 후보군에 포함했다. 세 사람 모두 이 후보자보다 선배다. 당장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기수가 같았던 경우는 2000년 이후 두 번 뿐이다.
검찰의 기수 문화가 엄격한 만큼 이 후보자가 총장 직무대리를 맡았을 때부터 선배 기수인 고위 검사들 상당수는 검찰을 떠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온 것이 사실이다. '선배 검사들의 러시' 여부를 놓고 검찰 안팎의 시선은 다소 갈리는 듯한 모양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에 "25·26기 검사 상당수는 나갈 것 같다. 남는다면 법무부장관 등으로부터 남아있어 달라는 신호를 명확히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후보자가 100일 넘게 총장 직무대리를 맡으면서 기수 역전에 대한 우려는 상당 부분 불식됐다는 평도 있다. 이미 한 장관이 법무부장관으로 기용되면서 기수 역전 현상이 일어난 데다 '기수 문화는 타파해야 할 구시대적 문화 아니냐'는 반론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또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후배가 조직의 장(長)이 됐다고 해서 선배가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옛날 시각"이라며 "25·26기가 큰 어른으로 남아서 바른 소리를 해 줄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총장 패싱'은 없다? "식물인 사람도 동물되는 자리"
이 후보자로서는 사상 최장기간 동안 수장 없이 지낸 검찰 조직을 아우르고 '포스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국면을 해쳐나가야 하는 부담도 있다. 총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한 장관 주도로 검찰 인사가 이뤄져 '총장 패싱'이라는 세간의 시선은 이 후보자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불식됐다는 평가다. 한 장관은 검찰 인사 과정에서 대검 차장과 직접적으로 의견을 나눴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실세로 불리는 한 장관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면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2003~2004년 대검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으로 같이 근무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일하던 시기에 이 후보자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한 장관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할 말은 한다는 이 후보자에 대한 평가까지 감안한다면 일방적인 복종 관계는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 법조계 인사는 "검찰총장 자리에 가면 식물로 살던 사람도 동물로 다 변한다"며 "누가 동기 말에 '예예'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이 후보자의 선정에 검찰총장 후보자 선정 절차가 유명무실화 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장관이 단행한 고검장 인사에서 이 후보자가 대검 차장에 임명되자 사실상 총장 인선을 염두에 둔 '원포인트 인사'라는 전망이 일찌감치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가 3~4명의 총장 후보군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일각의 시각에도 불구하고, 총장후보추천위가 주도적으로 추천한 후보군들을 검증해 최종 후보를 선정했다기 보다 이미 정해 놓은 답에 추천위가 장단을 맞춘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온다.
총장 출신 대통령 밑에서 검찰 독립성 확보 시험대
이 총장 후보자에게 놓인 과제 중 가장 난제로 꼽히는 것은 '검찰 독립성' 확보라는 과제다. 앞선 문재인 정부는 검찰 수뇌부를 철저하게 친(親)정부 성향의 인사들로 채워 넣으면서 수사의 전 과정을 소모적인 정파적 논란에 휩싸이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권이 윤석열 정부로 바뀌었지만 윤 대통령이 전임 검찰총장이었다는 점, 여기에 이 후보자가 이른바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된다는 점 등은 '이원석호 검찰'의 공정성 담보에 장애물이 될 전망이다. 한 장관이 검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지 않겠다고 거듭 공언한 것도 이같은 우려가 실재함을 반증했다는 평가다.
특히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의석수의 절대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민주당 대표로 유력한 이재명 의원 관련 사건이 검찰 앞에 산적해 있다는 사실은 큰 부담이다. '이원석호 검찰'이 이재명 의원 관련 사건 수사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에 따라서 검찰이 다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위험도 상당하다. 새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 관련 의혹에 대해서 검찰이 어떤 자세를 견지할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문제다. 당장 윤 대통령 자신도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물들에 대한 수사를 강행하다가 동시다발적인 압박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검찰 독립이라는 것이 총장 개인의 신념만으로 유지되기가 쉽지 않은 고차 방정식 같은 문제"라며 "이 후보자 입장에서도 그 문제가 가장 풀기 힘든 난제로 느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