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의 오판…'수해지역 찍힌다' 물난리 응급책 '차수판' 반대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방지책으로 떠오른 '차수판'
서초구의회, 지난해 지원 확대 조례안 부결
"필요 지역 이미 설치", "예산 확보 어렵다" 반대 이유

차수판이 설치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청남빌딩'의 10년 전 모습(왼쪽)과 올해 모습.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최근 중부지방에 시간당 100mm 이상의 강한 비가 쏟아지며 곳곳에서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았다. 서울의 경우 남부지역이 취약했는데, 서초구가 특히 침수 피해가 컸다.

집중호우 시 빗물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차수판(물막이판)이 적재적소에 있었더라면 피해가 줄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1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서초구의회는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건물에 차수판 설치를 지원하는 조례안을 논의했지만 행정, 예산상 이유로 부결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조례안에 반대했던 서초구청과 국민의힘 소속 구의원들은 필요한 지역은 이미 차수판을 설치했고, 구에서 사업비 전액 지원이 쉽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예측할 수 없는 재해를 안일하게 생각해 예방할 수 있는 피해를 키운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서초구의원들은 현재도 차수판 설치에 대해 "큰 비에는 효과가 없고, 구청의 전액 지원은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건물주들이 차수판을 설치하면 '침수 지역'으로 낙인 찍힐까봐 반대한다는 명분을 들고 있어 주민의 안전보다 인기영합주의에 몰두한다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1월 김정우 전 구의원(더불어민주당)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침수방지시설 설치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다. 국지성 집중호우가 잦아지며 발생하는 주택 및 상가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차수판 설치 사업을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상가 지하에 지난밤 들어찬 빗물에 대한 배수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박종민 기자

구체적으로 서초구청장이 관내 침수 피해가 일어나거나 우려되는 건물(주택 및 소규모 상가) 등에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거나 그에 따른 비용을 예산에서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침수방지시설 지원 금액은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에 한해 차등 지급되는데, 단독주택과 소규모 상가는 300만원, 공동주택은 2천만원으로 규정됐다.

앞서 서초구는 2011년 폭우로 우면산 산사태가 난 후 건축물 내 차수판 설치를 의무화하는 지침을 만들어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침수방지시설 설치 대상이 '저지대 지하주택'에 한정돼 있었기에 새로운 조례안은 단독주택, 공동주택, 소규모 상가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침수방지시설 설치 지원계획의 수립 및 지원기준 등을 세부적으로 마련했다.

조례안을 심사했던 재정건설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부산 동래구는 2014년 물난리 후 '침수방지장치 설치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5년간 주택・소규모 상가 등에 차수판 설치를 지원했고 피해 발생을 막을 수 있었다. 이에 2020년 행정안전부 '지자체 우수 안전 조례'에 선정되기도 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그런데 서초구 조례는 심사 끝에 찬성 2명, 반대 4명, 기권 1명 결과로 부결됐다. 반대 입장은 기존 '서울특별시 재난관리기금의 설치 및 운용 조례'와 함께 운영할 경우 혼선이 생길 수 있고, 서초구에서 전액 재원 조달하기 어렵다는 등 이유였다.

서초구청 소관 부서인 안전건설교통국 물관리과에서는 당시 "차수판이 미설치된 가구가 38%에 달해 지원 대상 확대는 지하주택에 대한 지원이 완료된 후 검토하는 게 적절하다"며 "신규 조례 제정 시 설치비 100% 구비 예산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재정부담 등에 대한 검토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

또 김성주 구의원(국민의힘)은 "2011년 비가 많이 와 우면산 산사태가 났던 때 이후 하수관 등 관리가 되며 최근 물난리가 적은 걸로 알고 있다"며 "정말 필요한 곳들은 대부분 (침수방지시설)이 설치가 된 걸로 보인다"며 질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풍수해 재난은 침수판 설치보다 하수관의 물 흐름 영향이 커 그 제반 여건을 해결해주는 게 중요하다. (침수판) 설치는 비용 대비해 효과는 떨어진다"며 "기상예보에 맞춰 하수관 관리를 철저히 해주는 게 낫고 기구를 설치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익태 전 구의원(국민의힘)도 "차수판이 어느 정도 피해를 줄이는 효과는 있어도 완벽하지 않다"면서 "2011년 물난리 당시 피해봤던 집들은 이미 (설치를) 다 해줬기 때문에 지금 꼭 필요한 건물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조례를 지금 꼭 제정할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의원들의 지적대로 일괄적인 지하주택 차수판 설치는 필요가 없거나 집주인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차수판 설치를 지원할 경우 해당 지역은 '침수가 일어나는 곳'이라는 낙인이 생겨 오히려 집주인 혹은 건물주가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침수에 취약한 지역 지하상가나 주상복합 주차장 등은 애초에 지원 대상에 들어가지 않고, 건물주가 차수판 설치에 반대하는 경우 실사용자들은 침수 피해에 노출된다는 지적이다.

서초구의회 의원들은 관련해 고려할 문제가 많다면서도 이번 폭우로 주민들 사이에서 차수판 설치 요구가 나와 지원을 늘리는 방법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빗물받이 개선 등 포괄적인 대책을 검토 중이다.

오세철 의장(국민의힘)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필요하면 수요조사도 하고 구청하고 협조해 비 피해를 안 보는 쪽으로 (지원책을) 검토해보겠다"며 "재난안전 기금이 있어 예산은 크게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사설 시설물은 주인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차수판 관리가 잘 안돼 사후적인 관리 책임 주체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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