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빌리 아일리시 내한 공연, 함성 폭발 순간 셋

광복절인 15일 저녁,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 빌리 아일리시가 4년 만에 내한 공연을 열었다. 현대카드 제공
구름 낀 하늘, 때때로 비가 몰아친 궂은 날씨에도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 부근엔 인파가 가득했다. 2년 7개월 만에 열린 현대카드 슈퍼 콘서트 26번째 주인공 빌리 아일리시 내한 공연을 보러 온 이들이었다. 2020년 제62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본상(제너럴 필드) 부문인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베스트 뉴 아티스트'(신인상)를 석권하고 '베스트 팝 보컬 앨범'까지 5관왕을 거머쥔 빌리 아일리시의 내한 공연은 2018년 이후 4년 만이었다. 좌석 2만여 석은 순식간에 매진됐다.

광복절인 15일 저녁, 고척 스카이돔에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6 빌리 아일리시' 공연이 열렸다. 예정된 시작 시각은 저녁 8시였으나, 8시 17분이 되어서야 암전됐고 빌리 아일리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각 등장'에도 관객들은 열광적으로 빌리 아일리시를 맞았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라고 쓰인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빌리 아일리시는 '베리 어 프렌드'(bury a friend), '아이 디든트 체인지 마이 넘버'(I Didn't Change My Number)를 선곡했다. 'NDA'를 부를 때는 이 노래를 안다면 따라 불러달라고 요청했고, 팬들은 일부 구간을 따라 부르는 것으로 화답했다. 다음 곡 '데어포어 아이 앰'(Therefor I Am)에서도 팬들의 따라 부르기는 계속됐다.

"정말 환상적"이라고 운을 뗀 빌리 아일리시는 "오늘은 그냥 미쳐도 된다. 비명을 지르고 뛰고 노래하고 춤추고 돌아다니고, 심지어 울어도 된다. 다 해라"라며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사실 첫 곡에서부터 플로어 쪽은 빌리 아일리시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자리를 이탈해 무대 앞으로 옮겨가는 관객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빌리 아일리시는 2018년 이후 4년 만에 내한 공연을 열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로 치러진 이번 공연은 그가 올해 2월부터 시작한 '해피어 댄 에버' 월드 투어 일환이다. 빌리 아일리시 공식 페이스북
이날 공연은 빌리 아일리시의 '발산과 침잠' 모두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곡의 분위기에 맞게 색과 크기가 달라지는 거대한 레이저를 곁들여 물량 공세에 나선 무대는 '발산' 쪽이었다. 그중에서도 '유 슈드 씨 미 인 어 크라운'(you should see me in a crown) '해피어 댄 에버'(Happier Than Ever) 무대의 '하드함'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눕거나 엎드리고 힘차게 뛰어다니며 무대를 자유롭게 휘저었고, 자신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그런가 하면 특유의 속삭이는 듯한 창법이 주를 이루는 곡과 미니멀한 구성의 정적인 무대도 함께 선보였다.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청아한 목소리에 자연히 귀를 기울이게 된 '골드윙'(GOLDWING)이나 마치 주술을 부리는 듯한 오묘하고 몽환적인 무드의 '옥시토신'(Oxytocin), 피아노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목소리가 강조된 '웬 더 파티스 오버'(when the party's over)를 예로 들 수 있다.

친오빠인 피니어스와 나란히 앉아 기타를 치며 부른 '유어 파워'(Your Power)와 '더 써티스'(The 30th)는 백미였다. 관객들은 마치 별이 빛나는 것처럼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는 플래시 이벤트로 화답했다. '더 써티스'를 부를 때 끊어질 듯하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빌리 아일리시의 호흡에 거대한 함성과 감탄을 보냈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폭발적인 반응이 나온 순간 중 하나다.

태극기를 펼쳐 보였을 때도 엄청난 함성이 뒤따랐다. 빌리 아일리시는 태극기를 안고 있다가 두 손으로 펼쳐 관객들에게 잘 보이도록 했다. 공연 날짜인 15일이 광복절이었던 만큼 관객석의 호응이 컸다. 빌리 아일리시는 4년 전 첫 내한 공연도 광복절에 연 바 있다.

빌리 아일리시가 열창하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빌리 아일리시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인기곡이자 대표곡인 '배드 가이'(Bad Guy) 무대 때 공연장은 절정에 다다랐다. "여러분들 너무 조용하다, 하지만 진짜 귀엽다"라고 했던 그의 말처럼 초반에는 관객들도 목과 몸이 덜 풀린 느낌이었다면, '배드 가이' 때는 층수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일어나 점프하며 공연을 즐겼다. 떼창 목소리도 가장 컸다.

사선 면이 도드라진 무대 장치를 두고 가장 널찍한 가운데 화면과 이어지게 해 시야의 확장을 꾀하고, 무대 성격에 맞춰 대규모 공연장을 가로지르는 레이저를 아낌없이 쏘아 볼거리에도 신경 썼다. '게팅 올더'(Getting Older)에서는 아기였을 때 모습을 찍은 홈 비디오를 깔고, '골드윙'에서는 붉은빛의 커다란 날개를 형상화하는 등 화면을 잘 활용했다. '올 더 굿 걸스 고 투 헬'(all the good girls go to hell)에서는 기후 위기에 맞서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다양한 요구와 구호를 집합한 영상을 틀었다.

무엇보다 이날 공연의 핵심은 노래마다 자유자재로 변신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 빌리 아일리시의 실력이었다. 결코 크지 않은 음량과, 내적으로 읊조리는 듯한 가창을 선보일 때도 관객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때로는 누웠고 때로는 본 무대부터 돌출 무대까지 뛰어다녔지만 음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 노래가 가진 감정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동안 대면 공연을 못 하는 시기가 있었던 것을 상기하듯, 관객과의 호흡을 중시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빌리 아일리시는 공연 중 일어나서 뛰어도 된다고 여러 차례 말하고 왼쪽, 오른쪽, 가운데까지 두루 살피며 지금 공연이 괜찮은지 물었다.

빌리 아일리시. 현대카드 제공
"이런 스타디움(경기장)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라는 빌리 아일리시는 "놀랄 만큼 영광이고, 여러분은 무척 다정하고 소중하다"라며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줘 고맙고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관객들도 플래시 이벤트와 박수로 호응했고, 이따금 개인 관객이 '빌리, 아이 러브 유!' 등 응원 멘트를 외치기도 했다.

지각으로 시작해 앙코르 없이 끝났기에 총길이가 짧은 편이었다. 당초 95분으로 예고돼 있었으나 실제 공연 시간은 90분 안쪽이었다. 4년 만의 내한 공연이었기에, 그를 기다려온 관객들에게는 아쉬운 지점이었을 수도 있다. 마지막 곡 '해피어 댄 에버'가 남아 있었으나, 전 곡인 '배드 가이'가 끝나고 나서 퇴장하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빌리 아일리시의 내한 공연은 지난해 5월 발표한 두 번째 정규앨범 '해피어 댄 에버' 월드 투어 일환으로, 그는 올해 2월부터 북미·유럽을 방문했으며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 공연을 앞두고 있다.

다음은 이날 세트리스트.

1. bury a friend
2. I Didn't Change My Number
3. NDA
4. Therefore I Am
5. my strange addiction
6. idontwannabeyouanymore / lovely
7. you should see me in a crown
8. Billie Bossa Nova
9. GOLDWING
10. Oxytocin
11. ilomilo
12. Your Power
13. The 30th
14. Bellyache
15. Ocean Eyes
16. Getting Older
17. Lost Cause
18. when the party's over
19. all the good girls go to hell
20. everything i wanted
21. bad guy
22. Happier Than 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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