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국 발목 '김순호 프락치' 논란…주사파 프레임, 돌파 카드?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 풀리지 않는 '프락치 활동' 의혹
'주사파 운동' 단정짓지만, 관련 기록 없고 대법원 무죄 판결
18일 국회 보고 앞두고 전운 고조…김 국장 출석 주목

김순호 초대 행안부 경찰국장. 박종민 기자

김순호 행정안전부 초대 경찰국장이 과거 동료들을 밀고해 경찰에 특채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 국장은 자신이 '주사파 단체'에서 빠져나와 경찰에 채용됐다고 해명하지만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아 억지 주장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김 국장은 1989년 노동 운동 단체 '인천부천노동자회'(인노회) 부천지부지역장으로 활동하던 중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하고 그해 8월 경찰에 특채됐다. 증언 등에 따르면 김 국장이 잠적한 시점은 4월즈음으로, 이후 6월까지 인노회 회원들이 줄줄이 구속·기소됐다. 인노회 회원들은 단체 조직책이었던 김 국장이 수사받지 않았다는 점 등 행적이 수상하다며 동료들을 밀고해 경찰에 특채됐다고 의심한다.

김 국장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인노회 등 활동은 '노동 운동'이 아니라 '주사파(주체사상파) 운동'이라며 당시 회의감을 느껴 전향했다고 설명한다. 경찰에 자수한 그는 조직 정보를 넘기진 않았지만 주사파 관련 지식으로 경찰의 특채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CBS노컷뉴스가 인노회 사건 당시 공소장을 확인한 결과, 수사당국은 인노회를 '주사파'로 규정하지 않았다.

인노회 회원 A씨의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인노회가 "정치적 이념은 NLPDR(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에 바탕을 둔다"며 반국가 단체로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했다고 봤다. 그러나 구체적인 단체의 목적과 임무에 '나라의 자주권 실현과 민주사회 수립', '통일 조국 건설', '노동 운동 단체 및 민주노조들과의 협력', '노동자의 조직화 촉진' 등 내용은 있지만 북한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퍼뜨렸다는 설명은 없다.

유죄 판결받은 A씨는 항소 이유서에 "경찰은 인노회 회원들을 영장 없이 불법 강제 연행해 치안본부 대공3부에 가두고 잠도 안 재우며 자기들이 미리 짜놓은 대로 인노회 숨은 목적이 이른바 'NLPDR'이라고 허위 자백하도록 강요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뜻대로 안 되자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말을 멋대로 해석하고 그것이 인노회가 추구하는 조직 이념이라고 진술하도록 했다"며 "인노회를 이적단체로 보도록 하는 여러 정황을 만들려고 하고 사무실에 보관 중이던 여러 자료의 내용을 의도적으로 선택, 확대해 왜곡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고 2020년 대법원은 A씨의 재심에서 "인노회는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인노회는 인천·부천 지역 노동자들의 경제적·정치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대중적 노동단체로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동조하는 활동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며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동조해 NLPDR을 실현하려는 목적이나 노선을 가진 단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을 보면 김 국장은 자신을 둘러싼 '프락치 논란'을 희석하기 위해 인노회 사건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이념적 프레임인 '주사파'를 가지고 온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 국장의 해명은 오히려 자신의 특채를 둘러싼 의혹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실 주최로 '경찰국 신설 규탄, 김순호 경찰국장·이상민 행안부 장관 사퇴'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김순호 경찰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손팻말이 놓여있다. 윤창원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 국장은 1998년 8월 경찰공무원법, 경찰공무원임용령에 따라 '보안업무 관련 전문지식을 가진 자'로 인정받아 경장으로 특채됐다. 당시 경찰 공무원임용령 제16조는 특별채용 요건으로 '대공 공작업무와 관련 있는 자를 대공 공작요원으로 근무하게 하기 위해 경장 이하의 경찰공무원으로 임용하는 경우'를 뒀다. 김 국장이 민주화운동 정보를 경찰에 내준 정황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관련해 김 국장은 "주사파로 오래 활동하면서 전문지식이 인정됐다"며 '대공 공작업무'와는 관련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사파 공부'를 했다는 사실만이 '대공 공작업무에 대한 전문지식'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워 동료들 정보를 경찰에 밀고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국장은 경찰이 된 뒤 인노회 수사를 담당한 대공수사3과에서 업무를 시작해 경찰청 보안과에서 일하며 '범인 검거 유공'과 '보안업무 유공' 등으로 여러 차례 포상을 받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의혹은 김 국장이 군의 '망원'(프락치) 역할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언제까지 행했느냐다. 김 국장은 1983년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강제징집돼 녹화공작 대상자가 됐다. 녹화공작은 보안사가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을 군에 징집한 뒤 교내 동향 등을 수집하도록 강요한 일이다. 그는 일명 '침투 망원'으로서 성균관대 심산연구회 등 서클 활동을 적극적으로 보고해 실적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제대 후에도 망원 활동을 이어갔는지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의문점이다.

김 국장을 둘러싼 의혹은 오는 18일 열리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실시 행안부·경찰청 업무보고에서 더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국장 출석과 관련해, 국장급은 당연히 배석해야 함에도 의무 규정은 없어서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는 "출석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민의힘 이채익 위원장도 "여야 간사 간에 협의하라"고 의견을 냈다고 전해졌다.

야당 위원들은 김 국장이 출석하지 않더라도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임명 당시 김 국장과 관련된 의혹을 몰랐더라도, 현재 '경찰국은 신설만으로도 위헌인데 의혹이 넘치는 사람을 임명한 게 문제'라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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