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실무위원장을 맡은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를 비롯한 공직자 위원 대부분이 불참하면서 여순사건을 바라보는 전라남도의 진의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공직자 중심의 인적 구성 문제가 다시 한 번 대두되면서 민간 전문가의 실무위 활동을 적극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11일 전라남도에 따르면 여수·순천10·19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이하 실무위)는 이날 오후 2시 도청 서재필실에서 제2차 실무위원회를 열고 여순사건 희생자 163명에 대한 심사를 마쳤다.
이번 심사 대상의 경우, 지난달 실무위 소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실무위원회에 상정된 안건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이미 진실규명을 받고 '여순사건 특별법' 상 희생자·유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신고한 140건 △경찰서 보안기록, 군법회의 판결문 등 공적 증명자료가 있는 21건 △증명자료가 없어 보증서를 제출한 2건 등 총 163건이다.
모든 안건이 실무위 심사를 통과하면서 여순사건 명예회복위원회(이하 중앙위)에 첫 심의·결정을 요청하기로 했지만 희생자·유족과 학계 전문가 등은 오히려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심사 결과와 관계없이 공직자로 구성된 당연직 실무위원 대부분이 얼굴을 비추지 않는 등 무성의한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전라남도가 주도하는 여순사건 실무위는 위원장인 김영록 전라남도지사와 부위원장인 문금주 전라남도 행정부지사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됐다.
이밖에 당연직 위원 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전남도교육청 소속 국장급 직원 4명으로 실무위 자체가 공직자 중심으로 꾸려졌다.
다른 9명의 실무위원은 위촉직 신분으로 유족대표와 법조계, 학계 전문가 등 민간 위원이다.
문제는 여순사건 특별법 시행 이후 희생자·유족 명예 회복의 첫발을 내딛는 자리에 김 지사 등 실무위를 주도해야 하는 당연직 위원 모두가 불참했다는 점이다.
공직자 가운데 이날 실무위에 참석한 위원은 부위원장인 문 부지사가 유일하다.
이날 김 지사는 다른 일정 관계로 불참했다. 도지사는 부지사가 대행했더라도, 실무위 소위원장인 전라남도 김기홍 자치행정국장 역시 같은 시간대 다른 행사 참석을 이유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라북도와 경상남도 소속 위원들은 인사이동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위촉직인 민간위원 9명 중 7명이 참석한 것과 대조된다.
이에 대해 전남 동부권을 중심으로 여순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힘쓰고 있는 유족, 민간인들은 날선 목소리를 내놨다.
여순사건과 관련한 전라남도의 진정성과 공직자 중심 인적 구성에 따른 연속성·효율성 저하, 타 지자체와의 협력 미비 등은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던 부분으로, 이번 실무위를 통해 전라남도의 무관심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여순사건 중앙위 관계자는 "처음으로 실무위가 희생자 심사를 통해 중앙위에 상정하는게 주요 안건인데 그런 중요한 안건을 처음 처리하는 자리에 위원장이 오지 않은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중앙위도 위원장인 국무총리 참석하는데 국무총리 일정에 맞춰 일정 잡는다. 실무위도 도지사 일정 조율해서 잡았어야 했을 텐데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다"고 지적했다.
여순10·19범국민연대 박소정 운영위원장도 "올해 1월 실무위 위원들이 위촉장을 받고 사실상 첫 회의라해도 과언이 아닌 자린데 (도지사가 불참한 것은) 여순사건에 대해 완전히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도지사부터 그런 태도로 일관하니 전남도 공직자들도 여순에 대해 적당히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지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편, 실무위는 이번 심사를 통과한 안건의 개인별 심사의견서를 작성해 중앙위에 희생자 및 유족 심의·결정을 요청할 계획이다. 중앙위는 심의·의결 요청을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 희생자 및 유족 여부를 심사·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