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재난의 씨앗이 되고, 누군가는 재난 앞에 나약해지지만, 그 누군가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다. 영화 '비상선언'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재난 앞에 선 사람들 각각의 감정과 드라마를 담고 있다.
어디로도 탈출할 수 없는 비행기 안에서 발생한 재난을 마주한 인간들 속 재혁은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비행기의 탑승한 승객이자 한 명의 인간으로서 공포를 넘어 모두를 위한 선택에 나선다. 재혁을 연기한 이병헌은 재난보다 더 중요한 건 재난을 마주한 우리가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고, 이때 필요한 건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난을 마주하는 이병헌의 태도
▷ 팬데믹 기간 영화계를 지켜보며 영화업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영화 종사자라면 배우를 포함해서 대부분 그런 생각을 다 해봤을 거다. 극장이라는 게 과연 계속 남아있게 될까 부터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이제 주류를 이루는 시대가 된 것 등 말이다. 별의별 생각을 다 했는데, 최근 영화가 개봉하고 정말 잘 된 영화들을 보면 극장은 죽지 않았구나, 영화는 계속된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고, 그렇게 될 거 같다.
▷ 재난영화를 보다 보면 '나라면 과연 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등을 질문하게 된다. 만약 재혁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
재난영화뿐 아니라 다른 영화에서도 항상 나를 극에 대입시켜 본다. 내가 맡은 캐릭터가 말하고 행동하는데 나라면 어땠을까 항상 먼저 생각한다. 재혁이 했던 판단과 결정은, 영화에서는 그렇게 했는데 진짜 그런 순간이 다가온다면 어떻게 할지 아직도 답을 못 찾겠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모를 거 같다. 지금 내가 어떤 답을 한다는 건 거짓말일 수 있을 거 같다.
▷ 재난 한가운데 놓인 인물을 연기했고, 또 실제로 코로나19라는 재난을 통과하고 있는 만큼 재난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재난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예고도 없이 언제든 올 수 있다. 영화에서도 인간의 이기심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있고, 인간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겨내고자 하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인간적인 면도 보인다.
재난은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고 이겨나가느냐의 문제인 거 같다. 실제 현실에서도 마찬가지고 영화에서도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부분이다. 가장 기본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마음 아닐까 생각한다. 상대방의 입장을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그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그럴 때 적어도 인간답지 않을까.
사람과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이병헌을 달리게 한다
▷ 쉬지 않고 끊임없이 활동하며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지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 무엇인지 궁금하다.
호기심인 거 같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하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가장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관찰, 그런 것에서 시작이 된다. 또 새로운 이야기를 봤을 때 이런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데 대한 호기심, 내가 그럼 이 이야기에서 이 인물을 갖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함. 무엇이 됐건 간에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진출해 K-콘텐츠, 한국 배우의 저력을 알렸던 배우로서 요즘 한국 배우들과 감독, 콘텐츠의 세계적인 활약을 지켜보는 소감도 남다를 것 같다.
예상을 뛰어넘는 빠르고 커다란 변화들이라 나도 너무 정신이 없는 거 같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구나 싶다. 해마다 바뀌는 수준이 되다 보니 나도 관객처럼, 시청자처럼 놀람의 연속인 거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인 상황인 거다. 하지만 우리에게 포커스가 맞춰졌을 때 거품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더 잘해야 하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 예비 관객들을 위해 '비상선언'이란 영화를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청룡열차'. 영화 내용과 관객의 입장이 비슷한 거 같다. 영화도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안전벨트를 매라고 하고, 영화가 끝날 때 착륙한다. '비상선언'은 관객들이 앉는 순간부터 스릴감과 긴장이 시작돼서 끝날 때까지 한 번에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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