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이병헌의 경험이 만든 '비상선언' 속 재혁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 탑승객 재혁 역 배우 이병헌 <상>
사상 초유의 테러가 발생한 항공기 안으로 발 들인 경험에 관하여

영화 '비상선언' 탑승객 재혁 역 배우 이병헌. BH엔터테인먼트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재혁은 아토피로 고생 중인 딸아이의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을 딛고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비행기 탑승 전부터 자신의 주변을 꺼림칙하게 맴돌던 의문의 남성이 같은 비행기에 탄 사실을 알고, 재혁은 의심과 불안에 빠진다. 하지만 두려움도 잠시, 재난 상황에 닥친 혼란의 비행기 안에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점점 깨닫기 시작한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해 온 배우 이병헌이 사상 초유의 항공 테러가 발생한 비행기 안에서 공포감과 공황, 딸과 승객들을 구해내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번민하는 재혁 역을 연기했다.
 
어엿한 아버지가 된 그는 '아빠'라는 입장을 누구보다 확신을 갖고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화상으로 만난 이병헌은 재혁을 통해 전무후무한 테러로 혼란과 두려움에 휩싸인 비행기 내부에서 겪었던 일들을 들려줬다.

영화 '비상선언' 스틸컷. ㈜쇼박스 제공
 

겪어봤기에 재혁을 더 잘 그려낼 수 있었다

 
▷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을 연기한 끝에 드디어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끊임없이 작품을 하고 또 무대 인사 등을 통해 관객들을 극장에서 직접 만나는 게 어느 순간 나의 일상이자 루틴이 됐었는데 코로나 시대를 맞으며 깨져 버렸다. '남산의 부장들' 이후로 몇 년간 관객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시사회를 통해 오랜만에 극장에 서서 관객들을 바라보며 감회가 정말 새로웠다. 새삼스러운 감정이었다.
 
▷ 테러 비행기 탑승객 재혁 역을 연기하면서 특히 주안점을 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재혁은 비행공포증을 가진 캐릭터고, 공황장애 증상으로 발현된다. 재혁에게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있는지 보여주기에 공황장애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과호흡 증상, 그 속에서 나오는 눈빛, 굳어진 표정, 불안해하는 모습 등이 다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감정 속에서 계속 상황을 맞닥뜨리고 연기하는 게 관건이었다. 힘든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겪어본 증상이기에 잘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비상선언' 스틸컷. ㈜쇼박스 제공
 
▷ 국내 최초로 지름 7m, 길이 12m의 사이즈로 제작된 롤링 짐벌로 실제 크기의 항공기 세트를 회전시키며 촬영했다. 이 역시 남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처음 봤을 때 입이 떡 벌어졌다. 애초에는 비행기와 그걸 움직이는 기사들이 미국에서 올 예정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못 오겠다는 통보를 받고 여기서 직접 만들어서 돌리게 됐다. 할리우드에서도 그렇게 큰 비행기는 돌려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이게 첫 번째 시도고, 우리가 처음으로 만든 거다. 이런 자부심은 있지만 막상 타서 그 안에서 내가 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겁도 났다. 그러나 익숙해지고 나서는 편하게 기구 타듯이 했다.
 
비행기 내부 촬영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장면은 외국에서도 구현해 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비행기 내부 촬영은 '비상선언'이 좋은 작품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360도로 돌 때 사람들 머리가 공중으로 올라가고 천정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시그니처 장면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 조종실 창밖에 LED 스크린을 설치하고, 실제 외부의 풍경을 사전 CG 작업해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 실제 VFX를 송출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연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나?
 
굉장한 도움이 됐다. 진짜 비행기와 똑같이 내부 세트를 만들어놓아서 '내가 비행기 안에 들어와 있구나'라는 착각이 생기는데, 실제 장면을 촬영해서 창밖 비주얼도 그렇게 해놓으니까 진짜 날고 있는 기분으로 촬영했다. 미국에서도 이렇게 큰 짐벌은 없다고 들었다. 그만큼 기술이나 장비적인 측면에서 이제는 똑같은 수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영화 '비상선언' 탑승객 재혁 역 배우 이병헌. BH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병헌에게 놀라운 연기로 놀라운 경험을 안긴 배우들

 
▷ 여러 배우와 함께했는데, 먼저 딸 수민 역 배우 김보민과 함께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도 아이가 없었으면 아빠들의 모습을 훨씬 더 많이 관찰하고 선배나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거 같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나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아이를 대하는 아빠로서의 입장은 누구보다 더 확신을 갖고 연기할 수 있었다.
 
수민을 연기한 보민이는 '백두산'에서 딸 순옥으로 나온 김시아와 친자매다. 둘 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다. '백두산' 때도 엄청 놀랐고, 동생인 보민이도 어린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쿨하게 연기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다 이해하고 표현하는지 놀랐다. 아주 세련된 연기를 하는 친구들이다. 어머님께도 정말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친구들이라고 말씀드렸다.
 
▷ 재혁과 자주 부딪힌 인물이 임시완이 연기한 진석이다. 극 중 진석을 마주했을 때 어땠나?
 
실제 그런 인물이 있다면 정말 엄청 두려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정상적인 대화가 아니고 표정과 눈빛이 정말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라 나와 내 가족을 주시하고 있다면 그것만큼 신경 쓰이고 공포스러운 것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정말 예쁜 얼굴로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줘서 인상 깊었다.

영화 '비상선언' 스틸컷. ㈜쇼박스 제공
 
▷ 오랜 시간 함께한 승객으로 나온 배우들 역시 하나같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한 분 한 분이 다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 혹은 연극무대에 서고 있는 배우들이다. 진심을 다해서 굉장히 리얼한 연기를 보여주셔서 정말 좋은 배우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약간 긴장하면서 연기 호흡을 맞췄다. 그분들의 연기가 쌓이고 쌓여서 영화가 더 사실적이고, 관객들이 감정 이입하는 데 굉장히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한다.
 
▷ 지금까지 말한 배우들 외에도 기억에 남았던 캐릭터는 누구인가?
 
송강호 배우의 연기를 보면 그냥 지나갔을 법한 연기인데도 저걸 저런 맛을 내면서 연기하는구나 싶어서 되게 감탄스러울 때가 있다. 별거 아닌 대사인데 거기서 어떤 웃음을 주거나 울컥해지거나 되게 의외의 감정을 느낄 때가 있었다. '아, 저런 발견들을 하는구나' 싶어서 참 놀라운 경험이었다.
 
▷ 예비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힘든 3년을 지나면서 그 이전보다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을 만한 영화가 되어 버린 거 같다. 정말 영화 보는 내내 감정 이입이 깊이 될 거고, 단순한 재난영화가 아니라 정말 많은 생각이 들 만한 영화라 생각하기에 많은 분이 극장 찾아와주시면 좋겠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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