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문닫는 무더위 쉼터…어르신들 "더위 피할 곳이 없다"

부산시 등 지자체, 취약계층 위한 지역 무더위 쉼터 1278곳 지정해 운영
무더위 쉼터 절반은 주말 운영 안해…해운대·수영은 주말 쉼터 '0'곳
평일에도 관공서·식당·은행 등은 영업시간에만 문 열어…가장 더운 오후에 문 닫은 곳도
"취약 계층에게 실제로 도움 되는 정책 필요" 지적 나와
부산시 "권한은 기초단체에…관리 강화 공문 보내고 있다"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부산 북구의 한 경로식당. 식당이 문을 닫는 주말이나 오후에는 무더위 쉼터도 문을 닫는다. 김혜민 수습기자

부산지역에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취약 계층을 위해 지정한 지역별 '무더위 쉼터'가 주말에 문을 닫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말 낮 부산 북구의 한 경로식당. '무더위 쉼터'라는 간판이 놓여 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더위를 조금이라도 식혀보려고 쉼터를 찾아왔던 한 어르신은 실망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주민을 위한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식당 운영 시간에 맞춰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고, 평일에도 오후 3시까지만 운영하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 대표 허진순(72·여)씨는 "식당이 문을 열고 음식 조리를 시작하는 오전 10시쯤에는 에어컨도 켜놓고 해서 더위를 식힐 수 있는데, 점심시간이 끝난 뒤로는 더 머물 수가 없어서 나와야 한다"며 "식당 역할만 할 뿐, 무더위 쉼터로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북구의 한 마을 어르신들이 건물 현관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혜민 수습기자

더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한 동네 어르신들은 결국 아파트 현관이나 복도, 마을 입구에 자리를 펴고 눈치를 보며 땀을 식혀야 하는 처지다.

주민 한성순(69·여)씨는 "수급자 처지이다 보니, 사는 게 빠듯해 전기세라도 아끼려고 이렇게 밖에 나와서 더위를 식히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무더위 쉼터에 가면 시원하고 좋겠지만, 갈 시간도 없고 쉽게 이용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밖에서 쉬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와 일선 구·군은 부산지역 1278곳을 실내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물품이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경로당 등 노인시설이 843곳으로 가장 많고, 주민센터 171곳, 마을·복지회관 83곳, 금융기관 66곳, 보건소 12곳 순이다. 기타 시설도 100여곳에 달했다.

이 가운데 복지회관과 관공서, 금융기관 등은 영업이나 운영 시간이 맞춰 쉼터로 활용하다 보니 이용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 부산시에 따르면 전체 무더위 쉼터 가운데 절반 가까운 660여곳이 주말에 문을 열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해운대와 수영구는 주말에 이용할 수 있는 무더위 쉼터가 한 곳도 없었다. 중구와 서구도 문을 여는 곳은 단 한 군데뿐이었다.

부산 북구의 한 마을 어르신들이 건물 현관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혜민 수습기자

여기에 노인시설 역시 시설 상황에 따라 운영 시간이 제각각이라, 무더위를 식히려고 찾아갔다가 헛걸음을 하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무더위 쉼터 등 폭염 대비 정책이 여름을 나기 버거운 취약 계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산연탄은행 대표 강정칠 목사는 "부산시에서 쉼터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정책인지는 의문이 드는 상황"이라며 "부산 곳곳에 무더위 쉼터가 있다고는 하지만, 경로당이나 복지관은 기존에 운영하던 시설이고, 수용 인원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부산 북구의 한 마을 어르신들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혜민 수습기자

이에 대해 부산시는 무더위 쉼터 지정과 관리는 일선 구·군에서 하고 있다며, 공문을 보내 운영과 관리에 만전을 다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행정안전부 지침 등에 따라 일선 구·군에서 무더위 쉼터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며 "일선에 무더위 쉼터 관리와 점검 등 운영을 강화해달라는 공문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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