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지난해 12월 41년 간 동결됐던 기존 월 2500원 수신료를 3800원으로 인상하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KBS 수신료를 향한 여당의 공세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결정적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27일 국회 대정부질문이었다. 이날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이 'KBS 수신료 징수가 반강제적이라 불만이 높으니 국민에게 선택권을 줘야 하지 않겠나'라며 질의했다. 또 "언론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는 문재인 정부 때 적폐몰이로 공영방송을 장악했고, 지금까지도 불공정 편파방송을 자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특별한 성향을 가진 분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실제로 방송 내용이 그런 쪽에 영향을 받는다는 건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된다"면서 "어느 정도 한전(한국전력공사)의 전기요금에 붙여서 받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국민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답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민의힘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최근 KBS 수신료 문제를 앞장서 비판해왔다. 전날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도 수신료가 폐지된 프랑스 등 사례를 들며 "우리 국민들은 고도의 정치적 편향성과 공정성 문제로 KBS를 외면하고 있다. KBS 편파 방송은 공영방송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채 국민의 수신료를 도둑질하는 것과 다름 없다. 수신료 분리 징수안에 대한 구체적 논의에 착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난 24일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는 한 발 더 나아가 "KBS가 공정하게 제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들만 수신료를 내게 하는 '수신료 자율납부'를 포함해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영국과 프랑스와 같이 수신료 폐지와 이에 대한 대책도 논의 가능하다"고 '폐지론'까지 언급했다.
KBS는 이에 즉각 반발했다. 이미 헌법재판소가 1999년 '수신료는 조세나 서비스 수수료가 아닌 실제 방송시청 여부와 관계 없이 특정 공익사업의 소요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결정한 바 있으며 해외 선진국들의 수신료 폐지나 인하 배경도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었다.
KBS는 "해외 선진국들의 수신료 폐지는 수신료의 자율 납부가 아닌 세금 등 보다 강제성이 높은 공적 재원 유형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며 "집권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해외 선진국의 수신료 폐지 사례를 KBS에 대한 정치적 압력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 성향이 다른 양대 노조 역시 한 목소리로 비판 성명을 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는 "공영방송의 근간인 수신료를 흔들어, 직접 나서지 않고 본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KBS 사장과 프로그램을 손보려는 심산 아닌가"라며 "국민의힘에서 말하듯 정권 교체기 마다 반복되는 공영방송의 편파성 논란을 끊어내기 위해선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보수 성향의 KBS노동조합 역시 "국민의힘은 유럽 공영방송사가 왜 수신료를 폐지하자는 논의를 하는지에 대한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면서 "환경 자체가 다른 프랑스 사례를 마치 정답인 것으로 오해하고 이를 한국에 적용하려는 것은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정신승리"라고 일침했다.
수신료 징수 논의 OK…정치적 도구화는 NO
일단 수신료 징수 방식을 공론화할 수는 있으나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주류를 이뤘다. 특히 '정치 편향성'을 이유로 수신료 징수 방식을 변경하겠단 근거는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강원대 한진만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수신료 분리 징수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서 어떤 공영방송의 역할이 필요한지 먼저 봐야 한다"며 "현재 K-콘텐츠에 이르기까지 KBS, MBC 등이 방송 자원, 인력을 키워왔고, 그런 가치와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다른 공적 기능 수행은 배제하고 '정치 편향성'만 문제 삼아 수신료를 건드려서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혀선 안 된다. 오히려 정치권은 KBS의 정치적 독립을 지켜주려 애써야 하지만 늘 정권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짚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연 정책위원장은 "수신료 징수 방식이나 공영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현재 여러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공영방송 제도 전반을 손 보면서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KBS를 압박하는 공격 수단으로 삼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준 낮은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KBS 수신료 납부에 불만을 가진 여론은 엄연히 존재한다. 2019년 수신료 분리 징수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0만 명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KBS 공적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며 수신료를 선택적 납부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왔다.
특히 지난해 기준 46.4%에 달하는 억대 연봉자 비율은 국민적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따라 KBS는 수신료 조정안을 추진하면서 5년 간 인건비 2600억 원 절감 등 조직 슬림화 방안을 내놓았다. 외국 공영방송들과 달리 수신료 외에 광고료, 콘텐츠 재송신료 등이 포함된 재원 구조에 비판도 제기된다. 이 같은 '비호감' 꼬리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교수는 "아직 기회는 있다고 본다. 현실적으론 어려울 수 있지만 광고 등을 포기하고 수신료처럼 공적 재원 의존도를 높여 국민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변화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수신료 위원회 등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어서 현재 시스템을 벗어나 어느 정도의 수신료가 적합한지, 어떻게 수신료를 확보해야 되는 지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김 정책위원장은 KBS를 향해 "분명히 현재 수신료 징수 방식에 불만을 가진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권이 아닌 수신료 납부자인 국민들에게는 '정치적 압박' 외에 다른 메시지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수신료 논의 이전에 공영방송으로서 KBS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단 진단이다.
순천향대 심미선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현재까지도 방송법에 공영방송 KBS 역할에 대한 규정이 없다. 공영방송 역할을 못했다고 하는데 그 '역할'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KBS에 이를 부여하고, 그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부재하다. 이런 기본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민영화까지 갈 수 있는 수신료 분리 징수, 폐지론 논의는 답답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도와 틀을 바꿀 수 있는 정치적 폭탄 발언은 굉장히 위험스럽다. 그렇다면 종편의 정치 편향성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에 비하면 KBS는 그나마 중도적이고, KBS에 보도 기능만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수신료 이전에 다차원, 복합적 관점에서 KBS라는 방송 자원을 살릴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과 공론화가 필요하다. 상업적 이익이 되지 않아 일반 방송사들이 기피하는 영역에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