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발매한 5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 있지(ITZY)의 미니 5집 '체크메이트'(CHECKMATE)의 타이틀곡 '스니커즈'(SNEAKERS)는 남들이 뭐라고 말하든지 나대로 잘 살 것이라고 말하는 노래다. 데뷔곡 '달라달라' 때부터 있지는 일관되게 '자기다움'이라는 키워드를 팀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데뷔 3년 만에 열린 대면 단독 콘서트 겸 월드 투어에서 있지는 '있지다움'을 농축한 무대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7일 오후 5시 2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있지의 첫 번째 월드 투어 '체크메이트'(CHECKMATE) 서울 마지막 날 공연이 열렸다. 체스에서 영감을 얻은 이번 앨범 '체크메이트'의 콘셉트에 맞춰 체스판 앞에 앉은 멤버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등장했고, 리더 예지가 검은 말을 넘어뜨린 후에야 있지가 무대에 올랐다.
첫 곡은 미니 4집 '게스 후'(GUESS WHO) 타이틀곡 '마피아 인 더 모닝'(마.피.아. In the morning)이었다. '배우보다 더 배우/늑대 가지고 노는 여우' 등 다소 시대착오적인 가사로 아쉬움이 나왔던 곡이었으나, 귓속을 파고드는 전자 기타의 날카로운 음이 돋보이는 편곡으로 탈바꿈해 신선함을 더했다. 콘서트 버전의 편곡은 강렬하면서도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같은 앨범 수록곡 '쏘리 낫 쏘리'(Sorry Not Sorry)가 두 번째 곡이었다. 이 곡은 '거침없이 날아올라' '멈추는 법을 몰라' '저기 더 높이 아주 높이 올라가' 등의 가사로 자신들만의 '상승 의지'를 강조하고, 있지가 지향하는 핵심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있지 노 리밋'(ITZY에겐 한계가 없다)이 반복돼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세 곡 무대를 마친 있지는 첫 대면 콘서트를 연 소감을 밝혔다. 예지는 함성을 더 생생하게 듣고 싶다며 인이어를 빼고 귀를 기울였고, 유나는 오늘 공연을 달리기 위해선 '믿지'(MIDZY, 팬덤명)의 함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진은 "오늘 있지가 어떤 팀인지,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저희 단독 콘서트 '체크메이트'로 보여드릴 테니까 신나게 즐겨만 주시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날 비욘드 라이브로 공연을 보는 전 세계 팬들을 향해, 리아는 영어로 "지금은 서울에 있지만 앞으로는 해외로 갈 거니까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좋은 시간 보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가장 최근작인 '체크메이트'와 미니 4집 '게스 후' 수록곡이 세트리스트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왓 아이 원트'(WHAT I WANT) '365' '프리 폴'(Free Fall)까지 초반부에 두 앨범 수록곡이 6곡에 달했다.
있지 앨범 수록곡을 전부 다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는 보통 대중 혹은 관객 입장에서 가장 흥이 났던 구간은 공연 중반부였다. 미니 2집 '잇츠 미'(IT'z ME) 타이틀곡 '워너비'(WANNABE), 데뷔 디지털 싱글 '잇츠 디퍼런트'(IT'Z Different) 타이틀곡 '달라달라', 미니 5집 타이틀곡 '스니커즈'까지 몰아쳐서 보고 듣는 재미가 컸다. 있지라는 그룹을 세상에 알린 곡을 포함해 대표곡, 최신곡이 고루 어우러진 구성이었다. '스니커즈'는 있지의 초기 곡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어 흐름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각이 잘 잡힌 군무로 널리 알려진 있지의 또 다른 강점은 잦은 동선과 대형 변화에도 흐트러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5인' '홀수'라는 팀 특성을 살려 안무를 또렷하게 전달하는 데 방점을 찍었고, 어느 멤버가 가운데(센터)에 서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안무, 보컬, 표정 연기가 탄탄해 안정감을 자랑했다.
이렇듯 단체 곡에서 일체감이 강조됐다면, 솔로 무대는 멤버들의 '개인 취향'이 부각됐다. 첫 번째로는 류진이 핸드 마이크를 들고 도자 캣의 '보스 비치'(Boss B*tch)라는 랩송을 소화했다. 볼드한 의상을 걸치고 돌출까지 나와 무대를 휘젓고는 후반부에서 댄스 브레이크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팀의 메인 보컬인 리아는 자신의 음색과 가창력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는 노래를 골랐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레드'(Red)였다. 듣기 좋은 기타 소리로 집중도를 높인 후 곡이 전개될수록 한층 로킹해지는 스타일로 다양한 매력을 주었다. '리아'(LIA)라는 세 글자가 크게 쓰여 있고 제목에 맞춰 붉은색 조명과 배경을 활용한 연출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첫날 공연에서는 오히려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았는데 오늘이 더 떨린다고 고백한 채령이 선택한 곡은 아리아나 그란데의 '블러드라인'(Bloodline)이었다. 채령은 식탁에 누워 개인 캠코더 앞에서 여러 표정 연기를 능숙하게 선보이는가 하면, 춤과 노래에서도 딱히 긴장한 모습을 노출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개인 무대 주자였던 예지는 두아 리파의 '하터 댄 헬'(Hotter Than Hell)로 보컬에 집중한 무대를 선보였다. 성량과 고음 소화력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무대를 제집처럼 여기는 여유로움, 관객들로부터 들썩이는 흥을 끌어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본 공연 마지막 곡인 '낫 샤이' 후 약 13분 뒤 앙코르가 시작됐다. 무대 중앙에 설치된 반원형 구조물에 오른 있지는 그간 선보인 곡들과 사뭇 다른,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극하는 '도미노'(DOMINO)와 '믿지'(MIDZY) 등 팬 송을 연달아 불렀다.
이날 팬들은 직접 손글씨를 써 있지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고, 이를 모은 영상이 등장했다. '잘하고 있어 얘들아' '내 청춘은 너희야' '믿지라서, 내 가수가 있지라서 자랑스럽고 행복해' '사랑보다 큰 말, 있지로 정의해' '무대 위 빛난 오늘의 있지 평생 있지 않을 거야' '있지 믿지 날자' 등 다양한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여기에 '있지로 물든 믿지의 여름' 현수막 이벤트도 펼쳐져 멤버들은 눈물을 보였다.
팬들의 이벤트를 본 직후 가장 많이 운 유나는 "늘 고마운 마음이 정말 크고, 제가 받는 사랑이 정말 크다 보니까 어떻게 보답해드려야 하지, 어떻게 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드려야 하지 이런 고민을 정말정말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잘하고 있어' 이 한마디가 뜨는데 뭔가 되게 감사하더라. 알아봐 주신 것 같아서"라며 "더 다양하게 행복하게 해 줄 거니까 믿지도 기대하고 나만 따라와"라고 강조했다.
류진은 "저희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무대, 봐 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일이겠나. 우리 믿지가 있어서 저희가 열심히 준비할 수 있고 그거에 대해 보람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서 직접 얼굴 보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너무너무 감사하다. 항상 이만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인가 의심했는데 충분하다고 해 줘서 고맙고 그 이상의 사람이 될 수 있게 저도 노력하겠다"라며 "다음 콘서트 때도, 다음에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도 같이 봤음 좋겠다"라고 바랐다.
리아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는데 가끔은 나는 운이 없나, 나는 되게 불행하구나 잠깐 생각도 했던 것 같은데 콘서트도 하고 믿지들이 꽉꽉 채워주고 우리한테 아까 해 준 말들을 보니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게 너무 미안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믿지들이 더 많이 저를 믿어주고 지지하고 저희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 항상 그 순간을 기억하겠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믿지들 생각하면서 잘 이겨나가 보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리더 예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꿈꿔왔고, 일단 정말 이 콘서트 준비하기까지 정말 한 명 한 명 많은 고생을 해 주셨다"면서 "제가 우리 멤버들 너무너무 사랑하고 믿지도 그렇다. 믿지들 응원 없으면 저희는 이 무대를 설 수 없다. 항상 과감한 도전에 응원해주셔서 좋은 말 해주셔서 너무 고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좋은 모습 더 멋있는 모습 많이 보여줄 자신 있다. 믿지, 믿죠?"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앙코르의 끝은 '잇츠 서머'(IT'z SUMMER)와 '비 인 러브'(Be In Love)로, 이날 있지는 약 2시간 30분가량의 공연을 선사했다. 있지는 오는 10월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시작해 29일 피닉스, 11월 1일 달라스, 3일 슈가랜드, 5일 애틀랜타, 7일 시카고, 10일 보스턴, 13일 뉴욕 등 미국 8개 지역에서 공연한다. 미국 공연 티켓은 전 회 매진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