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초만 해도 '여자 연습생 대방출'이나 '일본 아이돌을 따라가느냐'라는 비아냥 섞인 시선을 받았던 이들은, '지'(Gee)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정상에 올랐고, 현재는 단순히 '2세대 아이돌'이나 '걸그룹'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의미가 더해진 '다시 만난 세계'
소녀시대는 2007년 8월 2일 데뷔 싱글 '다시 만난 세계'(Into The New World)를 발매하고, 5일 SBS '인기가요'에서 정식 데뷔했다.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는 여러 인기곡을 만든 작곡가 켄지의 곡으로 10대들의 순수함과 열정,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밝은 분위기의 팝 댄스곡이었다. 가사에는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 등 벅차오르는 내용을 담았다.
소녀시대는 '다시 만난 세계'로 통일성 있는 파워풀한 안무, 구간마다 달라지는 대형과 동선, 보컬 멤버들의 시원한 고음과 애드리브,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라이브 등 여러 강점을 어필했으나, 발매 당시에 압도적인 히트를 기록하진 못했다. 오히려 '다시 만난 세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인정받은 케이스다.
멤버 티파니는 지난해 '제시의 쇼터뷰'에서 소녀시대를 대표하는 곡은 바로 '다시 만난 세계'라고 꼽았다. 그는 "너무너무 나한테도 소중한 곡이지만 소녀시대를 열게끔, 저희뿐만 아니라 걸그룹들의 시대를 열었다"라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의 곡으로서는 드물게 사회적 의미가 더해지기도 했다. 2016년 여름 이화여대 학생들이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반대 농성 당시 경찰의 무리한 진압 시도에 맞서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부른 것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회자하고 있다. '저항곡'의 성격을 가지게 된 후로 '다시 만난 세계'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2016), 퀴어 퍼레이드(2017~), 태국 반정부 시위(2020), 성신여대 시위(2021) 등 나라와 장소를 막론하고 울려퍼지는 중이다.
메가 히트곡 '지'와 파격으로 받아들여진 '아이 갓 어 보이'
소녀시대의 음악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곡이 바로 '지'(Gee)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가 어쩔 줄 몰라하며 내뱉는 감탄사에서 따온 제목의 이 곡은 상큼발랄하면서도 톡톡 튀는 소녀시대의 매력을 극대화해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다. KBS2 '뮤직뱅크' K파트 9주 연속 1위라는 신기록을 세웠고 엠넷차트와 멜론차트에서도 모두 8주 연속 1위였다.'지'는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뿐 아니라 흰 티와 청바지, 컬러 스키니진 등 무대 의상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녀시대가 노래에 맞춰 뚜렷한 콘셉트를 제시한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주목하게 된 시기도 '지' 이후다. 2013년 4월 '지' 뮤직비디오는 당시 한국 아이돌 그룹 중 최초로 1억 뷰에 도달했다. 국내에서 유튜브 소비가 지금보다는 덜 활발했던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랜디 서 음악평론가는 "소녀시대에게는 '지'가 확실히 큰 분기점이었던 것 같다. 당시 언론에서는 소녀시대의 '지'와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 등을 묶어 '훅송 열풍'이라고 했지만, 훅(귀를 사로잡는 멜로디)만으로 '지'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팬들은 '지'의 훅만이 아니라 노래와 사운드, 안무, 청바지 콘셉트 전체에 열광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제복' '미식축구' '치어리딩' '블랙소시' '본드걸' '수트' 등 변화무쌍한 콘셉트를 앨범 및 음악 활동과 연결한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랜디 서 평론가는 "소녀시대는 매우 콘셉츄얼한 그룹이다. 일단 사람들이 그 콘셉트에 집중하게끔 만들었으니, 진정한 '콘셉트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바라봤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는 '퍼포머'로서의 면모를 짚었다. 그는 "소녀시대는 퍼포먼스 수행력에서 흠결 없는 완벽함을 추구해 깊은 인상을 남긴 팀이다. 팔다리를 쭉쭉 뻗는다든지, 그런 안무의 각도가 맞는 데서 오는 파괴적인 쾌감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소녀시대'(Girls' Generation) '키싱 유'(Kissing You) '오'(Oh!) '런 데빌 런'(Run Devil Run) '훗'(Hoot) '더 보이즈'(The Boys) 등 다채로운 콘셉트가 살아있는 곡으로 인기를 누린 소녀시대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독특한 인상을 남긴 곡은 '아이 갓 어 보이'(I Got A Boy)다.
팝, 레트로, 어반 장르 요소가 섞인 일렉트로닉 댄스곡 '아이 갓 어 보이'는 2~3곡을 하나의 곡으로 합친 것 같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제법 긴 랩 구간이 있다든가,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를 신어 보다 역동적인 춤을 추는 데 집중한다는가 하는 특징도 있었다. '아이 갓 어 보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혼종'이었다. 누군가는 이를 '끔찍한' 것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혁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해외 평단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미국 음악 전문 매체 빌보드는 "지금까지 어느 나라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가장 진보적인 팝 트랙"이라며 "이 노래로 소녀시대는 2013년 팝에 있어 높은 기준 하나를 세웠다"라고 평했다.
미묘 평론가는 "'아이 갓 어 보이'는 K팝의 미학으로서 상당히 '웰메이드'(잘 만들어진) 곡이라고 볼 수 있다. K팝 특유의 양식미를 굉장히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곡을 완성해낼 수 있다는 게 소녀시대라는 팀이 가진 강점이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랜디 서 평론가는 "곡의 구간마다 비트가 다른 게 일반 가요에서 보기 어려운 스타일이었는데, ('아이 갓 어 보이'의 영향으로) 하우스나 퓨처베이스 장르곡 한가운데에 스타일이 전혀 다른 비트를 넣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작법이 유행했고 지금도 그렇다. K팝 흐름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곡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5년 만의 완전체 컴백에 기대 증폭
2007년 9인조로 데뷔했던 소녀시대는 2014년 제시카가 팀을 탈퇴하면서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소속사와 제시카 양쪽 주장이 갈려 탈퇴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기에 팬들의 충격은 더 컸다.그러나 소녀시대는 2015년 8인(태연·써니·티파니·효연·유리·수영·윤아·서현) 완전체로 정규 5집 '라이언 하트'(Lion Heart)를 발매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8년 동안의 활동 중 첫 선공개 싱글 '파티'(Party) 발매, 단독 리얼리티 '채널소시' 론칭, '라이언 하트'와 '유 띵크'(You Think) 더블 타이틀 체제 등 '힘 주고 나온 컴백'이라는 점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라이언 하트'는 음악방송 무대가 공개될 때마다 입소문을 타고 음원 순위도 점차 높아진 소녀시대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다시 만난 세계' '소원을 말해봐' '아이 갓 어 보이' 등 고난도의 안무를 동반하는 그간의 활동곡에서 소녀시대의 키워드가 '잘 맞춰진 각' '군무' '치열함'이었다면, '파티'나 '라이언 하트' 무대의 핵심은 '여유로움'이었다.
소녀시대는 이미 다방면으로 개인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10주년 앨범 음악방송 활동은 단 1주에 그쳤고, 그해 10월 일부 멤버가 재계약을 하지 않아 소속사가 흩어지게 되었다. 배우로 활동 중심축을 옮긴 멤버들도 그룹 활동에 애정과 의지를 꾸준히 보였고, 15주년에 맞춰 일곱 번째 정규앨범 '포에버 원'(FOREVER 1)을 데뷔일인 8월 5일 발매하게 됐다.
15주년이라는 큰 기념일을 이유로 한 '이벤트성'이라고 보기엔 그 움직임이 본격적이다. 디지털 싱글 한두 곡이나 미니앨범이 아닌, 신곡 10곡으로 가득 찬 정규앨범을 발매하기 때문이다. '런 데빌 런'(2010) 이후 12년 만에 이어지는 서사를 담은 신곡 '유 베터 런'(You Better Run)을 수록해,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소녀시대의 음악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히는 대목이다.
랜디 서 평론가는 "SM엔터테인먼트가 소녀시대 프로듀싱을 할 때 늘 각을 잡고 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만족한다. 오랜만에 만난다는 이유로 단지 이벤트에만 초점을 맞춰 정작 음악에는 신경을 안 쓴 사례가 적지 않은데, 소녀시대는 그렇지 않아 흥미롭게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미묘 평론가는 "당대의 K팝 프로덕션 퀄리티에서 가장 플래그십 역할을 한 팀이고, 2세대 아이돌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 중 하나다. 일본 시장에서 K팝 한류가 퍼졌을 때도 크게 기여했고, K팝씬을 견인한 대표주자로 꼽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15주년을 맞은 것, 심지어 (새 앨범으로) 컴백한다는 소식을 듣고 소녀시대는 이제 '선구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다른 회사 소속이면서도 재결성해 활동한다는 것 자체로 소녀시대는 하나의 '레거시'를 만들고 있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