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제주 기자들…박봉·갑질·자괴감 '삼중고'[영상]

[기자실 앞담화]⑧떠나는 제주 기자들 왜?
최근 5년 사이 퇴사한 전직 기자들 인터뷰
"오래 직장을 다녀도 월급 안 오르는 구조"
"업무 강도 세…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쳐"
군대식 위계질서…사적 악용하며 '갑질' 불거져
여기자 유흥주점 데리고 가서 술 따르게 하기도
"자본, 언론사 인수하며…취재 제약 가해"
"질보다는 양 추구…보도자료 기사에만 혈안"

제주경찰청 기자 간담회 모습.
■ 방송 : CBS 라디오 <시사매거진 제주>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17:05~18:00)
■ 방송일시 : 2022년 8월 3일(수) 오후 5시 5분
■ 진행자 : 박혜진 아나운서
■ 대담자 : 제주CBS 고상현 기자, 뉴스제주 이감사 기자
 
◇박혜진> 시사매거진 제주, 이 시간은 <기자실 앞담화>로 함께하는데요. 오늘은 이인 기자와 홍창빈 기자가 아니라 새로운 기자 두 분을 모셨습니다. 제주CBS 사회부 기자인 고상현 기자, 그리고 뉴스제주 이감사 기자 두 분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고상현‧이감사> 안녕하세요. 
 
◇박혜진> 각자 자기소개부터 먼저 해주시죠.
 
◆고상현> 안녕하세요. 제주지역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고상현 기자입니다. 오늘은 뉴스제주 이감사 기자와 함께 <사회부기자실 앞담화>라는 코너로 찾아뵙게 됐습니다. 
 
◆이감사> 안녕하세요. 뉴스제주 이감사 기자라고 합니다. CBS에는 첫 출연이라서 굉장히 떨립니다. 간혹 실수하더라도 청취자 여러분들이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혜진> 네. 저도 기대가 되는데, 지금 청취자분들, 시청자 모든 분들이 어떻게 이 앞담화 풀어주실까 굉장히 기대하시는 거 같습니다. 청취자나 영상을 보시는 분들은 사회부 기자들은 어떻게 일을 할까,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이감사> 제가 먼저 말씀드릴게요. 사회부 기자 그러면 보통 제주도내 주요 사건‧사고 현장을 다 누비고 다녀요. 이를테면, 시청자나 청취자 여러분들이 길을 걷다가 어떤 대형 사고를 목격했다. 그러면 청취자 여러분들은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게 누구일까요? 
 
◇박혜진> 경찰?
 
◆이감사> 경찰뿐만 아니라 소방 당국도 떠오르실 텐데, 그 현장에는 사회부 기자들도 같이 있죠. 사회부는 경찰부터 검찰, 법원, 소방, 집회 현장 등 모든 영역에 다 있다고 보면 돼요. 폭설이나 태풍 현장에도 있고요. 쉽게 말하면, 지붕 있는 곳은 정치부라든지 다른 기자 분들이 있고, 지붕이 없는 공간은 늘 사회부 기자들이 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뉴스제주 이감사 기자.
◇박혜진> 그래요. 고상현 기자는요?
 
◆고상현> 현장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다 보니깐 언론사는 달라도 사회부 기자들끼리는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동지애 같은 게 있습니다. 물론 취재 경쟁도 치열하게 하는데. 저희가 취재하는 내용들이 사회를 바꾸는 경우도 되게 많거든요. 후속 취재를 통해 제도의 취약점을 드러내면서 사회가 개선되는 일이 많습니다. 몸은 고생해도 보람은 가장 큽니다.
 
◇박혜진> 국민들이 가장 많이 보는 기사가 사건 기사들이죠. 늘 현장에 계셔서 의미가 있는 거 같습니다.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오늘은 어떤 앞담화 준비하셨나요.
 
◆고상현> 저희는 첫 주제로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현장에서 함께 고생하던 제주 기자들이 떠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이번 앞담화를 준비하면서 최근 5년 사이에 퇴사한 기자 10여 명을 직접 만나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박혜진> 제주에서 일을 그만두는 기자들이 그렇게 많나요?
 
◆이감사> 네. 실제로도 많더라고요. 제가 제주에서 1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기간 동안 많은 기자들이 그만뒀어요. 그래서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했죠. 제가 내린 잠정 결론은 제주 언론은 복지와 열악한 취재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사회부 기자는 사회적 약자를 취재하고 제도 개선까지 이끌어내고 있지만, 정작 우리 기자들의 인권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게 저희가 느끼는 제주 언론의 현실입니다. 
 
◆고상현> 흔히 언론이 바른 말을 한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갑질도 많습니다. 그리고 지금 처한 현실뿐만 아니라 미래도 암담한 편입니다. 우스개로 인공지능이 기사를 더 잘 쓴다는 말도 나오잖아요. 현실과 이상의 괴리 때문에 동료 기자들이 많이 떠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주CBS 고상현 기자.
◇박혜진> 네. 두 분의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지는데요. 제주 언론 환경에 대해서 하나씩 짚어보면 좋겠어요. 기자들의 복지 문제는 어떤지, 전해주세요.
 
◆이감사> 아까 처음에 제가 제주에서만 1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 기간에만 회사를 무려 네 번이나 옮겼어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너는 붙임성이 없고, 정착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이직을 많이 한 이유는 단 하나거든요. 급여가 너무 적었어요. 실제로 제주에서 처음 언론 생활했을 때 받은 급여가 110만 원이었어요. 지금은 더 받긴 합니다만, 중요한 점은 제가 제주에 내려오기 전에 서울에서 20대 때 받았던 급여와 비교하면 40대인 지금 받는 급여가 훨씬 적어요. 이게 제주 언론의 현실이거든요. 일부 언론사를 제외한 동료기자 대부분이 저와 비슷한 고민거리를 안고 있어요.
 
◆고상현> 저도 직장을 많이 옮겨 다녔는데, 첫 직장이 제주의 한 언론사였어요. 그때 세후 받았던 월급이 108만 원이었어요.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없거든요. 적금 드는 것도 불가능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시간 외 근무 수당을 주는 것도 아니고, 연차도 제대로 못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감사> 근무환경은 열악한데 회사는 '열정'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1년, 2년 반복되면 '현타'가 오는 것이 당연한 수순입니다. 퇴사한 전직 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취재원 보호를 위해 모든 기자들의 음성은 변조 처리했습니다.
 
[녹취 : A 전직 기자] "제주 언론이 워낙 열악한 상황이다. 오래 직장을 다녀도 월급이 오르지 않는 구조다. 결국에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이 중요하지 않나. 그래서 퇴사를…."
 
[녹취 : B 전직 기자] "사회 초년생이고 막 시작하는 단계여서 급여 수준을 잘 몰랐다. 그래서 부당함을 제기할 정도의 시각은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업무 강도에 비해서 수당이나 이런 것도 부족했고 임금도 거의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임금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항상 회사에 나와서 일을 했다. 휴일 없이 일을 했는데 부당했다."
 
◆고상현> 어떤 퇴직 기자는요. 회사가 저임금 등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기자라는 직업의식을 강요하면서 정당화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얘기 들어보시죠.
 
[녹취 : C 전직 기자] "쉬는 날에도 회사 나와서 일을 했다. 직업 사명의식이라는 명분하에 희생을 당연시한다. 삶과 일을 구분 짓지 않는다. 사건 일어나면 당연히 해야 되는 것처럼 되니깐. 쉴 때는 딱 끊고 쉬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박혜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심각한데요. 갑질 문제는 어떤 내용이죠?
 
◆고상현> 제가 한 언론사에서 일할 때인데요. 한 선배가 제일 바쁜 오전 시간대에 제게 '어느 봉사단체에서 김장김치를 담갔는데 그걸 가져오라'고 지시했어요. 오고가면 2시간을 잡아먹어서 사실상 오전 취재를 못하는 상황이었거든요. 또 퇴근 후에 무리하게 자기 약속장소에 데려다 달라고 하거나, 그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선배도 있었어요. 
 
◆이감사> 저 같은 경우는요. 손찌검도 당했어요. 따귀도 맞고 날아오는 재떨이에 머리를 다치기도 했습니다. 심한 욕설도 많이 듣고요. 물론 제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제가 명확하게 느꼈던 감정은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는구나'였습니다.
 
◇박혜진> 50년 전 얘기 같은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니 충격적이네요.
 
◆고상현> 제주도기자협회에서 지난 2020년도에 했던 설문조사 내용인데요. 직장 내 괴롭힘 관련해서 했던 조사 내용입니다. 제주도기자협회 소속 기자 173명 중 72.8%인 126명이 응답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기자는 58.7%였습니다. 절반이 넘는 건데요. 특히 2년차에서 4년차 사이의 막내기자 77.8%가 갑질을 경험했다고 답변했습니다. 
 
◇박혜진> 막내기자 10명 중 8명은 갑질을 당했다는 거네요. 어떤 유형들이 있나요.
 
◆고상현> 취재 업무 외 광고 수주 등 영업 강요가 18.5%로 가장 많았고요. 이어 기사에 지나친 간섭과 취재 내용에 대한 일방적인 개입이 각각 16.2%로 조사됐습니다. 이밖에 직장 안에서 편 가르기 문화 조성이라든지 술자리에 일방적으로 참석하라고 강요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상관의 잦은 욕설도 기자 8.5%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2020년도 제주도기자협회 '제주저널' 설문조사 내용.
◇박혜진> 설문조사에 담기지 않은 갑질 내용도 있었을 거 같은데요.
 
◆고상현> 저희가 만난 한 전직 기자는 여성 신분으로서 고충도 털어놨어요. 유흥주점에 자신을 데리고 가서 취재원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고 같이 춤도 추게 했다는 거예요. 
 
[녹취 : D 전직 기자] "2차, 3차 자리 갈 때 여자들이 나오는 주점에 가서 여기자로서 앉아있었는데 불쾌했다. 수치심 느꼈고. 술자리에 있는 업소 여성분들이 저를 여기자로서 바라보는 시각이나 시선도 굉장히 수치스러웠다.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이감사> 제가 들어도 참 부끄러운 수준인데요. 이밖에도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로 인한 고충도 존재합니다. 계속해서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녹취 : D 전직 기자] "남성 문화에서 여기자는 이래야 돼. 여기자는 참아야 돼. 여기자도 술 잘 먹어야지. 남자들 사이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있어야 돼. 아까 얘기한 주점 같은 경우에도 기자에 남자, 여자가 어디 있어. 기자는 기자지. 이렇게 말을 듣는데, 기자라는 직업이 이게 맞는 건가 회의감을 느끼게 했고."
 
◇박혜진> 저는 분노가 올라오는데요. 어떻게 이 시대에 그것도 언론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슬프기도 하고. 도대체 직장 내 괴롭힘 문제, 왜 생기는 건가요.
 
◆고상현> 저희 언론계가 독특한 조직문화를 갖고 있어요. 굉장히 군대식이거든요. 왜냐하면 사건사고 현장에서 선배들의 지시에 따라서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업무환경 탓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정신을 못 차리면 가령 대형 오보 등 큰 사고가 날 수 있어서 군대식 문화가 자리 잡혀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보통 그런 분위기를 사적으로 악용할 때 불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10년 가까이 일하다 퇴사한 전직 기자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녹취 : E 전직 기자] "그런 위계질서를 겪고 나면 MZ세대는 못 버틸 거라고 생각한다. 언론이 잘 바뀌지 않는다. 안 좋은 관습은 이어간다. IT 기업이나 요새 젊은 기업들을 보면 그런 문화가 전혀 없지 않나. 서로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인데. 하지만 언론은 그런 게 없다. 연차가 얼마 안 된 기자들의 퇴사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박혜진>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에서 불거지는 문제도 있다면서요.
 
◆이감사> 일반적으로 기자를 꿈꾸는 친구들이 도내 언론을 지원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내 기사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 그런데 정작 들어와서는 여러 내부 환경적인 문제의 벽에 부딪치면서 꿈을 져버리게 되거든요, 전직 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시죠.
 
[녹취 : F 전직 기자] "최근 들어서 일간지를 중심으로 방송까지 포함해서 자본이, 특히 건설자본이 들어오고 있다. 이러면서 취재나 기사 작성이나 보도를 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이 따르는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퇴사하게 됐다."
 
[녹취 : G 전직 기자] "보통 질보다는 양을 추구한다. 그래서 보도 자료를 쓰는데 혈안이 돼있는 그런 측면들이 있고. 저도 어느 순간부터 보도 자료만 쓰는데 집중하고…."
 
[녹취 : H 전직 기자] "취재를 못하게 억압을 많이 했다. 저희 언론사의 경우 행정 단신을 많이 쓰게 했다. 영업용 기사만 쓰라는 거였다. 정작 취재 기사는 퇴근해서 쓰라고 하든지, 주말을 이용해서 쓰라고 하든지 이래버리니깐. 일할 맛이 나지 않았다."
 
◆고상현> 녹음을 꺼려했던 한 전직 기자는 퇴사 이유를 '희망이 사라져서'라고 답했습니다. 일하면서 관심 있는 분야가 생겼는데 그쪽 전문 기자가 되고 싶은데. 도저히 회사 여건상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심층 취재를 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매일 지면 채우기 급급한 똑같은 기사들만 썼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렇게도 표현했습니다. '현실은 쳇바퀴 돌 듯 그냥 굴러가야 했다고.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기자가 아니라 일반 회사원으로 살았다고.'
 

◇박혜진> 세상을 바꾸는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언론사 구조상 그렇게 되지 못했던 슬픈 현실을 짚어봤습니다. 마지막으로 각자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해주시죠.
 
◆고상현> 오늘 저희가 전직 기자들의 이야기를 육성으로 전해드렸는데요. 한때 동료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취재할 때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앞에서 전해드린 것처럼 공통되게 열악한 근무환경과 갑질,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라는 문제에 노출돼 있었는데요. 언론이 '사회적 공기'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기자들이 훌륭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앞에서 말씀드린 문제들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감사> 언론사 경영진들이 만일 이 방송을 듣고 계신다면 이 말씀 드리고 싶어요. '만일 여러분들의 자녀가 이런 사회와 이런 현실을 마주했다면 과연 침묵할 수 있으시겠는지. 그리고 무모한 열정만 강조할 수 있으실지.' 한번 생각해보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퇴사한 기자들이 어려운 인터뷰에 응해줬거든요. 비록 지금은 저희 동료가 아닌 제주를 떠나서 다른 꿈을 걷고 있지만, 그들의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박혜진>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두 분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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