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의사 없어 숨진 아산병원 간호사…복지부, 진상조사 착수

지난달 24일 근무 중 뇌출혈…전문의 휴가로 서울대병원으로 전원
정부, 이르면 오늘 사건 조사…"결과 토대로 문제점·개선방안 논의"
경실련 "부실한 응급의료 대응체계 등 구조적 문제…빙산의 일각"

연합뉴스

국내에서 이른바 '빅(Big) 5'로 꼽히는 대형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근무 도중 뇌출혈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책임 소재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정부는 이르면 오늘 중 본격적인 사실관계 파악에 나설 계획이다.
 
4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인 30대 A씨는 지난달 24일 새벽 출근 직후 극심한 두통으로 쓰러졌다. 원내 의료진이 A씨에게 내린 진단은 '뇌출혈'이었다. 의료진은 즉각 응급실에서 혈관 내 색전을 이용해 혈류를 막는 색전술 처치를 했지만, 출혈은 계속됐다.
 
결국 A씨는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됐다. 병원 측은 당시 응급실에 뇌출혈 수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의사가 부재해 전원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수술이 가능한 전문의는 휴가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숨졌다.
 
이를 두고 의료계에서는 국내 굴지의 병원이 응급수술을 할 의사가 없어 간호사를 사망케 한 것은 병원 측의 과실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달 31일 익명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A씨의 동료라고 자신을 밝힌 B씨의 글이 올라왔다. B씨는 "세계 50위 안에 든다고 자랑하는 병원이 응급수술 하나 못 해서 환자를 사망하게 했다"며 "인증평가 항목 중 하나인 직원사고 발생 시 대처방법에 대해 달달 외우고 있으면 뭐하나"라고 성토했다.

대한간호협회 제공
 
그는 "지금껏 국내 최고 병원에서 일하며 무조건 우리 병원을 추천했고,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그 일말의 자부심조차 사라져 버렸고 더 이상 병원의 진료실적, 수술실적, 성과조차 믿을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고 적었다.
 
대한간호협회도 지난 2일 입장문을 내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특히 간호사의 이번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나라 의사 부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워 준, 예견된 중대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아산병원은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본원 응급실에서 발생했던 일과 당일 근무한 당직자의 대처, 응급실 이동 후 서울대병원 전원까지 걸린 시간 등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며 "협회는 환자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해 온 고인의 명예가 온전히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우선 사실관계 파악을 위한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손영래 대변인은 이날 백브리핑에서 "아마 오늘~내일 중 상황 파악을 위해 사실관계를 조사할 예정"이라며 "어떤 상황이었고, (응급처치·전원 등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논란의 핵심인 사건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손 대변인은 관련 질의에 대해 "당장 답변을 드리긴 부적절할 것 같다. 조사를 통해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검토할 예정"이라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점과 개선방안이 논의될 것 같다"고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2차관이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앞서 복지부 이기일 2차관도 지난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상급종합병원이라는 최대 규모 아산병원의 의료환경이 이 지경이라는 게 보건책임자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의 질타에 "저희가 (정확한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답했다.
 
시민사회계도 잇따라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3일 성명서에서 "2700여 병상 규모의 상급종합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서조차 긴급수술을 할 의료진이 없어 타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다는 사실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의사인력 부족으로 국내 최고의 상급종합병원에서조차 원내 직원의 응급수술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병원은 뇌출혈의 발생 배경을 파악해 업무 연관성이 있다면 유가족의 산재신청을 적극 지원하고 위험요인을 없애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동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코로나19로 드러난 부실한 공공의료체계에 이어 부실한 응급의료 대응체계와 부족한 의사인력 등 우리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재확인시켜줬다. 다른 병원과 지방병원의 수준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서울아산병원은 정부의 뇌졸중 적정성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인 1등급을 받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정부로부터 수가 인센티브 등 막대한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며 "병원 측의 변명은 결코 단순 실수로 넘길 사안이 아니며 관리감독 기관인 복지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병원이 대체인력도 확보하지 못할 만큼 적정 의료인력을 채용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면 복지부는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자 처벌과 함께 지원금 환수 등 행정조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다가 중단된 △공공의대 신설 △의대정원 증원 방안 등을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