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신구 조화란 이런 것이구나…연극 '햄릿'

신시컴퍼니 제공
신구 조화란 이런 것이구나.

3시간의 연극이 끝났다. 이어진 커튼콜. 출연배우 16명(권성덕·전무송·박정자·손숙·정동환·김성녀·유인촌·윤석화·손봉숙·길해연·강필석·박지연·박건형·김수현·김명기·이호철)이 등장하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은 모두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박수 소리가 최고 데시벨을 기록한 순간은 10명의 선배 배우가 인사할 때였다. 이 쟁쟁한 배우들을 언제 또 한 무대에서 볼 수 있을까. 쏟아지는 박수는 반 세기 동안 무대를 지켜 온 한국연극사의 산증인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고마움의 표시였다.

연극 '햄릿'은 개막 전부터 화제를 뿌렸다.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만 봐도 "와~" 하는 탄성이 절로 터질 수밖에. 그런데 선배 배우가 맡은 역할은 '햄릿' '오필리어' '레어티즈' 같은 주연이 아니었다. 배우 1·2·3·4, 무덤파기, 유령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 있는 조연·단역을 연기했다.

조연·단역이지만 선배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내뿜는 존재감은 대단했다. 6년 전 '햄릿'에서 햄릿을 연기했던 유인촌은 햄릿의 비정한 숙부 '클로디어스'로 변신해 나쁜 놈의 전형을 얄미울 정도로 잘 표현했다. 극중 클로디어스는 형인 선왕을 독살한 뒤 형수인 '거트루드'(햄릿의 어머니)와 재혼해 왕위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정동환은 팔색조 연기의 대가다웠다. 전작들의 묵직하고 진지한 캐릭터와 달리 감초 격인 모사꾼 '폴로니우스'를 연기해 관객의 웃음을 책임졌다. 극의 처음과 끝을 여닫는 유랑극단 배우들(박정자·손숙·윤석화·손봉숙·길해연)은 극중극 장면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데, 대사는 적지만 관록 넘치는 연기로 관객에게 몰입과 웃음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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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 중 81세로 최연장자인 '유령' 역의 전무송과 '무덤파기2' 역의 권성덕은 존재 자체만으로 감동을 줬다. 권성덕은 6년 전 병환으로 '햄릿' 연습 도중 하차했던 아픔이 있다. 공연이 끝난 후 지팡이를 짚고 커튼콜 무대에 선 그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거투르드' 역의 김성녀는 모정과 권력욕·욕정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후배 배우들(강필석·박지연·박건형·김수현·김명기·이호철)도 선배 배우들 못잖게 호연했다. 특히 '햄릿' 역의 강필석이 광기와 분노를 담아 몰아치는 독백이 압권이었다. 뮤지컬 '썸씽로튼' '광화문연가' '명성황후' '번지점프를 하다' 등 전작들에서 따뜻하고 섬세한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훔쳤던 그 배우가 맞나 싶었다.

'햄릿'은 이해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16년 초연했다. 매진 사례를 이뤘던 그때처럼 이번 시즌도 연일 문전성시다. 지난달 13일 개막한 후 공연팀 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열흘간 공연을 중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배우들은 흔들림 없이 무대를 지키고 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등장인물들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는 '햄릿'은 오랫만에 만나는 대극장 연극이기도 하다. 제작사 신시컴퍼니 박명성 프로듀서가 프로그램 북에 남긴 말처럼 힘들게 팬데믹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연극이, 침체한 대극장 연극이, '햄릿' 공연을 계기로 다시 약동하길 바란다. 손진책이 연출하고 배삼식이 극본을 썼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8월 13일까지.
신시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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