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정전협정체결 69주년을 맞아 실시한 연설에서 새삼 6.25전쟁의 국제적 성격을 강조했다.
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 승리한 조국해방전쟁이라는 확고한 관점 속에서도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전쟁의 국제적 성격도 부각시키는 분위기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은 우리 공화국에 있어서 영토와 인민을 사수하기 위한 생사존망의 조국방위전이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진영과 제국주의 진영으로 대립된 두 극간의 처음으로 되는 격렬한 대결전"이라고 말했다.
"미제가 저들의 군대만이 아닌 방대한 추종국가 군대를 조선전쟁에 투입하였다는 그 사실 자체가 조선 전쟁의 치열성과 국제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창건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국가의 청소한 군대가 지구상의 제일 포악한 미 제국주의 침략군대와 그 추종무리들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너무도 중과부적이었다"고 부연했다.
북한이 중국의 참전과 소련의 지원 등 6.25전쟁의 국제적 성격을 과거에 부인했던 것은 아니지만, 올해는 이례적으로 '진영 간의 대결전'이라는 점을 보다 부각시키는 셈이다.
여기에는 아무래도 올 들어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더욱 치열해지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북한, 중국, 러시아의 진영을 강조한 것은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연설에서 한국과 미국을 향한 강도 높은 위협 발언을 했다.
김 위원장은 먼저 대북 선제타격을 거론하며 "위험한 시도는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것이며 윤석열 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미국을 향해서는 "우리 무력의 일상적인 모든 행동들을 도발로, 위협으로 오도하고 있는 미국이 우리 국가의 안전을 엄중히 위협하는 대규모 합동 군사연습들을 뻐젓이 벌려놓고 있는 이중적 행태는 말 그대로 강도적인 것이며 이는 조미 관계를 더 이상 되돌리기 힘든 한계점에로, 격돌상태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미를 향한 이런 위협은 다음 달 한미연합훈련 이후 도발을 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는 과정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8월 한미연합훈련 이후 북한이 ICBM 실거리 발사로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인하거나, 정찰위성 발사, 또는 새롭게 건조된 신형 잠수함(3000톤급)에서 북극성 계열의 SLBM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여정 부부장이 지난 2020년 6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과정에서 이미 시사한 대로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이번에 실행한다면 접경 지역의 국지전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쥐고 있는 가장 큰 카드는 역시 7차 핵실험이다. 다만 북한이 실제 7차 핵실험을 감행할지, 한다면 언제 할지에 대해서는 관측이 엇갈린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핵실험에 반대하는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북한은 중국공산당 20차 대회 이후 핵실험 실시를 유력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위협에 따라 북한의 ICBM 실거리 발사, 정찰위성 발사, SLBM 발사, 남북군사합의 파기, 7차 핵실험이 순차적으로 현실화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극도로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동북아의 긴장 속에서 북한이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역시 중국과 러시아 진영이다.
정대진 한라대 교수는 "북한이 6.25 전쟁을 국제전으로 명확히 규정한 것은 향후 각종 무력시위와 7차 핵실험 등을 앞두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포석도 엿 보인다"며, "북한의 행동이 독자적인 행동에 그치지 않고 미국에 대항해 중국과 러시아와 함께 치러나가야 할 대결국면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의도"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정전협정 체결 69주년을 맞아 28일 북중 우의탑에 헌화하며 양국의 친선관계를 강조하는 등 중국에 공을 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김 위원장이 북중 우의탑 상단에 올라가 바람에 나부끼는 화환의 댕기를 손수 바로 잡는 사진을 게재했는데, 김 위원장이 그만큼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연일 외무성을 통해 러시아를 지지하고 미국을 비난하는 입장을 밝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