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단독]8500억 빚 탕감 후 100억대 주식투자…몰락한 재벌의 수상한 부활 ②[단독]'반지하 월세' 회장님, 8천억 탕감후 유엔빌리지로 이사 ③[단독]'8천억 탕감후 백억 주식투자' 회장, 가족 명의 부동산·법인 수두룩 ④[단독]갑을그룹 몰락…노동자는 지옥 vs 8천억 탕감받은 회장님은 호화 (계속) |
1990년대 초반 그룹 연매출 1조원 이상, 재계 순위 50위권에 오르며 '신흥 재벌'로 불리다가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사태로 몰락한 갑을그룹 박창호 전 회장이 그룹 도산 직전 자산을 은닉해 둔 정황이 CBS노컷뉴스 단독 보도로 드러난 가운데, 이와 반대로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은 그룹사 소속 노동자들은 이후에도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박 전 회장은 그룹의 위기 징후가 감지되자 가족에게 부동산을 증여하거나 가족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하고 법인을 설립하는 등 개인 자산을 빼돌린 뒤, 이를 통해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노동자들은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여러 기업을 전전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로 지내올 수밖에 없었다. 경영에는 관여한 바가 없는데, 회사가 망한 책임은 오롯이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짐이 됐던 셈이다.
특히 당시 노동자들은 "회사가 어렵다"는 말에 수개월간 휴업에 동의하는 등 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통 분담을 감내했다. 반면 당시 그룹 내 계열사 대표를 맡고 있던 박 전 회장의 동생은 폐업 직전 본인의 퇴직금만 수령하고 잠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회장은 그룹이 망하며 연대보증으로 발생한 수천억 채무가 있었는데, 이마저도 2012년 회생 제도를 통해 약 8500억원을 탕감 받았다. 이후 백억대 주식 투자에 나서 현재 코스닥 상장사 정원엔시스의 최대주주 자리까지 오른 상황이다.
"회사 살리기 위해 고통 감내한 건 노동자…대표는 퇴직금 수령 후 잠적"
"기가 막히네요.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지만 망한 게 아니었고, 망한 건 노동자의 삶 뿐이었네요"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만난 김소연 운영위원장은 취재진으로부터 갑을그룹 박창호 전 회장의 현재 소식을 접하자 말문을 막혀 했다. 김 위원장은 20여년 전 몰락한 갑을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갑을전자'의 노동자였다. 92년 갑을전자에 입사해 노조위원장까지 맡았으며, 2000년 회사가 폐업을 신고하고 파산할 때까지 사측과 교섭을 벌였던 마지막 노조위원장이다.
갑을전자는 초기 전문경영인(CEO) 체제로 운영됐는데, 중간에 그룹 박창호 회장의 동생 박모씨가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당시 갑을전자의 현장 노동자는 1천명가량으로, 초기 셋톱박스를 만드는데 주력하다가 점차 컴퓨터 부품까지 만드는 회사로 사업을 확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97년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며 그룹 전체가 몰락할 때 함께 사라졌다.
김 위원장은 "회사는 늘 어렵다고 했었다. 잘 될 때도 어렵다고 했으니까. 처음에는 별로 긴장도 안 하고 그 핑계로 임금을 깎고 단체협약도 후퇴시키려고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회사는 자본잠식에 빠졌고, 결국 화의 신청을 했다고 한다.
'화의'란 기업이 파산 위험에 직면했을 때 법원의 중재를 받아 채권자들과 채무 변제 협정을 체결해 파산을 피하는 제도이다. 법정관리와는 달리 기존 경영진이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경영진이 도산 상태를 일시적으로 회피하고 경영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 제도는 2006년 폐지된다.
화의가 받아들여져 박 대표가 계속 운영을 하고 있을 때, 박 대표는 돌연 '폐업 신청을 하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화의 중 폐업 신고를 한다는 건 결국 파산으로 간다는 의미였다. 노동자들의 반대에 회사는 "그럼 휴업을 해달라"고 호소한다. 휴업을 하면 기본급의 70~80%만 지급된다. 노동자들은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에 총 1년간의 휴업에 동의했다.
그런데 휴업을 한 지 약 7~8개월쯤 박 대표는 갑자기 폐업 신고를 해버린다. 김 위원장은 "회사를 믿고 휴업까지 하면서 기다려줬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며 반대했지만 결국 폐업신고를 해버렸더라"며 "매우 황당한 상황이어서 저희가 회사에 찾아가 재무제표를 찾아봤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가 폐업 신고 직전 본인 퇴직금을 다 챙겨간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 사실을 알고 너무 분노했다. 회사 자산을 확인해 봤는데 전부 담보가 잡혀 있어서 저희들이 건질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오죽하면 회사 부지에 있는 나무를 캐다가 팔려고 알아보기까지 했다. 싹 다 캐서 팔면 3천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노동자들은 절박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갑을전자 노조는 투쟁을 결의하고 그룹 본사로 찾아가 농성을 시작한다. 대부분이 근속 10년이 넘었는데 퇴직금을 전혀 못 받은 데다가, 긴 시간 휴업을 하며 생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155일간의 긴 농성이 진행됐고, 마침내 합의를 하게 된다. 다만 회사가 파산 절차를 밟는 등 시간이 소요돼 실제 합의 이행은 1년도 더 지난 후에야 이뤄졌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그때만 해도 IMF 전이기 때문에 완전고용 시대였다. 강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건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IMF가 터지고 회사는 어려워졌다고 하고 휴업을 하자고 하더라"며 "경영상태나 이런 것에 대해서 노동자들은 자세하게 알 수가 없다. 관여한 것도 없고 회사가 발표한 거만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노동자들이 휴업에 동의도 하고 했는데 대표이사의 폐업신고 하나로 회사는 결국 파산으로 가고,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155일간의 투쟁도 노동자들에게는 매우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기업이 잘 되면 과실은 오너에게, 망하면 책임은 노동자가"
계열사가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을 때쯤 갑을그룹 박창호 전 회장도 위기 징후를 감지했다. 1995년 1월 '1994 회계연도' 가결산 마감 결과 그룹의 핵심 회사 '(주)갑을'이 당기순이익 마이너스(-) 126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이익이 실현된 것처럼 재무제표를 작성, 공시하라는 '분식회계'를 지시했고, 이는 약 3년 동안 계속됐다.
동시에 박 전 회장은 개인 재산을 빼돌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98년 전후로 부인 최모씨와 세 딸에게 본인 명의 부동산을 증여했고, 가족 명의의 부동산과 법인이 새롭게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관련 기사 : [단독]'8천억 탕감후 백억 주식투자' 회장, 가족 명의 부동산·법인 수두룩)
결국 (주)갑을은 98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업체로 선정됐지만 회생 불가능 판단이 내려져 2003년 회사정리절차를 밟게 된다. 당시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주)갑을의 채무는 약 9175억원에 달했는데, 회사정리절차를 밟으며 대부분 면책됐다.
연대보증을 섰던 박 전 회장에게 수천억 채무에 대한 책임이 있었지만 그는 채무를 갚지 않고 버틴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박 전 회장은 빼돌려 둔 돈으로 호화생활을 계속해서 누려왔다. 부인 명의로 경기도 양평에 지어 놓은 별장에서 생활하는가 하면, 본인 명의 골프회원권 3개(총 시가 약 4억7700만원)와 콘도회원권(시가 약 2100만원), 호텔 피트니스회원권(시가 약 470만원) 등을 소유하며 호화생활을 유지했다. 막내딸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2년 "채무가 자산에 비해 너무 과다하다"고 호소하며 회생 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박 전 회장은 "반지하에서 월세 50만원을 내고 생활하고 있으며 본인 재산은 골프회원권 등을 포함 9억원에 불과하다"고 호소했다. (※관련 기사 : [단독]'반지하 월세' 회장님, 8천억 탕감후 유엔빌리지로 이사)
이에 법원은 총 채무 약 8547억원 중 약 8523억원을 탕감하고, 현금으로 약 24억원만 변제하라고 결정했다. 7년에 걸쳐 갚겠다고 했던 박 전 회장은 조기변제를 신청, 단 한 달 만에 약 24억원을 모두 변제한다. 박 전 회장은 회생 종결 결정이 나고 일주일 후 시가 60억짜리 유엔빌리지 연립주택으로 주소지를 옮긴다.
이후 부인 명의로 만들어뒀던 법인들을 이용해 백억대 주식 투자에 나섰고, 현재 코스닥 상장사 정원엔시스의 지분 약 717만주(시가 약 135억원)를 확보해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 상황이다. (※관련 기사 : [단독]8500억 빚 탕감 후 100억대 주식투자…몰락한 재벌의 수상한 부활)
반면 노동자들은 갑을그룹의 몰락 이후 여러 기업을 전전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대부분 다른 회사에 정규직 신입으로 입사하기에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상황이었던 데다가, IMF 이후 파견법 등이 생기면서 기업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 일 때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그룹 전체 노동자만 1만명이 넘었다.
김 위원장은 "저만 하더라도 갑을전자 다닐 때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단 몇 천원이라도 적금이라는 걸 했다. 이후의 삶이 있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아무도 그걸 상상하지 못한다. 어떻게 적금을 하나. 내 고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라며 "예전엔 근속을 하면 근속 수당도 있고, 호봉도 올라가고 그랬는데 비정규직인 지금은 10년이 지나나 이제 막 입사했나 임금이 최저임금으로 똑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회사가 돈을 벌어 왔는데, 결국 노동자의 삶만 파괴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것"이라며 "IMF가 터지고 '나라를 살려야 한다', '노동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파견법 등을 만들었는데, 정작 IMF는 3년 만에 졸업했지만 노동자들은 더 힘겨운 시대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이 흥할 때 많은 이익은 다 기업주가 가져가지만, 망할 때는 경영에는 관여도 못했던 노동자들에게 그 책임이 전가된다"며 "기업주가 돈을 쉽게 빼돌리거나 가족들에게 은닉시켜서 그들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잘 살게 하는 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라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잡히지 않으면 우리 사회 불평등은 계속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공소시효 문제로 형사적 처벌을 못한다면 사회적으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김 위원장은 갑을전자 파산 이후 다른 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입사했고, 노동 운동에 매진하게 된다. 그는 "그때 그렇게 갑을전자가 망하고 쫓겨나지만 않았어도 지금은 좀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한다.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했을 수도 있는, 그런 삶"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