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 활성화 어디로? 은행 '임대업'으로 전락한 평택항

[항만, 부동산 투기 놀이터 되다⑩]
항만·은행·임대업, 어색한 3박자
항만 개발하랬더니 팔아넘긴 땅…무관한 은행만 수익
하나은행 "신탁 사업 일환…은행 소유 아냐"
전문가 "항만 인근서 은행 임대업? 본 적 없어"

▶ 글 싣는 순서
① '나라 땅도 내 땅'…항만배후부지 손에 넣은 재벌가
② '350억 쓰고 1억5천만원 돌려받아'…민간에 다 퍼준 항만 개발
③ '평택항 특혜'의 핵심 키워드…규제 뚫은 '부대사업'
④ '과실? 묵인?' 알짜 배후부지 '개인소유권' 내준 평택시
⑤ 주차장·공터…평택항 배후부지엔 항만이 없다?
⑥ '투기세력 먹잇감' 된 평택항 배후부지…'비밀계약' 파문
⑦ 평택항 배후부지 비밀계약서에 등장한 '현대家 정일선'
⑧ '일부러 손해?' 평택항 배후부지, 수상한 '소유권 바꿔치기'
⑨ 평택항서 수익률 900% 올린 '사모님들'…해피아 연루 의혹
⑩ 항만 활성화 어디로? 은행 '임대업'으로 전락한 평택항
(계속)

하나은행이 신탁 사업을 하고 있는 평택항 동부두 배후부지 B구역과 대형 물류센터. 박철웅 PD

항만물류업 활성화를 위해 조성된 평택·당진항 배후부지에서 항만과는 무관한 은행이 창고건물을 관리하면서 임대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법상 은행은 사무실 등 업무와 관련된 부동산 외에는 소유해선 안 되지만, 해당 건물을 신탁업 형태로 위탁받아 전세 수익을 내고 있다.

항만·은행·임대업, 어색한 3박자


2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하나은행은 2020년 1월 페이퍼컴퍼니 A사로부터 평택·당진항 배후부지(B구역)와 이 부지에 있는 창고건물의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PFV는 부동산 개발 등을 위해 투자자들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다.

3만6천여㎡ 규모 부지에 지상 10층 높이로 지어진 건물은, 현재 대형 유통물류 업체의 물류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은행은 신탁 사업의 하나로 해당 건물을 운영하고 있다. 신탁은 고객으로부터 재산 등을 위탁받아 운영·관리하면서 수익을 올리는 금융상품이다. 페이퍼컴퍼니 A사가 해당 건물의 소유권을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인 B사로 넘겼고, B사가 다시 하나은행에 운영관리를 위탁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현재 대형 유통업체에 전세를 내주고 얻는 대금은 22억원 상당이다.

평택항 신컨테이너터미널 동부두 제8정문 모습. 박철웅 PD

문제는 원칙상 은행은 부동산 임대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은행법상 은행은 영업소나 연수시설, 복리후생시설 등 업무용 부동산 외에는 소유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해당 부지 등기상 최종 소유자로 등록돼 있다.

등기뿐 아니라 실제로도 소유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은행에 창고건물을 위탁 맡긴 B사는 서류 한 장으로 만들어진 페이퍼컴퍼니다. 즉 현장에서 건물을 관리 운영할 '사람'이 없다.

반면 하나은행은 신탁 사업을 통해 부지와 건물의 전세 대금 등을 관리하며 실질적인 소유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해운항만업 발전을 위해 조성된 배후부지에서 정작 항만과는 무관한 금융기관이 부동산 수익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항만 개발하랬더니 팔아넘긴 땅…무관한 은행만 수익


해당 부지의 소유권이 하나은행으로 넘어가는 과정도 석연치 않다. 최초 수분양자들은 300%가 넘는 수익을 얻은 뒤 땅을 팔아넘겼고, 당초 사업 취지와는 무관한 업체들이 땅을 소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평택당진항 배후부지 B구역의 소유권 이전 현황.

해양수산부는 2006년 평택당진항 동부두 배후부지(A·B·C구역) 사업을 고시했다. 항만물류 법인이 포함된 컨소시엄 형태로만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목표는 동북아 물류거점 기지 구축이었다.

이에 부두 운영사인 ㈜동방과 두우해운·남성해운·범주해운·태영상선 등 선사 4곳이 해당 부지(B구역)를 낙찰받았다. 분양가는 58억원이었다.

하지만 이 업체들은 준공 7년 뒤인 2017년 해당 부지를 페이퍼컴퍼니인 A사에 198억원에 넘겼다. 이 땅의 소유권은 2020년 다시 또다른 페이퍼컴퍼니인 B사를 거쳐 하나은행으로 넘어가는데, 건물까지 포함된 매매액은 1970억원에 달한다.

평택당진항을 개발하겠다고 뭉친 컨소시엄은 333%의 수익률을 챙긴 뒤 페이퍼컴퍼니에 땅을 팔아치웠고, 이 땅은 다시 항만과는 무관한 금융기관 소유로 넘어간 것이다.


하나은행 "은행 소유 건물 아냐…신탁 사업"


하나은행 측은 해당 건물은 은행 소유가 아니며, 신탁 사업을 수행하는 것뿐이라고 논란에 선을 그었다. 신탁 사업의 하나로 해당 건물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은행 수탁부가 신탁형 사업자로 등록돼 있다"며 "부지와 건물 소유권은 B사에 있고, 은행은 해당 상품을 관리해 수수료를 벌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때문에 '은행은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다'는 은행법에도 위배되지 않는다"며 "자본시장법에 따른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즉 부동산 임대업이 은행 본래 업무는 아니지만, 자본시장법이 허용한 신탁사업을 허용하기 때문에 위법은 없다는 취지다.


전문가 "항만 인근서 은행 임대업? 본 적 없어"


그러나 항만 전문가들은 양도·양수의 허점을 노린 꼼수라고 지적했다.

한국해양대 정영석 해사법정학부 교수는 "(이런 사례는) 없다고 봐야 한다"며 "항만 관련 부지는 정해진 용도가 있고, 항만 배후부지라면 항만이나 물류산업 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금융기관이 전세금 등 임대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건 항만과는 관련이 없고, 본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최근 법 개정 이후 부지 양도양수가 가능해졌는데, 이 부분을 악용했다고 봐야 한다"며 "관리 주체인 해수부도 용도와 맞지 않는 사업이라면 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하는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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