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겨냥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며 비판한 사실이 공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며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특히, 이 대표 징계 과정에서 '윤심(尹心)' 개입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대통령-與원톱, 이준석 비판 사적대화 공개된 초유의 사태
국회 사진기자단에 따르면 26일 오후 4시쯤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리고 있던 대정부질문에 참석한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과 텔레그램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된 권 대표의 휴대전화에는 '대통령 윤석열'이라는 발신자 명의로 "우리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왔다. 권 대표는 이에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대통령과의 사적 대화, 그것도 대통령이 집권여당 대표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비판한 내용이 담긴 메시지가 고스란히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일이란 점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다.
특히,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이 제기됐다는 이유로 집권여당 당 대표의 당원권을 정지 시키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윤심'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컸다는 점에서 관련 논란이 다시금 증폭되고 있다.
野 "뒤에서 당권싸움 진두지휘, 징계 관여 여부 밝혀라"
당장 더불어민주당은 '당무 개입'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취재진과 만나 "그동안 당내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연거푸 말했는데 오늘 주고받은 문자를 보니 실제 이준석 대표를 징계하고 내치는데 배후역할을 맡지 않으셨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면서 "정쟁을 부추기고 갈등을 키우는데 대통령이 중심에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오섭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걱정은 안중에도 없이 뒤에서 몰래 당권싸움을 진두지휘했다는 말인가"라며 "윤 대통령은 이준석 대표 징계에 관여했는지 분명히 밝히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당권주자인 박용진 의원도 "대통령이 하라는 국정은 관심없고 메시지로 여당 대표 상대로 내부 총질 운운하며 좌표 찍기나 하고 있었단 말인가"라며 "권성동 원내대표, 사실은 집권세력의 위선을 폭로하는 국민요정이었다"라고 비꼬았다.
앞선 윤 대통령은 이 대표 징계가 확정된 뒤 "저도 국민의힘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다"면서도 "대통령으로서 당무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고 당이 (이 사태를) 수습하고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당으로 나아가는 데 대통령이 거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거리를 뒀다.
與 내부에서도 비판 "윤핵관 말고 소통이 되긴 하나"
야당 뿐만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지만 대통령의 속마음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 아니냐"라며 반문한 뒤 "당무 관여 안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되지 않는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더 나아가 "우리당도 잘 하네요"라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대통령이 각계각층 인사들을 만나 여론을 잘 듣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면서 "경찰국 사안도 그렇고, 정치권에서도 윤핵관말고는 소통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또 다른 의원은 "대통령과 여당 대표, 그들 표현으로는 친구끼리 정치를 사유화 시키고 품격을 떨어트리는 해프닝"이라며 "권력자가 되면서 서로 간의 행위를 더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메시지를 보낸 4시까지 대정부질문 내용을 보면 주로 야당과 노골적으로 티격태격한 내용들이 많았는데 '이런 걸 대통령이 좋아하는 구나'라고 여당 의원들이 느껴지지 않겠냐"라고 반문했다.
또, 김웅 의원은 이날 공개적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준석 대표가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과 함께 유세를 하는 사진, 그리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후보들과 유세를 하는 사진과 함께 '내부총질'이라고 쓴 게시물을 올리며 우회적으로 윤 대통령을 비판했다.
권성동 '사과문', 대통령실 '침묵', 이준석 '대응 자제'
이처럼 파장이 커지자 메시지 공개의 책임이 있는 권성동 대표가 나서 반성문을 썼다. 권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유를 막론하고 당원동지들과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경위와 관련해서는 "당 대표 직무대행까지 맡으며 원구성에 매진해온 저를 위로하면서 고마운 마음도 전하려 일부에서 회자되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오랜 대선기간 함께 해오며 이준석 당대표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저의 부주의로 대통령과의 사적인 대화 내용이 노출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전적으로 저의 잘못"이라며 "다시 한번 국민과 당원동지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선배동료 의원들께도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또, 당원권 정지 상태로 전국을 돌며 당원들을 만나고 있는 이준석 대표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대표를 향한 윤 대통령의 비판 메시지만으로 실제 이 대표 중징계 과정에서 윤심이 작용했다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 대표의 돌발행동으로 윤 대통령이 수차례 어려움에 처했고, 이후 이 대표와 소위 '윤핵관'과의 관계가 악화됐다는 점, 그리고 의혹 제기만으로 집권여당의 당대표에게 중징계를 내리는 결정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는 점 등에서 윤심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