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단독]8500억 빚 탕감 후 100억대 주식투자…몰락한 재벌의 수상한 부활 ②[단독]'반지하 월세 50만' 8500억 탕감 직후 60억 유엔빌리지로 (계속) |
10년 전 회생을 통해 채무 약 8500억원을 탕감 받은 갑을그룹 박창호 전 회장이 그 직후부터 수억원대 지분 구입을 시작해 100억원이 넘는 주식 투자로 현재 한 코스닥 상장사의 최대주주가 된 사실이 CBS노컷뉴스 단독 보도로 드러난 가운데, 박 전 회장이 회생 전 수천억 채무가 있는 상황에서도 '호화생활'을 이어 간 정황이 포착됐다.
약 20년 전 갑을그룹이 IMF 사태 여파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한창일 때 북한강변에 부인 명의로 200평 넘는 땅을 사 단독주택 별장을 짓는가 하면, 부인과 딸 명의로 서초동과 한남동 등의 부동산을 구입하기도 했다. 또 본인 명의로 수억원대 골프 회원권과 콘도 회원권, 호텔 피트니스 회원권을 소유해 온 데다가 막내딸은 미국으로 유학까지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회생을 받을 때는 법원에 "월 50만원 반지하에 거주하고 있다"며 호소했는데, 회생을 받자마자 일주일 만에 가족 명의의 수십억원대 한남동 유엔빌리지 최고급 빌라로 주소지를 옮긴 것으로 파악됐다. 회생을 받기 위해 위장 전입까지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반지하 월세 50만원 거주중" 호소하며 8500억 탕감…일주일 뒤 수십억 유엔빌리지로 이전
25일 CBS노컷뉴스 취재와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실 자료를 종합하면 갑을그룹 박창호 전 회장은 2011년 7월 수원지법에 회생을 신청, 2011년 9월 9일 회생개시 결정을 받았다. 당시 박 전 회장은 "채무가 자산에 비해 너무 과다하다"고 호소하며 빚을 탕감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회장이 신고한 본인 자산은 약 9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법원은 2012년 3월 12일 총 채무 약 8547억원 중 약 8523억원을 면제하고, 약 24억원에 대해서만 변제하라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박 전 회장은 조기변제를 신청해 약 한 달 만에 24억원을 모두 갚았고, 2012년 5월 4일 회생절차 종결 결정을 받았다.
문제는 취재진이 확보한 당시 회생계획안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재판부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빌라 반지하에서 월세 50만원을 내고 거주하고 있다"고 호소했는데, 회생이 끝난 지 일주일 만인 2012년 5월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위치한 한 연립주택으로 주소지를 옮겼다는 점이다.
해당 주택은 전용면적이 약 73평으로 현재 약 60억원 정도에 거래되는 고급 빌라로 알려졌다. 명의는 박 전 회장의 부인 최모씨와 둘째딸 박모씨로 돼 있는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2007년 약 32억 5천만원에 구매한 것으로 나온다. 박 전 회장이 회생을 받기 위해 '위장 전입'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회생의 경우 각 지방법원별로 채무자의 재산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이냐가 다르다. 일부 법원은 부인 명의 재산의 절반까지 채무자의 재산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일부는 부부 재산을 별도로 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박 전 회장이 이를 악용해 서울이 아닌 경기 지역으로 주소지를 옮긴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박 전 회장이 회생 결정을 받은 당시인 2012년 수원지법이 어떤 원칙으로 회생 제도를 운용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박 전 회장이 가족 명의로 재산을 돌려놨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심사하지 않은 듯 보인다. 박 전 회장이 수천억 채무가 있는 상황에서도 호화생활을 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수천억 안 갚고…수억대 골프회원권, 별장 호화생활, 막내딸은 미국유학
박 전 회장의 최초 채무 원금은 약 2484억원 규모였다. 대부분 갑을그룹이 금융기관들로부터 자금을 차입할 때 연대보증을 섰기 때문에 발생한 채무다. 이후 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고, 2012년 개인 회생 신청 당시 갚아야 할 채무는 약 8547억원까지 늘어났다.
연대보증의 경우 주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하면 연대보증인은 추가로 채무를 변제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주채무자인 법인들이 채무를 제대로 변제하지 않고 회사정리 등으로 사라질 경우 채무는 그대로 연대보증인에게 전가된다. 법인은 회사정리로 채무를 면책 받아 그 '책임'만 사라질 뿐, 채무는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그룹의 핵심사였던 법인 '(주)갑을'의 경우 회사정리 절차 당시 채무가 약 9175억원에 달했는데, 대부분 제대로 갚지 않고 면책 받았다. 이외에도 박 전 회장은 (주)갑을금속, (주)영남일보, 갑을개발(주), 신한견직(주) 등 여러 계열사의 연대보증을 섰었다.
이들 법인들이 회사정리절차가 종결되거나 파산된 시점은 2005~2009년쯤으로 채무 이행 책임은 박 전 회장에게 전가됐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2012년 회생을 받기 전까지 갚지 않고 버틴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박 전 회장은 부인 명의로 경기도 양평에 지어 놓은 별장에서 생활하는가 하면, 본인 명의 골프회원권 3개(총 시가 약 4억7700만원)와 콘도회원권(시가 약 2100만원), 호텔 피트니스회원권(약 470만원) 등을 소유하며 호화생활을 유지했다.
최근 취재진이 직접 찾은 박 전 회장 일가의 경기도 양평 별장은 한 마디로 '요새'와 같았다. 북한강 바로 앞 툭 튀어나온 육지 끝자락에 위치한 별장은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육로로 접근하는 길은 하나뿐이었는데, 이마저도 철창으로 막아둬 그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만 진입이 가능했다. 바로 옆집은 현대家 정몽규 회장 소유의 별장이다.
배를 타고 강 쪽으로 접근해 살펴본 결과 해당 별장에는 개인 선착장도 있었다. 개인이 선착장을 설치하는 것은 불법으로,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듯 폐쇄된 것으로 보였다. 인근 주민에 따르면 박 전 회장 일가 사람들이 과거 해당 선착장을 통해 강으로 나와 카누 등 개인배를 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박 전 회장의 막내딸이 미국의 한 유명 대학교에 유학을 다녀온 사실도 확인됐다. 해당 대학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사립 종합대학교로 180년 이상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학부생 기준 학비만 연간 약 7천만원이 넘는 곳이다. 박 전 회장의 막내딸은 2009년 5월부터 12월까지 약 7개월간 다니고, 그해 학사 졸업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창호 측 "자금 출처 모두 조사 받았다…정원엔시스가 허위 공시" 주장
앞서 CBS노컷뉴스는 전날 단독 보도(※관련 기사 : [단독]8500억 빚 탕감 후 100억대 주식투자…몰락한 재벌의 수상한 부활)를 통해 박 전 회장이 2012년 회생을 통해 채무 약 8500억원을 탕감 받은 이후 100억대 주식 투자에 나선 사실을 근거로 '자산 은닉'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회장 측은 "박 전 회장이 회생 이후 주식을 구입한 자금의 출처에 대해서는 검찰과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의 조사를 모두 받았고 해당 기관에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또 박 전 회장이 현재 정원엔시스의 최대주주가 됐다는 보도 내용에 대해 "박 전 회장은 현재 정원엔시스의 실질적인 최대주주가 아니다"라며 "정원엔시스 측에서 박 전 회장을 최대주주로 만들기 위해 허위 공시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박 전 회장 측은 이 같은 주장들을 입증할 자료의 요청에 대해선 거절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