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재유행이 당초 예상보다 빠른 여름철로 바짝 당겨지면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4주째 '더블링' 현상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자발적 방역수칙 준수 등 국민들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전(前) 정부와 차별화된 방역정책을 선포하는 구호였던 '과학 방역'의 실체는 알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재유행에도 거리두기 없고 '자율 방역'"…文 정부 레토릭 답습
재확산 이후 신규 확진자는 7만 6천여 명까지 올라갔지만, 정부는 방역정책 목표가 어디까지나 전체 모수(母數)를 줄이는 것보다 위중증·사망 최소화에 있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19일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통제 중심의 국가 주도의 방역은 지속 가능하지 못하고, 또 우리가 지향할 목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정부는 방역상황 안정화와 함께 국민 일상의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이기일 제1총괄조정관 역시 20일 "거리두기만으로는 전파가 빠른 변이 확산을 완전하게 통제하기는 어렵다"며 "일상회복을 지속하면서 현 유행을 조속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자발적으로 거리두기를 준수하는 것이 보다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밤 9~10시 또는 자정 이후 영업을 금했던 다중시설의 영업제한, 만남 인원의 상한선을 두는 사적모임 제한 등은 더 이상 재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거리두기를 '주먹구구식 비(非)과학적 방역'이라 평가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과 상통한다.
다만, 현 정부 방역 책임자들의 메시지는 사실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국내 방역 체계는 이미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부터 지속적인 방역 완화와 함께 일상적 의료대응체계에서의 검사·진료로 방향을 선회했다.
재택치료를 기본값으로 삼고, 동네 병·의원의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RAT)를 통한 진단을 정착시킨 것은 전임 정부다. PCR(유전자 증폭) 검사는 60세 이상 고령층·밀접접촉자·면역저하자 등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하고, 먹는 치료제를 신속 투여하는 등 '고위험군 패스트트랙' 개념을 처음 도입한 것도 문재인 정부다.
올 초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화된 이후 정부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뒤로 한 채 방역 고삐를 순차적으로 풀었다. 3월 중순 하루 확진자가 62만여 명으로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접어들자 4월 18일 2년여 만에 거리두기를 전면 해제하기도 했다.
따라서, 방역의 큰 틀은 윤 대통령이 강도 높게 비판했던 문(文) 정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손 씻기, 환기·소독, 마스크 착용 등 개인수칙을 강조하면서 '자율 방역'이란 단어를 먼저 내세운 것도 전임 정부였다. 결국 동일한 내용과 수사(修辭)를 답습하면서도 '전 정권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펴는 셈인데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4차접종 확대, 뚜렷한 과학적 근거 없어…'땜질' 식 대응도 여전
'과학 방역'은 해당 시점의 유행상황을 토대로 향후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데이터에 근거해 강구하는 것이다. 방역상황이 전망치보다 악화되고 있음에도 정부가 정해놓은 특정 노선만을 고집한다면 이같은 태도를 '과학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령 지난 3월 말 안철수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선진국의 경우, 정점 이후 거리두기를 완화한 반면 우리나라는 정점 예측이 실패한 가운데 방역을 풀어 확산세를 더 키웠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재유행과 관련해 던진 승부수는 50대·18세 이상 기저질환자 등으로 4차접종 대상을 확대한 조치 정도다. 기존의 60세 이상·면역저하자 등에서 범위를 넓힌 것인데, 정부는 이 결정을 뒷받침하는 명확한 근거를 대지는 못했다.
단지 50대는 각종 기저질환이 많이 생기는 연령인 데 반해 본인이 이를 인지하고 진단을 받는 케이스는 적다는 점, 기저질환이 있는 50~59세는 코로나 감염 시 중증 위험이 오르게 된다는 점 등을 들었다. 접종률을 올리기 위한 뾰족한 방안은 딱히 없다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서 추가로 사용할 카드가 많지 않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4차접종 확대의 실익은 크지 않을 거라고 본다. 기존 접종대상이었던 60세 이상의 접종률도 21일 기준 34%밖에 되지 않는 상태다. 지난 18일부터 4차접종이 시작된 50대는 16만 8200여명이 접종을 마쳐 전체 대비 2.0%에 불과하다.
메뉴를 새로 내놓긴 했는데, 발라먹을 살은 없는 계륵(鷄肋)과 비슷한 꼴이다.
위기가 닥쳐서야 부랴부랴 임기응변에 나서는 '늑장 대처'도 여전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당국은 당분간 감소세가 지속될 거라는 판단 아래 선별진료소·임시선별검사소, 전담 병상을 계속 줄여 왔다.
그러다가 이달 들어 재유행이 가속화되고 정점이 20만에서 30만으로 상향되는 등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지난 20일 1435병상에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향후 4천 개까지 확충하겠다는 방침이다. 임시선별검사소도 수도권(55곳)을 중심으로 70개소를 추가설치하기로 했다.
자문위, 차별점 안 보여…'방역사령탑' 공석 언제까지 방치하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1순위로 고려하겠다며 출범시킨 '국가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 또한 기시감이 든다는 지적이 많다. 현 정부가 반면교사로 겨냥한 전 정부의 '일상회복 지원위원회'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정기석 한림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가 위원장을 맡은 해당 위원회는 정부 정책의 의사결정을 총괄적으로 자문하는 자문위원회와 분야별 과학적 근거분석·실무 검토를 담당하는 △방역의료 △사회경제 분과로 구성돼 있다.
방역의료 분과는 정 교수를 포함한 방역 전문가들로 꾸려졌지만, 사회경제 분과는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김선빈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등 경제 분야 등의 민간 전문가들이 자리를 채웠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거리두기 수위 등을 논의했던 일상회복 지원위와 '무늬만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 위원회 모두 총리실이 키를 잡는 데다 방역·의료 전문가 외 다른 인사들의 목소리가 반영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차별점이 없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정책 수립 기능은 없다는 점도 비슷하다.
현장에서는 '방역 컨트롤타워'의 공석이 장기화되는 상황도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우려한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5월 18일 백경란 청장을 2대 수장으로 맞아들였지만, 보건복지부는 권덕철 장관이 물러난 지 두 달 넘게 사령탑이 비어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정호영 경북대 의대 교수와 김승희 전 의원을 장관 후보로 내정했으나, 각각 '아빠 찬스' 논란과 '정치자금 유용 의혹' 이 불거지면서 차례로 자진사퇴했다. 의원 재직 당시 정치자금으로 렌터카를 매입한 혐의 등을 받는 김 전 후보자는 지난 22일 서울남부지검에 의해 약식기소됐다.
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번 연속 낙마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현재 국무회의와 중대본 회의 등에는 조규홍 1차관과 이기일 2차관이 '장관 대행'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 방역 전문가는 "차관 대행체제로는 지금의 재유행 확산세에 온전히 대응할 수가 없다. 회의에서도 업무 보고나 하는 수준이지, 부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