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처럼…지역에서도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 열렸죠"

■ 방송 :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 (창원 FM 106.9MHz, 진주 94.1MHz)
■ 제작 : 윤승훈 PD, 이윤상 아나운서
■ 진행 : 이윤상 아나운서
■ 대담 : 이주은 피아니스트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교수)
 
창원대학교 음악과 교수 이주은 피아니스트.

◇이윤상> 피아니스트 임윤찬, 들어보셨죠? 18세의 나이에 최연소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피아노 경연대회, 60년 역사를 가진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습니다. 임윤찬의 모든 공연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치솟고 있는데요. 이 임윤찬 피아니스트와 함께 8월 초, 미국에서 공연을 진행하는 분이 창원대학교에 계십니다.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교수 이주은 피아니스트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주은> 안녕하십니까.
 
◇이윤상> 교수님 소개에 앞서 임윤찬 피아니스트를 소개해드린 점, 죄송합니다.
 
◆이주은> 아닙니다. 유명한 사람 먼저 말씀하시는 건 당연하죠.
 
◇이윤상> 최근에 워낙 화제였잖아요. 이번에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상을 받은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분야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주은> 어떤 의미냐면요. 피아노 대회 중에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있고, 차이콥스키· 리즈·퀸 엘리자베스, 그리고 미국에서 제일 큰 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인데 이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만큼 아니면 그것보다 더 정말 대단한, 한 나라의 어떤 정말 격을 높이는 또 그런 일이 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제가 생각했을 때는 굉장히 좀 보수적인 콩쿠르라서 아시아 사람들이라든지 아주 어린 사람들이 우승을 차지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슈 되는 그런 일이죠.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캠퍼스 이강숙홀에서 기자간담회 전 연주를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이윤상>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탄 것 같기도 하네요. 국제 영화제도 보수적인 곳에서 탄 것 같은.
 
◆이주은> 맞아요.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콩쿠르라고 해서 다 같은 성향의 어떤 우승자를 뽑는 건 아니고 심사위원회 구성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이분이 되게 대단하다고 생각한 건, 임윤찬 씨는 해외파도 아니고 사실은 국내에서 지금까지 계속 배우고 계셨고 18세라는 나이의 의미가 주는 게 굉장한 거죠. 음악이라는 게 꼭 기교만 잘한다고 해서 인정을 받지 않거든요. 물론 10살짜리가 굉장한 기교를 보이면서 서커스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지만 어떤 뭔가 시간이 이렇게 주는 연륜이라는 게 있거든요. 근데 그런 걸 다 보는데도 불구하고 18세의 나이에 어떤 피아니스트에게 그런 영감을 준다는 거는 그 친구가 굉장한 거죠. 음악적으로.
 
◇이윤상> 이런 비유를 드는 게 조심스럽지만 예를 들어서 리듬 게임 같은 걸 하잖아요. 그럼 박자에 딱딱 맞췄을 때 점수가 제일 높게 나오는데요. 이렇게 기교만으로 정확하게 쳤을 때가 아니라 감상하는 사람이, 또는 지휘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강렬한 영감을 받게 되는 건 미묘한 차이에서 오는 굉장히 특별한 무언가가 있나 봐요?
 
◆이주은> 간단하게 얘기하면 100명의 사람이 피아노를 치면 다 다르게 나와요. 리듬 게임처럼 이렇게 맞게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여기는 정답이 없어요. 모든 사람들이 다 주관적으로 듣고 주관적으로 치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소리도 다르고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표현도 다르고 각자의 해석도 다르고 같은 빨간색을 봤는데, 정말 약간 피 색깔 같은 빨간색이다. 이럴 수 있는 거고, 또 어떤 사람이 봤을 때는 동백꽃같이 화려한 빨간색이야, 이럴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너무 아련한 빨간색이 이럴 수 있잖아요.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해석도 다 달라요. 물론 원곡 작곡가가 원하는 어떤 그런 거를 먼저 캐치하고 그 이후에 자기의 해석을 입히는 게 피아니스트의 일이지만 이렇게 다양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의 어떤 해석에 임윤찬 씨가 가지고 있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기교, 플러스 자기의 어떤 음악적인 세계가 덧붙여져서 이렇게 지휘자도 그걸 느끼는 거죠.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캠퍼스 이강숙홀에서 기자간담회 전 연주를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이윤상> 그렇게 열여덟살의 나이로 반 클라이번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까지 한 건데요. 이게 우연한 건지, 아니면 우리나라가 피아노,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어느정도 위상을 가지고 인정받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이주은> 제가 정확하게 한 10년 정도, 10년이 더 됐구나. 왜냐하면 제가 들어온 지가 10년이 됐으니까 한 15년 정도 전에 벨기에랑 독일이랑 한국이랑 KBS에서 세계를 빛낸 한국 영재들 이런 프로그램을 했었어요. 그때 독일에 있었는데 제가 인터뷰하면서 조금 이렇게 도와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인터뷰를 되게 많이 했어요. 제가 그 심사위원들이나 번역도 해드리고 해야 하니까 통역도 해드리고 근데 그때 15년 전에 처음으로 붐이 일어났어요. 한국 사람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갑자기 상을 많이 받게 됐어요. 그게 화두였단 말이에요. 그 당시에 제일 두각을 나타냈던 분야가 성악이었어요.
 
◇이윤상> 성악가 조수미부터였나요?
 
◆이주은> 아니요. 조수미 선생님은 이미 대가셨고, 그때 국제 콩쿠르라고 하면 보통 만 26세 이전에 나갈 수 있는 콩쿠르라서 나이가 많으면 못 나가거든요. 악기마다 다르겠지만 또 콩쿠르마다 만 30세도 있고 26세도 있고, 보통은 젊은 사람들이 공부 마치고 어느 정도의 기간 안에 국제 대회에 나가서 음악가가 되기 위한 발판 삼는 경우가 많죠. 그때 성악 콩쿠르에서 이미 벌써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두각을 많이 나타내고 있었어요. 맨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분야가 성악이었고, 우리나라 성악가들이 정말 잘하거든요. 그래서 콩쿠르를 가도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올라오는 거죠. 계속 파이널에 올라오고 왜 그럴까, 이 영재 교육의 어떤 시스템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까 그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었거든요. 근데 그때 뮌헨 콩쿠르를 했었어요. 뮌헨 콩쿠르도 굉장히 권위 있는 콩쿠르 중 하나인데 뮌헨 콩쿠르에서 또 그때 성악에서 1등을 한국 사람이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심사위원들한테 '아니, 왜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잘하는 것 같냐?' 거의 모든 심사위원들이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마도 한국에서 영재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떤 시스템이 외국과 다르다, 우리와 다르다, 뭔가 일찍 발굴해서 이렇게 해주는 그런 게 다를 거다,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저는 그때 인터뷰하면서 무슨 얘기를 했었냐면 이게 처음에 저희 이전의 세대들은 아직 외국 문물에 대해서 많이 가서 겪어본 사람이 없었잖아요.
 
◇이윤상> 낯선 미지의 영역 같은 느낌.
 
◆이주은> 네. 그 후로 교육의 질 자체가 더 높아진 거죠. 결과적으로 내가 어릴 적에 공부해서 왜냐하면 이게 우리나라 음악이 아니고 서양 음악이잖아요. 그러니까 서양 음악을 얼마나 기교적으로 잘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서양 문화와 예술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가 저는 관건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문화와 예술을 배우고 온 사람들이 들어와서 가르쳤을 때 훨씬 시너지 효과가 큰데, 그 시기가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 시기인 거죠.
 
◇이윤상> 그게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이해도가 높아지는.
 
◆이주은> 조금씩 올라간 거죠. 그게 그리고 지금 18세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서양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더 많이 알 수 있었나 생각해본다면 이 미디어가 완전히 오픈돼 있잖아요. 사실 유튜브에 들어가면 1920년대 40년대 60년대 정말 대가들의 연주를 다 들을 수가 있거든요. 그리고 방대한 서적도 그냥 접할 수가 있어요. 옛날에 도서관을 가야 하는 일, 그러니까 이 미디어에 노출이 되다 보니까 정보의 공유가 굉장히 쉬워지고, 서양에 대한 문화나 예술에 대한 이해가 훨씬 많이 높아질 수 있는 거죠.
 
◇이윤상> 어떻게 보면 몰이해에서 비롯된 달랐던 출발선이 비로소 동등해지는 순간인데 이 순간에 우리나라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굉장히 강한 민족이에요.
 
◇이윤상> 작은 나라에서 참 대단하죠. 임윤찬 피아니스트 이야기로 길어졌는데, 교수님 이야기로도 넘어가보죠. 일단 미국에서 함께 공연을 하신다고 소개했는데 어떤 공연이에요?
 
INTERNATIONAL KEYBOARD ODYSSIAD® & FESTIVAL, U.S.A. 행사 포스터.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이주은> 이 공연은 'International Keyboard Odyssiad Festival'이라고 해서 피아노 페스티벌이에요. 여름마다 잘츠부르크에서도 페스티벌도 있고 스위스도 굉장히 유명한 페스티벌들이 있거든요. 근데 이 페스티벌은 콜로라도 주립 음대에 계신 교수님이 만드신 것 같아요. 콩쿠르도 하고 어린아이부터 고등학생 정도까지 아니면 대학생 정도까지의 그런 연령대 국제 콩쿠르를 열고, 중간에는 또 세미나도 이렇게 있어서 특강도 하고 여러 가지를 골라서 할 수 있는 거예요. 연주회도 하고 저녁에는 피아니스트들을 초청해서 매일 저녁에 한 명씩 리사이틀을 해요. 그래서 6일 동안 이렇게 쭉 되는 거죠. 7일 동안.
 
◇이윤상> 그야말로 축제네요. 국제 콩쿠르도 열고, 세미나, 특강에 연주회까지. 8월 1일 첫날에는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나오고 교수님께서는 8월 4일이네요. 어떤 곡 준비하고 계세요?
 
◆이주은> 저는 첫 번째 곡이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를 시작해서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2번을 두 번째 곡을 하고 세 번째 곡의 드뷔시의 기쁨의 섬이라는 곡을 하고요. 다음에 인터미션, 휴식 시간이 있어요. 잠깐 쉬고 그다음에 2부에는 브람스 소나타 3번 합니다.
 
◇이윤상> 교수님 연주회 유튜브로 봤는데, 2부로 건너갈 때는 의상도 갈아입더라고요? 같은 날 공연인데 빨간 드레스에서 흰 드레스로 바뀌는 걸 봤는데.
 
◆이주은> 그거는 관중들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연주자가 특별히 또 이렇게 갈아입기도 하는데 저는 잘 안 갈아입습니다. 저는 보통 잘 안 갈아입는데, 그 곡에 대한 약간 콘셉트가 좀 다를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굉장히 중요한 브람스를 치는데 새빨간 드레스를 입기에는 안 맞다는 생각이 들고, 또 굉장히 밝은 어떤 그런 곡을 치는데 까만색 드레스를 입기에는 조금 안 맞는 것 같고. 그러하니 그 콘셉트에 맞게 이렇게 바꿔주기도 하고 지방에서는 잘 갈아입고 그렇습니다.
 
◇이윤상> 의상 분위기로 어떤 느낌의 곡인지 볼 수도 있겠네요. 재밌어서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는데 아마 듣는 분들 우리 청취자분들이 좀 궁금해하실 거예요. 우리 이주은 교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임윤찬 피아니스트와 같이 6명의 피아니스트 중에 초청돼서 이렇게 오셨을까, 어떤 피아니스트일까, 이력을 소개해드리려고 하니 워낙 민망해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시간 순으로 천천히 살펴볼게요. 일단 피아노는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이주은> 저는 그렇게 일찍 시작하지 않았고요. 초등학교 1학년 때에서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이윤상> 그게 느린 건가요?
 
◆이주은> 아주 느린 거죠. 제 생각, 제가 봤을 때 한 4, 5살 이렇게 시작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 초등학교 때는 재미로 배웠고요.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가 그만두라고 하셨죠. 그냥 공부해야 하지 않겠냐 그래서 제가 '엄마, 내가 마지막 콩쿠르 여기서 1등 하면 피아노 계속 시켜주세요.'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랬는데 그때 진짜 1등을 해서 그 당시에 동네 콩쿠르였는데 상금이 30만 원이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그 당시에 한 300만 원 됐을 거예요. 
 
◇이윤상> 지금으로 치면 300만원?
 
이주은 피아니스트 제공

◆이주은> 굉장했죠. 초등학생이 돈을 벌어 왔으니.
 
◇이윤상> 어머니의 눈빛도 달라졌겠군요.
 
◆이주은> 그래서 내 딸이 엄청 뭔가 대단한 아이가 될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신 것 같고 그래서 제가 중학교 올라갈 때 동네 할머니한테 배웠어요. 학원에서 그만두고.
 
◇이윤상> 그 분께선 어떤 특별한 이력이 있으신 건 아니고요?
 
◆이주은> 네, 저희 친오빠의 담임 선생님 딸이 배우는 선생님이었어요. 나름 학원이 아닌 개인 교습으로 업그레이드가 된 거죠. 그래서 그 할머니께서 아직도 저한테 가르쳐주신 게 많이 생각이 나는데 전공생이 꼭 쳐야 할 이런 곡들 중에 연습곡이 있거든요. 그런 것도 가르쳐 주시고 학원에서는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소나타밖에 안 쳤고 개인 교습하면서 전공생들이 쳐야 하는 그런 필수 곡들을 조금 가르쳐주셨죠.
 
◇이윤상> 그러다가 서울 예고에 합격을 하셨어요?
 
◆이주은> 네, 그러니까 어머니가 또 중3 때 얘기를 하셨죠. 피아노를 계속할 거냐, 그때는 제가 공부를 그래도 썩 잘하는 편이어서 뭔가 제가 어떤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근데 저는 뭔가 음악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도 그래서 엄마한테 '내가 서울 예고 시험을 봐서 떨어지면 피아노를 관두겠다' 했죠. 그리고 되면 '날 밀어달라' 이렇게 얘기하고 시험을 봤는데 됐죠. 운이 좋게.
 
◇이윤상> 하하. 재밌네요. 그 이후로 또 눈에 띄는 이력이, 연세대학교에 피아노 전공으로 재학하다가 도중에 그만두고 독일로 가셨어요? 어떻게 된 거죠?
 
◆이주은> 독일은 무수히 얘기 들은 바흐·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이런 거장들의 그러니까 음악의 고조할아버지라고 하면, 고조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까지 키운 그런 곳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러니까 음악의 뿌리를 나누자면 독일 음악이 있고, 러시아 음악이 있고, 프랑스 음악이 있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근데 독일 음악이 사실 모든 음악의 약간 근간이라고 볼 수 있어서 저는 꼭 그 나라에 가서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이주은 피아니스트 제공

◇이윤상> 재학 중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는 않죠?
 
◆이주은> 일반적으로는 졸업하고 가고요.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는 대학에 가기 전에 가기도 하고요. 고등학교 때 아주 영재니까 이렇게 미리 나가기도 하고 하는데 학교에 다니다가 가는 경우는 잘 없었는데, 제가 정말 운도 좋고 기회가 좋아서 재학 기간 해외에 나가서 좀 더 새로운 환경을 보다 보니까 너무 공부하고 싶어서 이후의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가방을 싸 들고 갔습니다.
 
◇이윤상> 그 이후에는 제가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독일 뮌헨 국립음대 디플롬 최고 점수로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음대에서 잘츠부르크 모짜르테움 음대 Magisterium 솔리스트 과정 수석 졸업과 독일 국립음대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까지 졸업하셨고, 경력으로는 아시아 국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시고 또 스페인, 이탈리아.. 아니 굉장히 진짜 이력들이 많으시네요. 이 중에서 가장 남는 기억에 남는 수상이 있으세요?
 
◆이주은> 제가 2010년 윤이상 콩쿠르를 나갔었는데 그때 그 콩쿠르가 통영에서 열리잖아요. 그런데 보통 국제 콩쿠르 하면 미국도 가고 유럽에 온 나라를 다니잖아요. 근데 국제 콩쿠르를 가다 보면 그 친구들이 그 친구들이에요. 다 같이 만나요.
 
◇이윤상> 잔뼈가 굵은 친구들이 계속 마주치는 거군요.
 
◆이주은> 네, 여기서 또 보는구나, 이러는데 이 친구들도 한국으로 오니까 너무 신기하잖아요. 우리나라의 국제 콩쿠르가 두 개 있는데, 하나가 서울 국제 콩쿠르고, 또 하나가 윤이상 콩쿠르거든요. 통영이 가깝잖아요. 근데 서울은 저희 부모님 입장에서는 머니까, 통영은 또 제가 원래 본적이 통영이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통영 사람이어서 제 구역에서 뭔가 제가 독일에서 공부한 이거를 들고 뭔가를 한다는 게 되게 신기했고 제가 1차, 2차, 3차 진행하는 동안 저희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친척들이 와서 보고 그랬어요.
 
◇이윤상> 가족들이 콩쿠르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이주은 피아니스트 제공

◆이주은> 예선, 본선 이렇게 1차, 2차, 3차를 하는데 제가 연주하는걸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딸이 피아노를 친다고 해외에 계속 나가 있는데 이러다가 처음, 눈으로 제대로 본 거죠. 그래서 그게 기억이 남습니다.
 
◇이윤상> 여러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도 하시고 수상을 하셨지만, 윤이상 콩쿠르가 가장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겠네요. 그리고 창원대 교수로는 몇 년도에?
 
◆이주은> 제가 2013년도 3월에.
 
◇이윤상> 2013년도, 지금도 상당히 젊으신데 그럼 그 당시 나이가?
 
◆이주은> 제가 그때 33살이었습니다.
 
◇이윤상> 33세 나이에 국립대 음악 교수에 임용되신 거네요. 아니 근데 상당히 젊으시고 또 10여 년간 거의 독일에서 주로 활동하시다가 지금 창원에 계신지 상당히 오래되셨는데, 외국에서의 활동을 접고 계속 창원에 계시는 이유는 뭐예요?
 
◆이주은> 제가 윤이상 콩쿠르 얘기했잖아요. 2010년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어머니가 위암이 걸리셔서 수술한 걸 저한테 숨기고 있다가 들켰어요. 그 흉터 자국이, 그날 제가 돌아가기 전, 전날인가 보니까 엄마 배에 이렇게 이상한 자국이 있어서 엄마가 그때 맹장 수술했다고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위치가 아니잖아요. 위를 떼어 내면서 수술하셨는데, 그래서 처음으로 제가 부모님이 돌아가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위를 절제하고 항암을 시작하기 전이었어요. 그때 수술 끝나고 안 좋으신 상태였는데 제가 엄청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독일에 돌아갔고, 제가 가르치고 뭔가 이렇게 연주 활동을 막 시작하던 참이어서 사실은 독일에서 계속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국에 안 들어오겠구나, 왜냐하면 저 나름 그때쯤 공부가 거의 끝나고 그다음 스테이지가 이렇게 보이니까.
 
◇이윤상> 독일에서도 가르치는 일들도 시작하셨다고 하셨으니까요.
 
◆이주은> 네, 제가 공부를 되게 오랫동안 했고 대학교 시간 강사를 지원했었고, 학교에 있으면서 연주 활동을 하기 시작했었거든요. 그 당시쯤에. 그래서 이렇게 연주하면서 살면 되겠구나, 이렇게 음악과 함께 살면 되겠구나, 제 인생만 생각했지 사실은 저를 지지해줬던 가족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을 못 했어요. 왜냐하면 평생 곁에 계실 것 같았으니까 근데 그때 처음으로 만약에 아프시거나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가족과는 그러면 잘 못 보게 되나.. 이런 생각을 했죠. 그러고 있던 차에 다시 안 좋아질 수 있겠다는 그런 얘기를 듣게 됐어요. 그 얘기를 듣게 되고 제 인생을 어떤 식으로 사는 게 좋을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고 제가 여기서 저의 인생을 위해서 계속 연주자로 독일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돌아와서 가족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지, 그래서 제가 또 부모님과 얘기했어요. 여기 창원대를 다녀보겠다, 교수 자리가 난다는 얘기를 듣고.
 
◇이윤상> 부모님 집 근처이기도 하고.
 
◆이주은> 창원은 마산하고 같은 동네니까 제가 이 동네에 자리가 났으니까 한번 보겠다. 되면 오겠다. 그렇게 해서 제가 지원했고 운이 좋게 돼서 돌아오게 된 거죠.
 
◇이윤상> 어렸을 때부터 말하는 대로 다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혹시 부모님 건강은, 어머니께서는?
 
◆이주은> 어머니는 지금 돌아가셨고, 제가 들어오고 2년 반을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죠.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윤상> 아…후회되지는 않겠어요.
 
◆이주은> 전혀 후회되지 않습니다.
 
◇이윤상> 2년 반 이후에는 또 어떤 새로운 목표도 생겼을 것 같기도 해요.
 
◆이주은> 그때는 제가 학생인지, 선생님인지 잘 구별도 안 될 정도로 그냥 피아노만 치고 친구들이랑 놀고 연주하고 콩쿠르 나갔었고, 그랬다가 여기 와서 갑자기 너무 막중한 책임감을 졌잖아요. 그 책임감이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몰랐고 근데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내가 이 위치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있어야 하는지 그걸 계속 배우고 있어요.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고 돌려줘야죠. 이제.
 
◇이윤상> 돌려준다, 이제는 후학들을 위해서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이주은> 학생들한테는 제가 뭘 가르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학생들이 아직 어리지만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제가 뭔가 조언자처럼. 나이가 더 많은 인생 선배로서 제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 도와주고 물론 피아노는 이제 제가 더 오래 공부했으니까. 하지만 상호 작용이 된다고 봐요. 그리고 교수라는 아니면 또 음악가라는 이 직업 자체가 하나의 어떤 심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 때 그게 천천히 이렇게 보이고 거기에 똑같이 동감을 하게 됐을 때 변화가 되는 거지, 뭔가 제가 가르치는 입장이라고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리고 또 교수라는 직책이라는 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있지만 이 지역 사회에서 또 학교의 어떤 위상이라든지 아니면 또 제가 음악가로서 지역에 있는 그런 사람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 아니면 아직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역할이 그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주은 피아니스트 제공

◇이윤상> 우리 지역에 제2의 이주은, 제2의 임윤찬이 될 재목들도 많이 있을 텐데요. 서울로 외국으로 유학 안 가고 우리 지역에서 공부하기에도 충분합니까?
 
◆이주은>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국내에만 있었지만 지금 세계 최고의 권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했잖아요. 그랬듯이 제가 학생들에게도 얘기하지만 지금 우리 이 시대에는 모자람이 없어요. 과하면 과했지 내가 원하면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세상이 저는 왔다고 봅니다. 그게 지역이 창원이라서 지역이 서울이라서 미국, 뉴욕이라서 차이가 없을 거로 생각해요.
 
◇이윤상> 예전에는 스스로의 한계를 짓고 자랄 수 있는 어항 크기를 미리 정해놨었다면, 지금은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이주은> 그렇죠. 요즘 아이들은 굉장히 똑똑해서 원하면 다 이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윤상>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이주은> 저희가 지금 창원에 있고 경남 대한민국에서 남쪽에 있잖아요. 근데 저는 어디에 살고 이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한테도 얘기하지만 모든 미디어나 모든 세상이 다 열려 있기 때문에 꿈을 가지고 있고, 이루고자 한다면 저는 모두가 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윤상> 실제로 바흐·슈만 클래식 거장들의 본고장에서 오래 계셨던 분이 말씀하시는 거라 더 신뢰가 가고요. 앞으로 임윤찬, 이주은 이런 분들이 우리 지역에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8월에 저희가 미국에 가기는 어렵고 지역 연주회 일정은 없나요?
 
◆이주은> 창원에선 아마 12월 정도 돼야 할 것 같고 제가 미국을 다녀오면 9월 21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독주회가 또 있고요. 그리고 10월 울산 등등 많지만. 아무튼 12월에 창원에서 다시 합니다.
 
◇이윤상> 연주회 가고싶은 분들은 일정 참고하시고요. 준비 잘하셔서 멋진 공연으로 보답해주세요 교수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주은> 네, 고맙습니다.
 
◇이윤상> 지금까지 창원대학교 교수 이주은 피아니스트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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