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하면서 경찰력 투입을 통한 강제 해산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임금 정상화 등을 요구하며 18일로 47일째 이어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에 정부가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지난 달 2일부터 조선업 불황 시절 30% 삭감됐던 임금을 정상화하고, 전임자 등 노조활동을 인정하라며 파업에 돌입했다. 이어 지난 달 18일부터는 옥포조선소 제1도크에서 건조 중인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점거하고 농성 중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사전 예정에도 없던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가진 뒤 담화문을 발표했다.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이 한 총리와의 오찬 주례회동에서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법치주의 확립'과 '산업 현장 불법 상황 종식'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필두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한 총리와 회의를 마친 뒤 공동담화문을 발표한 것이다.
담화문에서 정부는 "노사 대화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불법적인 점거 농성을 지속한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대우조선은 조선업 장기 불황과 분식회계 사태로 경영난을 겪으며 2015년 이후 7조 1천억 원의 대규모 국민 혈세를 투입하며 구조조정을 추진해왔다"며 "조선업 경기회복과 수주 확대를 발판 삼아 기업 정상화를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정부는 덧붙였다.
반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대우조선해양 및 협력업체 대다수 근로자와 국민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한국 조선이 지금껏 쌓아올린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책임한 행위"라며 "일부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불법행위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동료 근로자 1만 8천여 명의 피해와 희생을 강요하는 이기적 행동"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 "근로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며 "철지난 폭력․불법적 투쟁방식은 이제 일반 국민은 물론 대다수 동료 근로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고 점거 농성 방식의 파업에 대해 비난했다.
이어 "정부는 노사자율을 통한 갈등해결을 우선하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지난 14일 노동부와 산업부 장관이 관련 담화문을 발표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재차 정부 입장이 나오면서 노정 간 긴장도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특히 앞선 1차 담화문보다 이번 담화문에서는 '불법 행위', '무책임한 행위', '이기적 행동'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하청노동자들의 점거 농성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해 대립각을 세웠다.
이에 따라 과연 정부가 경찰력을 투입해 농성 중인 하청지회 조합원을 강제 해산시킬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우조선 사태가 장기화되자 지난 11일 대우조선의 원청 임직원들은 "하청지회의 불법행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청한다"고 요구했고, 17일에는 경총도 "불법행위에 따른 국민 경제의 현저한 피해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공권력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상태다.
이날 담화문 발표장에 노사 갈등의 주무부처인 노동부와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에 관계된 기재부, 산업부 뿐 아니라 법무부, 행안부까지 참여한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 취임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임기 초부터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한 경찰력을 투입하는 일은 정치적 부담이 크다. 만에 하나 농성 진압 과정에서 부상자라도 발생한다면 노동계·시민사회와 야당의 강도 높은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권력 투입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단계를 확인해 드릴 수 있는 상황은 아직 아니다"라며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실에서는 큰 관심을 두고 우려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신중한 답변을 내놓았다.
다만 경찰력 투입에 앞서 정부가 직접 파업 등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긴급조정권'이 발동될 수 있다.
'긴급조정권'이란 노동부장관이 노조의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규모가 크거나, 성질이 특별해 국민경제를 해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는 경우 발동하는 권한이다.
긴급조정권은 사실상 파업을 단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정부 최후의 카드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해당 노조는 즉시 파업을 포함한 쟁의행위를 중지해야 하고, 공표일부터 30일이 이후에야 쟁의행위를 재개할 수 있다.
지난 14일 이정식 장관은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해 "아직까지는 저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지만, 노사 대화를 촉구했던 1차 담화문 발표에도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어 정부가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한편 이에 대해 노동계는 이번 담화문에 대해 "윤석열 정권이 결국 노동자를 버렸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채권단 관리하에 있는 대우조선의 특수성을 본다면 주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나서야 하는 문제이고, 산업은행을 움직일 정부가 우선해 나서야 할 일"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권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힘없는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강경대응을 시사하는 것은 현재 윤석열 정권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역대 최악의 지지율을 연일 기록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은 힘없는 하청노동자를 대상으로 정권의 힘을 휘둘러 이들을 강경진압하고, 이를 토대로 민주노조와의 대치점을 세우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주장했다.
파업 상황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의 요구는 빼앗긴 임금에 대한 원상회복이고, 헌법에도 보장된 노동조합 활동 보장"이라며 "긴 투쟁 끝에 겨우 노사간의 요구안을 놓고 지난 15일부터 4일째 대화를 이어오고 있다"며 대화를 통해 사태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