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경 작가가 탕웨이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서 여자 주인공이 중국인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나 역시 '색, 계'를 본 후로 언제나 탕웨이 배우와 일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나와 정서경 작가가 원했던 캐릭터에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다." _박찬욱 감독
관객들을 '헤결앓이'(헤어질 결심+앓이)를 하게 만들며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헤어질 결심'은 탕웨이를 캐스팅하기 위해서 주인공을 중국인으로 정했고, 서래는 탕웨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로 창조됐다. 어떻게 보면 '헤어질 결심'의 시작점은 '탕웨이'인 것이다.
서서히, 깊게 빠져드는 이야기로 많은 관객을 매료시킨 수사 멜로극 '헤어질 결심'은 전작과 완전히 결이 다른 새로운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과연 이 매혹적인 서래와 해준의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그리고 복잡한 듯 보이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로 구축해 나갔는지 공동 각본을 맡은 정서경 작가를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배우 탕웨이에서 시작한 영화, 그를 담아낸 서래
▷ 탕웨이의 어떤 모습에 반해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글을 쓰고 싶었나?
탕웨이의 얼굴을 보면, 입을 꼭 다물고 있으면 안에 중요한 게 들어있는데 꽉 닫힌 상자처럼 안 꺼내 본 느낌이 늘 있었다. '헤어질 결심'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거 아나? 탕웨이가 연기한 서래는 변명하거나 핑계 대지 않는다. 정말 말해야 하는 순간이 아니고서는 자기 행동에 관해 설명하지 않는다. 또 서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느껴지다가 마지막 바닷가 모래 속에 묻힐 때야 처음으로 이 사람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밀을 갖고 있고, 그게 알고 싶은 사람, 그게 중요할 것 사람, 탕웨이의 얼굴에는 그런 게 드러나 있다.
▷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 탕웨이는 어떤 배우였을지 궁금하다.
내가 가끔 탕웨이에게 '도끼 살인마'처럼 말한다고 이야기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핵심적인 말을 이마 중간을 깨는 것처럼 말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리고 늘 남들은 한 단계 두 단계 이렇게 이해할 때 그는 가장 빠르게 목적지로 가는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다. 또 유머도 있다.
▷ 유독 '서래'라는 캐릭터에 많은 관객이 감정 이입하고, 또 서래로 인해 짙은 여운을 안은 채 극장을 나선다. 이 매력적인 서래 캐릭터의 탄생이 궁금하다.
영화를 보며 왜 서래가 매력적일지 생각해 봤다. 영화 내내 서래는 받아들이는 캐릭터다. 심지어 남편의 폭력도 받아들인다. 만약 중국으로 보낸다고 안 했으면 끝까지 맞았을지 모른다. 철썩이(서현우)에게 맞을 때도 10분만 참는다고 했다고 말한다. 자신을 향한 의심도 거부하지 않는다. 이처럼 계속 받아들이는 캐릭터인데, 탕웨이가 어떤 캐릭터든 받아들이겠다는 자세가 있었다. 또 관객들의 여러 가지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캐릭터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령처럼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신화 속 캐릭터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멜로도, 치정도 자신 없었던 작가가 '죽음'부터 시작한 '헤어질 결심'
▷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의 시작점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박찬욱 감독님이 런던에 계실 때 한 형사의 치정멜로라고 하면서 메일을 보냈다. 한 형사의 관할 지역에 첫 남편이 죽고 이사했는데 또 남편이 죽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써보자고 하셨다. 처음엔 쓰기 싫었다. 멜로도, 치정도 자신 없었다. 쓰기 싫었지만 써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쓸 거면 어떻게 죽는지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총이나 칼을 쓰는 폭력적인 방식도 아니고 약을 먹이는 것처럼 손쉬운 것도 아닌, 마치 사고처럼 보이는데 공들여야 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당한 사람만큼 힘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냥 산이 떠올랐고, 두 번째 남편은 바다겠지, 그러면 모든 걸 다르게 해보자, 해준이 폭력을 싫어하는 형사라 깔끔하게 정리해 보자. 이 두 가지를 정하니 구성은 쉬웠다.
▷ 영화는 직설적으로 사랑한다고 서로에게 말하진 않지만 상대를 향한 모든 말과 눈빛, 행동이 사랑한다 말하고 있다. 애틋하게 스며드는 멜로의 감정선과 살인 사건에 관한 수사극을 각각 100%로 그려내고 조화시키면서 어떤 점을 가장 고민했나?
일단 설정은 형사와 범인의 사랑 이야기다. 정말로 일을 사랑하는 형사는 사건을 사랑할 수 있고, 정말로 유능한 형사는 범인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래가 보여준 사건은 편지처럼 해준이 잘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일 거 같았다. 남편을 죽이기 위해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자가 손톱이 빠져라 산을 오른 거다. 이 형사에게는 와 닿을 수 있을 거라 봤다. 메타포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이런 사랑 이야기라면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 사실상 이야기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고, 치정 멜로와 수사극 그리고 다양한 시간이 공존하는 복잡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잘 구성했다.
'헤어질 결심'은 하강하는 이야기다. '산해경'처럼 생각해보자. 산에 사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들은 몸이 크고 발톱이 단단하고 표정을 잘 감춘다. 또 바다에 사는 사람이 있어서 그들은 물에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다. 서래는 바다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산에 잘못 들어와서 고통받으며 살 거라 생각했다. 살아있는 동안 고통받았지만 바다를 그리워하며 만약 죽는다면 바다에서 죽을 것 같은 거다. 엄마와 외할아버지 유골을 뿌리러 한국에 오면서 '나는 천천히 밑으로 내려가 바다로 가서 사라져야겠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다.
그런데 서래는 남자들을 좀 이용하면서 살아왔다. 한국에 들어올 때도, 한국에서 생활할 때도 의심을 피하려고 이용했던 형사가 자기에게 심장을 꺼내준 걸 알게 된다. 이후 이포에 가서 만약 형사가 자신을 받아들이면 어쩌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다. 그런데 형사는 왜 남편을 죽였는지만 묻는다. 역시 죽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서래가 밑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다.
탕웨이를 캐스팅하고 싶었기에 주인공은 필연적으로 중국인이어야 했다. 나는 중국인으로 설정할 때 실제 중국이 아니라 한국 밖의 어떤 더 넓고 높은 나라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를 지켜주는 법과 제도들이 있기 이전의 공간 말이다. 그곳에 살던 사람, 서래 같은 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국을 바라볼 때 어떤 것이 위험하고, 낯설고, 이해되지 않게 보일까, 그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이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안정을 중요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때도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안정을 위해서는 지키는 사람이 필요할 텐데 그에 속하는 게 해준이다. 해준은 경계선에 서서 폭력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지만, 폭력에 익숙한 사람이다. 서래와 해준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아볼 거라 생각했다.
정안은 내 모습이 제일 많이 반영된 캐릭터라 생각하며 썼다. 사람들은 의외로 정안을 차가운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난 성실한 생활인이고 가족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봤다. 해준이 이런저런 사건을 쫓다가 집에 돌아오면 늘 똑같은 안정감 주는 사람이다. 해준의 부정을 안 정안이 이 주임과 떠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원자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셔터가 내려오면서 막는 것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래서 이 주임과 정안이 원래 불륜 관계냐고 물어보는데, 그건 아니고 다만 이 주임이 정안을 좋아했을 거다. 하지만 정안은 관심이 없어서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떠올렸을 거 같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