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50bp 이상을 인하한 적은 있지만 50bp를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4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이같은 말을 덧붙였다.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리는 것)을 단행한 직후였다. 이날 한은의 빅스텝 단행은 치솟는 물가가 경기 침체보다 더 시급한 문제란 판단에서 이뤄졌다.
6월 소비자물가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6.0% 상승했는데, 이는 IMF 위기 때 이후 23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제 주체들은 물가가 더 오를 거라고 보고 있다. 이들이 예상한 향후 1년 동안의 미래 물가상승률을 뜻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6월 3.9%로, 10년여 만에 최고치다.
경제가 코로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날 또 한번의 큰 폭의 금리인상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물론 가계, 기업의 이자 부담 고통이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이 총재가 언급한 '무거운 책임감'은 이같은 상황에 기인한다.
지난 14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가계대출 잔액 기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 연이자 부담은 3조 4046억 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1인당 평균 금액으로 환산해 보면 기준금리가 2.25%가 된 지금, 지난해 8월과 비교하면 이자가 112만 7000원 늘어난다. 15일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6월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COFIX)는 5월(1.98%)보다 0.40%포인트 높은 2.38%로 집계돼, 12년 5개월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연말까지 세 차례 남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가계 연이자 부담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차주들 사이에서는 '곡소리'가 나온다. 지난 7월 말 마이너스통장(신용대출)을 갱신하러 간 A(40)씨는 "3%대 이자로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었는데, 갱신할 때는 최고 6%넘는 이자를 이야기 하더라"면서 울상을 지었다.
기업들도 울상이 됐다. 금리 인상으로 기업들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대출 이자도 늘어나면서 수익성이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대출태도는 대기업(-6)과 중소기업(-6)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3분기 은행의 기업 대출이 강화될 것이란 뜻이다.
한은 관계자는 "3분기 중 기업의 신용위험은 대내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 등의 영향으로 증가세가 지속될 전망"이라면서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일부 취약업종 및 영세 자영업자의 채무상환능력 저하 등의 예상으로 신용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도 우려했던 경기 침체도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이 늘어나면 빚을 갚기 위해 소비, 투자심리도 위축돼 실물 경기 침체로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재 경제 상황과 관련해 불확실성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당분간 0.25%포인트 인상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명확히 밝힌만큼 현 상황에서는 연속 빅스텝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더 가속화될 경우는 인상 폭이 달라 질 수 있다며 연속 빅스텝 가능성도 열어둔 상황이다. 향후 발표되는 물가지표 등에 따라 달라질 여지는 여전하다.
또 한미 금리 역전이 임박한 상황에서 미 연준의 긴축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게 되면 역전폭과 속도도 더욱 커질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2.25%)와 미국(1.5~1.75%)의 기준금리는 우리가 0.5%포인트 높지만 연준이 이달 '울트라 스텝(기준금리를 1%포인트 한꺼번에 올리는 것)'을 단행하면 미국 금리가 우리보다 더 높아지게 된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비 9.1%로 전월과 시장 예상치를 크게 상회하며 물가 피크아웃 기대를 크게 약화시키면서 이같은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미국의 상황에 따라 우리도 추가로 큰 폭의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렇게 되면 금리 인상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은 큰 변수가 등장하지 않는 한 0.25%포인트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 주장했으나, 여전히 빅스텝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안재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 총재가 아직 3%대 기준금리를 고려하고 있지 않음을 시사한 것이라면서도 "중립금리가 하단에 가까워진 만큼 앞으로의 금리 인상이 성장세에 미칠 여파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됐는데 예상과 다르게 물가 상방 압력이 현실화 될 경우 기준금리 예상치가 올라갈 여지는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금리를 인상한다 하더라도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한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 역전을 방치할 수는 없으니 한은 금통위도 금리 인상을 이어갈 것 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이자부담이 커지고 소비 및 투자 위축도 심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