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속 살바도르 달리 가면은 한국의 탈 중 하나인 하회탈로 바뀌고, 배경은 2026년 통일을 앞둔 한반도, 그중에서도 공동경제구역(JEA)이라는 가상의 도시 속 조폐국이 됐다. 거대한 이야기를 한국적으로 다시 담아낸 주역 중 한 명은 류용재 작가다.
'개와 늑대의 시간' '피리부는 사나이' '괴이' 등을 집필하며 탄탄한 필력을 선보인 류 작가는 원작 '종이의 집'의 팬이자 원작에 한국적 색을 입혀 재탄생시켰다. 지난 1일 화상으로 만난 류 작가에게 과연 한국판 '종이의 집'은 원작과 어떤 점에서 차별화를 두려 했는지, 그리고 공개 후 나타나고 있는 호불호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판 '종이의 집'의 차별점에 관하여
▷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스페인 원작 '종이의 집'을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어떤 점은 가져오되 어떤 부분에서 원작과 차별화를 두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원작 시즌 1, 2를 시작했을 때부터 팬이었다. 심지어 그 당시 한국 팬들이 봤을 때 원작이 이런 점은 좋지만 이런 점은 별로라는 부분까지도 사랑하는 입장이다. 원작의 거의 모든 것을 좋아했기에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리메이크기에 이런 걸 바꿔야 한다고 접근하기보다는 오히려 남북한 설정을 놓고 우리만의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어떤 점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 조폐국 국장 조영민(박명훈) 등 원작에 없던 캐릭터가 생겼는데, 어떻게 구축했나?
한국판이기 때문에 이런 인물을 넣자고 접근했다기보다는 우리 이야기에서 이런 인물 설정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핵심은 그거였다. 기존 '종이의 집'이 갖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남북이란 레이어가 더 생기고, 기존 경찰과 강도라는 두 그룹 간의 대결에서 남한과 북한 출신이기에 반목해 온 세월이 길었던 만큼 서로 의심하고 배신하고 또 신뢰하고 협력할 수도 있는 하나의 레이어가 더 생기겠다고 생각했다.
인질 측에서 봤을 때 국장이란 인물이 굉장히 강력한 안타고니스트(주인공에 대립적이거나 적대적인 관계를 맺는 인물)로 존재감을 발휘한다면 그 안에서도 국장이 하려는 일을 막으려고 하기도 하고, 반대로는 다 같이 살기 위해 뭉쳐야 한다고 판단해 협력하기도 하는 관계성을 고민하며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들이 우리만의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온 건 아니다. 예를 들면 도쿄가 아미(ARMY, 방탄소년단의 팬덤)라는 설정도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도쿄라는 인물을 세팅했을 때 이 인물을 아주 직관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설정이 뭘까 고민한 결과다. 코리안 드림을 갖고 남한으로 와야 하는 소녀가 가진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 드라마와 K팝에 빠져 있었을 거고, 대표성을 띠는 아티스트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했다.
▷ 시리즈의 배경을 통일을 앞둔 한반도로 설정한 이유와 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원작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교수가 이상주의자이자 혁명가로 비친다는 점이었다. 이 작품의 주제를 내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혁명을 이루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로 받아들였다. 정말 아무리 완벽하고 이상적인 계획을 세워도 실행하는 주체는 굉장히 감정적이고 평범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계획에 변수가 생길 수밖에 없고 기존 이상이 훼손되기도 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인간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서로 적대적인 공생 관계로 몇십 년째 살아오는 게 언젠가 바뀔 수 있다면 그때 통일이 된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될 거냐고 한다면 그럴 거 같지 않다. 통일되면 그걸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자들도 있을 거다. 강도들은 남북한 출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계급상 같은 입장에서 우리 몫을 찾자고 강도짓을 하고, 그중 교수처럼 혁명가적인 발상을 가진 존재는 범죄행위를 통해 통일에 대해 강한 메시지 던지려는 인물도 있는 것이다.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파트 2에 자세히 나오지 않을까 싶다.
'종이의 집' 호불호에 관하여
▷ 남북한 설정, 원작과 달리 교수를 따르는 도쿄 등을 두고 호불호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호불호는 우리가 지고 가야 할 부담이라 생각한다. 우스갯소리로 말하자면 난 이 작품을 하면서 늘 교수의 심정이었다. 하얀 모니터에서 원작을 베이스로 대본을 쓰긴 했지만, 우리는 마치 헤드쿼터에 있는 교수처럼 현장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어 나간 게 어떻게 이뤄질지를 불안과 초조, 기대 속에 지켜봤다. 강도들이 교수의 계획을 믿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이 일에 뛰어들어서 헤쳐 나가듯이 배우들도 그런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고맙다.
▷ 사실 원작에서 여성 혐오적인 모습 등이 나와서 이러한 부분 역시 호불호를 가르는 지점 중 하나였다. 혹시 원작에 대한 이런 지적을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리메이크 과정에서 이러한 부분을 어떤 식으로 헤쳐 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보는 부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리메이크 기조 자체가 원작에서 이 부분은 반응이 이랬으니 이렇게 고치고 바꾸자고 접근한 건 아니다. 우리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때 필요한 부분을 고민하다가 바뀌는 지점이 생기게 됐다. 스페인 원작이 갖는 스페인 사람들의 감성이나 색깔이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서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자연스럽게 흘러간 부분이 있다. 또 하나는 시대적으로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만들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도 지적하진 않지만 서로 공감대가 있었던 거 같다.
원작의 모든 부분을 사랑하기에 그조차도 좋다. 우리에게 주어진 전제 중 하나가 원작 시즌 1, 2에 해당하는 스무 편이 넘는 이야기를 12편 안에서 소화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원작의 다양하고 풍성한 관계를 어쩔 수 없이 타이트하게 갈 수밖에 없었다. 취향을 고려한 부분도 있지만, 기술적으로 그런 전제에서 제약을 갖고 출발했다. 멜로의 톤이나 수위를 줄이고 늘리는 식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하는지 위주로 접근했다.
▷ 감독 역시 리메이크이기 때문에 다르기보다 원작에 충실했다고 했다. 그러나 원작을 본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파트 1이 원작과 너무 흡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은 우리가 만약 전체 이야기를 한꺼번에 공개했다면 반응이 더 다르지 않았을까 우리끼리 이야기하고는 했다. 파트 2는 파트 1에 비해서 우리만의 이야기 등이 더 많이 등장한다. 우리가 처음부터 파트를 6개씩 나눠 가자고 정해져 있던 게 아니고 제작 중간에 정해졌다. 만약 처음부터 2개의 파트로 세팅됐다면 파트 1, 2 사이를 잘 배분해 가져갔을 거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가 점점 속도가 붙고 우리만의 방향성으로 달려가는 게 파트 2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