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하청노동자들이 벌이고 있는 파업에 정부가 부랴부랴 교섭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국면 전환이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우조선 파업에 입 연 정부…'법과 원칙'만 강조한 것은 아냐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과 산업통상자원부 이창양 장관은 지난 14일, 대우조선 사내하청노조의 파업에 대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지난달 2일,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파업에 돌입한 지 43일 만이다.
또 같은 날 한덕수 국무총리도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노조에게 "조속히 대화의 장으로 복귀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의 '스피커'들이 일제히 대우조선 파업을 향해 입을 연 것이다.
일단 이정식 장관은 "선박 점거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강조했다. 한 총리가 "위법한 행위가 계속된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한 것을 엮으면 대규모 파업 사태마다 반복되던 '불법 파업→공권력 투입 불가피' 논리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브리핑의 내용을 뜯어보면 결이 다른 지점들도 거듭 눈에 걸린다.
우선 이정식 장관은 불법 '파업'이 아닌 불법 '행위'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취재진들의 관련 질문에도 노조법의 쟁점이 아닌 경찰 수사 내용을 예로 들면서 "형법상 법 위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사측이 요구하던 '공권력 투입'에는 "공권력 투입 논란 등 국민적인 우려 없이 조속하게 당사자 간에 자율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촉구하고 호소드리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가 직접 파업 등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긴급조정권'도 "아직까지는 저희는 고려하지 않고 있고…(중략)…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청 노사 간의 일'이라는 대우조선·산은에게 '역할' 강조한 정부
대신 이날 브리핑은 줄곧 노사 간의 대화와 교섭을 촉구하며 마무리됐다. 물론 원론적인 얘기이고, "조합원이 점거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면 정부도 적극적으로 교섭을 지원하겠다"는 한 총리의 발언과 연결하면 노조가 선박 점거 농성부터 우선 중단해야 한다는 선결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화와 교섭의 상대방인 하청업체 사업주는 물론, 원청인 대우조선과 채권단인 산업은행에도 압박을 가했다고도 볼 수 있다.
노조는 약 2년 동안 하청업체와 교섭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자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대우조선 및 산은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반면 대우조선은 '원청은 하청의 근로조건에 개입할 수 없다'며 사태 해결의 책임을 피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날 브리핑에는 노사 관계에 대한 주무부처인 노동부 뿐 아니라 산업부에서도 장관이 직접 브리핑에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노사관계는 기본적으로 노와 사의 관계에서 풀어져야 된다"면서도 "산업은행, 기재부, 금융위, 산업부 등 관계 기관이 노사관계가 원활하게 타결되도록 협조하고 지원해야 된다"며 산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 양측이 극한 대립을 반복하면서 과도하게 엇갈린 주장을 반복하고 있지 않느냐"며 "정부가 국면을 전환해 대화의 물꼬를 틀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나섰다고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더 방치할 수 없는 대우조선 파업 사태…야권 발길에 정부 부담도 팍팍
이처럼 정부가 대우조선 사태의 해결을 독려하고 나선 이유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특정 지역, 업종의 문제를 넘어 전국적인 이슈로 불거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하청지회 조합원 중 6명은 조선소에 건조 중인 원유 운반선(VLCC)의 탱크 난간에 올라 농성 중이다. 특히 유최안 부지회장은 1㎥ 철제 구조물에 몸을 구겨넣고 스스로 용접해 몸을 가둔 채 20일 넘게 '끝장 투쟁'을 벌이고 있다.
브리핑이 열린 이날(14일)은 조합원 3명이 산업은행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노조로서는 더 물러설 곳 없는 극한 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시민사회도 이번 파업을 노동계 주요 이슈로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1만 명이 1만원씩 모아 돕자는 '10000*10000' 모금 운동이 이날(14일)까지 진행됐다. 더 나아가 4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는 23일 '희망버스'를 타고 대우조선으로 갈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부쩍 잦아진 야권의 발길이 정부 개입의 '방아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에서는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강은미, 류호정, 장혜영 의원 등이 파업 현장을 잇따라 직접 찾았고,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도 지난 8일 대우조선에서 간담회를 진행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도 지난 12일 농성 조합원들과 면담하고 노사 양측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때문일까. 이날 두 장관의 브리핑은 애초 외부에 공개됐던 장관·부처 일정에 예고되지 않은 '깜짝' 브리핑이었다. 언론 취재를 위한 일정 예고조차 전날 밤 9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 이뤄질 정도로 긴급하게 추진됐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긴급상황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이미 화물연대 파업으로 홍역을 치른 정부로서는 고물가 저성장 경제위기 속에 취임 100일도 지나기 전에 다시 극한 노사 대립 상황을 반복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기업과 지역사회가 입을 피해도 더 이상 '노조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수준이다. 노사 대립이 장기화되고 야권까지 움직이면서 '그동안 정부는 뭐했냐'는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장석원 언론부장은 "원청인 대우조선과 그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이번 사태의 해법은 의외로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부장은 "(하청지회가 요구하는) 30% 임금 정상화가 이뤄져도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은 원청의 임금에 비하면 52% 수준에 불과하다"며 "하청노동자들의 주장은 사실상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해달라는 것 뿐"이라며 사측의 적극적인 대화 참여를 촉구했다.